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지난 겨울에 또 다른 수녀님들 연피정을 하면서 신학교의 부설로 있는 하상 신학원 또 학생들 피정을 하면서도 이 기도라는 부분을 많이 강조를 했습니다.기도라는 게 우리한테 너무나 친숙한 표현이고 친숙한 용어이나 그리고 해야 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또 하고 있으나 기도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혹시 기도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있지 않을까? 이 시간을 통해서 한 번씩 짚어 보면은 나는 우리 기도 생활에 있어서 조금 보탬이 되지 않을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그래서 오늘 주제는 루카 복음 5장 16절 ‘예수님께서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저는 그래서 외딴 곳으로 물러가....‘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다.’요 표현을 좀 강조하면서 특강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그래서 제가 관련된 구절을 뽑았는데 글자가 너무 작네요.스크린이 작아서 어떤 내용들이냐, 우리가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데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셨다 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기도하셨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을 수 있어요.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니까 당연히 그냥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지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 이거에 대해서 의외로 생각하지 못해 봤을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제가 오늘 기도에 대한 특강을 하면서 신자 여러분들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예수님께서도 뭘 하셨다고요? 기도하셨다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지상 여정 안에서 무엇을 하셨다, 기도하십니다.여기서 우리가 정말 좀 깊이 새겨봐야 될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마태 마르고 루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 기도를 가르쳐주시는 장면을 빼고도 기도하시는 장면을 한번 세어보니까 17번이나.. 즉 예수님께서도 종종 또 틈틈이 기도를 하셨다는 거죠.
마태 14,23 따로 기도하려고 산에 오르셨다.
마태 26,36.39.42.44. 겟세마니에서의 기도
마르 1,35 아직 이른 새벽 캄캄한 때에,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 곳으로...
마르 6,46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마르 14,32.35.39. 겟세마니에서의 기도
루카 5,16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루카 9,18 혼자 기도하실 때 재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루카 9,28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루카 9,29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루카 11,1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주님의 기도
루카 22,40 너희를 위해 기도하셨다.
루카 22,41.44 겟세마니 기도
즉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는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처럼 그 기도의 모범을 닮아서 기도하지 않는다면정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만한 어떤 정말 그 자격이 있을까? 라는 성찰에 이르게 되죠.즉 그냥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죠?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기도하셨기 때문이죠. 즉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우리 삶 안에서 기도의 요소가 없다면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나만의 방식의 신앙생활, 내가 원하는 하느님을 만들어 놓고 그 하느님을 섬기는, 가짜 하느님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질 위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이 대표적인 예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잘 보여줬습니다.시나위 산에서 모세가 하느님과 만나고 있을 때 아론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를 했죠?황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게 하느님이다.우리를 이끌어냈다 하고 우상 숭배했던 모습, 그 모습 보면은 우리가 정말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자칫하면 정말 엉뚱한 곳으로 우리를 우리가 갈 수 있구나.그런 우리가 뭐라 그럴까요? 깨우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강의를 통해서 우리 성복동 신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큰 두 주제는 첫 번째 기도에 대한 개념 재정립입니다.기도가 과연 무엇일까? 기도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서 기도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고요.두 번째는 그러면은 그래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기도를 해야 되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기도하지? 기도하라는 말은 참 많이 듣는데 기도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라고 생각하실 수가 있기 때문에 제가 기도하는 법에 대해서 신학교에서 신학생들한테 안내해 주는 방식으로 우리 성복동 신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물론 여기에는 딱 정답은 없습니다. 이렇게만 해야 됩니다 라는 것도 없습니다.우리 정말 넓게 여겨지죠. 그런데 그 안에서 이렇게 하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라는 부분 제가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그래서 그렇다면 과연 기도가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죠.저는 이제 잠깐 한 예를 들게요.제가 지금은 신학교에 있지만 그래도 본당 신부도 했죠.