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제1독서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 3,1-11
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2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5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9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10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1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2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많은 고난과 배척을 받아 ”
이사야는 우찌야 왕이 죽던 해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아 기원전 745-695년까지
50년간 활동한 위대한 예언입니다. (역대하 26,22)
백년도 아니고 6백 년 이상의 시대에 어떻게 수난 받는 메시아 대한 예언을 할 수 있을가요?
이 예언은 예수님에게서 완성되지만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미 예언자는 그 고통의 의미가 구원으로 이어지리라고 예언했고 이 사실이
예수님에게는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인 것입니다.
‘주님의 종’ 넷째 노래에서 이렇게 예언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4-5)
메시아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는 대대로 이어집니다. 수난 받는 메시아에 대해서
이미 예언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뜻보다는 세상의 기대가 더 컸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도 제각기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기도하시다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하십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의 소문에 세례자 요한, 엘리야, 또는 예언자 중에 한 분으로
여긴다고 대답합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라고 대답합니다.
다행이도 제자들은 스승께서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주님께서 당신이 과거 이사야가 예언했던 ‘수난 받는 메시아’이심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22절)
사람들은 예언자를 통해서 수난 받는 메시아를 들었지만 그들은 세상의 판단에
젖어 있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다분히 정치적이어서 사람들에게 영광스러운 모습,
빛나는 자리에서 수난보다는 떠받들려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도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힘 있는 메시아 덕분에
나라도 되찾고 그들의 눈에서 눈물도 닦아 줄 늠늠한 메시아를
그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더군다나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도 아니고 메시아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무참이 수난을 받는다면 받아들이겠어요?
한 마디 말로 무시당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제어 어떻게 얻어맞고
무수히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어요?
그리고 이 예언도 아주 먼 옛적에 전해진 것이고 거기다가 기대까지
무뎌지고 관심도 없는 지경으로 흘러온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구세주의 수난의 성취를 이루시는 때를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당신 제자들마저도 기대하지 못하는 수난과 죽음에 대한
미래를 예언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흙속에 묻혀야 된다고요.
사람들에게도 사실 땅과 같은 아픔이 구원의 역사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주님과 함께 ‘쓴 잔’을 마실 줄 알아야 하겠지요?
주님의 수난과 구원의 역사를 본다면 ‘이유 없는 고통은 없다’라는 말씀이
우리에게는 새로워져야 합니다.
때로 겪는 기분 상하는 말 한마디도, 수모로 여길 수 있는 무시당하고, 터무니 없는
모함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 모든 것은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에서 다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길로 가셔야 하지만 나는 무시당해서도 안되고 마음이 상해도
안 되는 ‘절대적 이기’와 ‘오만’을 떨고 사는 우리입니다.
주님은 고통 받으셔도 되지만 나는 절대로 안되는 오늘의 나의 모습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수난을 또한 바라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고통의 신비여!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
첫댓글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