본당에 있을 때 혹은 보좌신부로 본당에 있을 때 예비 신자분들 오시면 환영식 때 꼭 이렇게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잘 오셨습니다. 우리 예비신자 여러분 제가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여러분들은 성당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성당에 무엇을 위해서 오셨습니까? 라고 여쭈면 거의 10분 중에 9분은 이런 대답을 하세요.어떤 대답일까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라는 대답을 많이 하세요.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죠. 잘 오셨습니다.정말 잘 오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한 가지 짚어드릴게요.마음의 평화는 본품이 아니라 사은품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그냥 주어질 겁니다.여러분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시는 거 어쩌면은 맞습니다.왜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십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6개월 동안 예비신자 생활을 하시면서 누구를 배우게 될 겁니다.누구요? 그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알게 되고 또 그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느끼고 나도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무엇이 달려온다고요?마음의 평안한 사은품이 달려올 겁니다. 그러니 이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성당에 오셨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노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격려를 드립니다.그런 다음에 이제 6개월 예비 심사 시간이 지나면 맨 마지막으로 무슨 교리를 하죠? 정확히 종합 교리할 때 이런 말씀을 드려요.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곧 세례를 받으시게 될 텐데 세례 받기 전에 유혹이 많이 있을 겁니다.내가 과연 세례를 받아도 되나 이런 생각부터 별별 유혹 혹시 세례 받으면 더 안 좋아지는 거 아닐까?이런 유혹이 참 많은 것인데 말 그대로 유혹입니다.용기를 내서 나아가십시오. 그분께서 도와주실 겁니다.그래서 세례를 받으시게 될 때 제가 한 가지만 짚어드리겠습니다.혹시나 세례를 받고 나면 안 풀리던 일도 잘 풀리고 아프던 것도 나고 정말 원하는 건 다 이루어지고 이런 기대가 있으시다면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데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라고 말씀드리면 왠지 약간 실망하시는 듯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우리의 삶은 그대로 흘러갈 겁니다. 좋은 일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을 겁니다.하지만 그 어떤 일이든 간에 이제는 그 일을 바라보시는 여러분은 달라져 있을 겁니다.어떻게? 예수님을 모르던 때와 달리 이제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에 나에게 정말 축복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온다면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주님께서 나에게 미리 축복을 주시는 거 또 간혹 힘든 일이 몰려오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주님께서도 그렇게 힘든 일을 겪어내셨는데 나에게 이 시련을 허락하시는 섭리가 있겠지. 내가 이 시련을 통해서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고 또 누군가의 또 희생이 되어지고, 보속이 되어지고, 이 시련을 통해서 그분께 더 나아가고 그분을 더 사랑해야겠다. 라는 그것이 가능해질 겁니다. 라고 설명을 해드리는데 어떻게 공감이 되시나요?우리가 세례를 받는다고 천주교 신앙인이 된다고 해서 안 되던 일이 막 풀리고 복권 사면 매번 당첨되고 안 올라가던 집값도 올라가고 이런 일 없죠. 그런 일은 없습니다.오히려 그런 일이 있으면 유혹은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예비 신자분들이 오셔서 6개월 동안 하게 될 무엇이다 예수님 내용이다.예수님 아니다. 저는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 드린 이유는 우리의 신앙의 여정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 그 핵심을 바로 여기에 두고 싶기 때문이에요.뭐다? 예수님 알기, 맥락에서라면 우리가 하는 기도는 뭐에 대한 거예요?바로 예수님에 대한 것이에요.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얻게 될 게 무엇이냐? 바로 예수님에 대한 앎이라는 거죠.우리가 예수님을,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될 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던 그 시각도 바뀌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던 그 마음도 달라진다는 거죠.비록 나를 위해서 세상이 바뀌길 바랬으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닌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내가 바뀐다.왜 누구를 닮아가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가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런 표현을 하실 수도 있으세요?지금 내가 내 처지가 어떤 처지인데 지금 예수님 타령할 시간이 있느냐고, 그럴 겨를이 있냐고, 예수님께서 이 문제 해결해 주시면 내가 좀 관심 좀 가져보겠다고 라는 하소연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그런 어려움 중에 계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래서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지 모르겠어요.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먼저 하느님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장 28절, 루카 12장 31절에 동일하게 나오는 것입니다.즉 우리는 이 문제 해결해 주시면 내가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타협하기 쉽지만, 사실 그 후 순간에도 그분께서는 무엇을 바라시느냐? 먼저 예수님을 바라보고, 먼저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그러면 그 모든 것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하고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그분께서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겨내고도 남을 것입니다.그래서 저는 기도를 예수님 알기에 그 목적을 두고 싶습니다.
오늘 이 강의의 핵심은 이겁니다. 기도, 우리가 하는 일, 물론 드리는 기도 중에 우리의 간절함을 드릴 일도 많고, 우리가 정말 처해야 될 일도 참 많지만 기도하고 청했으면 나머지는 그분께 맡겨드리고, 우리가 기도 안에서 무엇을 더 청할 수 있을까 예수님 알게 해주세요.당신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해 주세요라고 청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저는 이런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기도는 예수님과의 데이트 신학생들한테도 그래요. 기도는 예수님과 하는 데이트다.우리 학사님들, 어린 시절에 성당에서 좋아하는 꽃순이랑 단둘이 이야기 나누던 그 시절 기억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다들 고개를 돌려요.그런 일 없었던 것처럼.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다 연애해 보셨죠?연애에 대해서 여기 전문가들이신 거잖아요. 연애할 때 어떨까요?데이트하러 나가는데 설레일꺼여요. 제가 이걸 알면 안 될 것 같은데 어저께 데이트하고 왔는데 오늘 가서 또 만나러.그럼 남들이 어디 가냐, 나 데이트 가, 어제 데이트 했잖아.어제는 어제 고, 오늘은 오늘, 만나고 싶어서 가는 거야라고 우리가 말하죠.오늘 가서 할 얘기가 또 무궁무진해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그 마음 안에 어떤 생각이 어떤 무엇이 느껴졌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정말 미주알 고주알 서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그것이 연인들이 하는 데이트의 핵심입니다.만약에 우리의 기도가 정말 예수님을 알고 싶고 또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고 그래서 바치는 기도라면 정말 뜯어 말려도 기도하러 갈 거예요.자기 어디 가? 나는 예수님이랑 데이트하고 성당에 기도하러가. 어저께 기도했잖아.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 다 이야기가 있어. 예수님과 만나서 내가 이야기 나눌 것이고, 오늘 예수님은 나에게 또 어떤 마음을 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은 거. 난 예수님과 머물 것이니 이렇게 말하고 성당을 찾겠죠.신앙교회에서는 영성지도 신부들 이제 저와 같이 영적 지도자 지도를 하는데 요즘에는 지도라는 말보다는 ‘동반’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그래서 영적 동반이라고 부르고 영적 동반자라고 부르는데 왜 그러느냐? 이 기도를 지도한다는 것은 사실은 주님의 몫인 거예요.
그러면은 이런 선생님들은 무엇을 하는 역할이냐? 같이 동반해 주는 가장 좋은 예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하시죠.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데 뭐에 대해 얘기하는 거죠?예루살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거예요.그때 그가 함께 걷게 되시는 거죠? 예수님이 걷게 되시죠?바로 이게 영적 동반의 가장 좋은 롤 모델이에요. 여담입니다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한 사람 이름이 혹시 기억나세요?클로파스, 예수님 십자가 아래에 있었던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 그 남편이죠.클로파스와 또 다른 사람 제자의 이름은 뭐였어요? 몰라요?안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걷는 사람이 클로파스와 예수님 그리고 다른 한 명... 그래서 영적 지도자들은 바로 이 이름 없는 한 명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영적 여정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엠마오의 두 제자 이야기입니다.
다시 오늘 강의 강의로 돌아와서 제가 동반자로서 영적 동반자로서 신학생들이 기도의 어려움을 겪는데 제가 이렇게 물었어요.기도할 때 어떤 게 제일 어렵니? 라고 물었는데 신학생들이 이제 두 가지를 이야기해요.첫 번째 마치 기도가 해야 될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만하죠.숙제처럼 느껴지고. 두 번째는 이거는 아마 공감하실 것 같아요.기도를 하면은 뭔가 뜨거움이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까 봐 두렵습니다.기도를 했는데 아무런 게 없을까 봐 두렵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얘기를 할 때 두 가지 얘기를 합니다.첫 번째 기도 숙제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의 목적을 분명히 삼으세요. 뭐라고 예수님 알고 싶어요?여러분 예수님 알고 싶은 마음에서 한번 기도해 보세요.그러면은 기도가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그리고 기도가 안 되면 안 된 그대로 가지고 와서 동반하면 됩니다. 라고 말씀을 지켜주죠. 두 번째 내가 기도를 했는데 뭔가 뜨거움이 올라와야 될 것 같은데 뜨거움이 없을까 봐 걱정됩니다.네, 괜찮습니다. 365일 기도했을 때 364일 동안 아무런 느낌 없다가 딱 한 번 느낌 있으면 그걸로 10년 우려 먹을 수 있습니다.그러니 기도할 때 늘 어떤 뜨거움이 있어야 된다. 라는 부담감 갖지 마세요.어떤 데이트가 맨 날 뜨겁겠습니까? 어느 날은 그냥 잔잔하고 고요하면서 서로 아무 말 없이 그냥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기도가 늘 뜨거움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을 하곤 하죠.
그래서 제가 아까 오늘 특강의 첫 번째 파트 두 번째 파트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첫 번째 파트 조금 정리해 드리자면 기도는 우리가 늘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거 잠깐 옆으로 밀어놓으시고, 기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딱 비유하자면 연인과의 데이트다.예수님 알고 싶어요. 라는 지향으로 한번 기도해 보시기를 정확히 안내해 드립니다.그것이 나의 기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께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에 여러 이슈들이 있죠.어려움들이 있고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그래서 이럴 때는 무엇이 필요하느냐? 그분께 대한 신뢰가 필요할 거예요.믿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잠깐 옆으로 놓아두세요.나의 간절함, 말씀드리고 잠깐 옆으로 놓아두세요.이건 놓아두고 그분께 맡겨드리고, 그분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 내 지향을 둬보세요. 초대를 드렸는데 여기에는 신뢰가 필요하죠.여기에 필요한 게 사실 믿음, 믿음 다른 데 가서 쓸 것이 아니라 정말 그분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나에게 더 알려주시는 그분께서 내 기도에 함께하실 것이다. 라는 이 믿음, 믿음을 발휘할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닐까 싶어요.그래서 저는 어디 특강을 가든지 이런 표현을 많이 씁니다.우리의 기도가 무언가를 바라는 기도 즉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정말 이루는 기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제 우리는 그분을 바라는 기도를 할 수 있는 단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되는 거죠.하느님“께” 바라는 신앙에서 무엇을 바라보시나 하느님“을” 바라고 즉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바꿔도 되고 예수님이라고 바꿔도 됩니다.늘 우리의 기도가 무언가 바라는 기도였다면 이제는 조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분을 바라는 그분을 밟기를 바라는 신앙으로 정말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다 라는 거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어떤 연인이 있는데 그 연인이 한편은 그 다른 편을 너무나 사랑해 그래서 정말 다 해줘요.원하는 거 다 들어주고 정말 다 들어줘. 그런데 다른 편은 왜 만나느냐 물었더니 내가 원하는 거 다 해줘.내가 뭘 바라면 그거 해주고 내가 뭐 해달라고 하면 다 해줘.그래서 난 좋아 라면은 이 둘의 사랑은 얼마나 가슴 아픈 사랑일까요?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다 해주시는 분이신데, 다 이루어 주시는 분이신데, 내가 그분을 그분께 다가가는 이유가 다 원하는 대로 해주니까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은 내 소원 들어주십니다. 라는 신앙의 관계라면, 물론 우리 아이들이 커가면서 처음에 부모님의 관계가 이렇죠.엄마한테 얘기하면 다 들어주잖아요. 아빠한테 얘기하면 들어주고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그 부모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다시금 자기네들의 자녀들에게 주듯이 사랑이 이렇게 성숙해 가지 아 물론 가끔은 안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만 우리의 신앙의 여정 안에서도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성숙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이미 그런 신앙을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하지만 아직 이제 그 단계로 나아가실 그 준비를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 특강을 통해서 정말 용기 내셔서 내가 바라는 거 나에게 시급한 건 정말 많지만 나 이제 예수님한테 관심 가져볼래. 예수님을 알고 싶어졌어. 예수님의 종을 알고 싶어졌어. 라고 약간만, 우리의 주파수라고 그럴까요?그 방향을 지향을 바꿔 놓는다면 우리 신앙은 그것만으로도 더 정말 풍요로워질 수 있다. 라는 걸 여러분들께 초대해드립니다.
그래서 이거를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은 ‘내적 인식’이라는 말로 쓸 수 있는데요. 우리가 기도 안에서 바라는 것 무엇 내적 인식을 정합니다.누구에 대한 주님께 대한 이게 쉬운 말로 표현하면 아까 드렸던 말씀 그대로입니다.예수님 당신을 알고 오신 거예요. 제가 당신을 알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주님께 대한 내적인식, 청함입니다.그런데 여기서 이 ‘알다’ 라는 거를 우리가 잠깐 짚어볼 필요가 있어요.내적 인식이라는 표현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알다 라는 의미를 좀 짚어볼 필요가 있는데 저 내적 인식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한 예를 들게요.
어디 성당에 어떤 복도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어요.요한1 4장 16절 뭐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맨 날 성당 오고 가시는 길에 그 글귀가 보였어요. 이렇게 딱 보였어요.글도 보였어요. 그런데 그 말씀에 대해서 요한1 3장 16절이라는 말씀도 알고 있어요. 외우기도 해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하다가 그 글귀 그 말씀을 보고는 갑자기 마음이 가슴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주르르르 나면서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어요. 혹시 그런 경험 있으신 분은 속으로 서주세요.있으시죠? 이게 바로 내적 인식이에요. 그냥 아는 게 아니고요.정말 내적 인식이 이거예요. 즉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알려고 하는 거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적인 차원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적 인지적인 차원으로 아는 거예요.그래서 이거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청하고 얻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기도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내적인 힘을 주실 준비가 이미 되어 계십니다.예수님은 성자이시고,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시어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나 다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거 빼고 다 알고 있어 라고. 생각하는 우리 마음 안에 우리의 눈을, 정말 눈물을 터뜨려 주시고, 그 모든 것이 그냥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 하셨구나. 라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그 모든 게 필요가 없어져요.그냥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고 눈물이 쏟아지는 그 순간그것이 바로 내적 인식이고 제가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싶은 앎의 핵심입니다.우리가 기도하면서 분명 우리는 그분께 내적 인식을 청할 수 있고 그런 내적 인식을 주실 그분 하느님께 주님께 바라는 신앙에서 주님을 하느님을 바라는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죠.우리가 그분을 바라는 이유 그거는 아까도 기도를 연인의 데이트에 비유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늘 내가 열심히 기도하며 내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었다면 이제 나를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에게 당신 전부를 내어주실 준비가 되어 계신 그분께 그분을 청하고 그분을 사랑할 힘을 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이겠죠.기도의 핵심일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이유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이유 또 다른 말로 이렇게 그분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간다는 내적 인식을 통해서 알아간다는 것은 바로 사랑한다는 의미이고 그런 사랑을 닮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실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야다 라는 동사 알아 라는 동작을, 사랑하다 라는 의미와 같은 내면을 갖고 있다고 하죠.많이 들어보셨을 표현일 겁니다. 이 안다는 것은 그냥 이렇게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랑한다 라는 의미입니다.우리가 기도 안에서 그분을 알게 해주십사. 청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식을 청하는 것이고, 그렇게 알아간다 라는 의미는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끔 해달라는, 왜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그렇게 사랑하셨습니까?요한복음 13장 1절에 아주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그분께서는 끝까지,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실 때를 아시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될 게 있죠. 예수님의 십자가 저거를 우리 그냥 십자가라고 안 부르고 뭐라고 부르죠? 십자고상.우리 개신교 형제들은 십자가 고상을 안 쓰죠. 십자가를 쓰죠.좀 갖고 있는 생각이 다르니까 그것도 존중받아야 될 것이고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고상을 씁니다.이 苦자가 붙어 있는 예수님께서 정말 고통당하시는 그 모습 그대로 담겨져 있는 거죠.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을까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 있어요.요즘에 복음에서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줘야 된다 라는 말씀을 계속하시죠.그래서 예수님께서 왜 도대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방식으로 저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을까?
제가 지난주엔가 지지난주엔가 어디 본당 미사를 하면서 제가 거기서도 했던 이야기인데 이번 사순 시기에 조금 새겨보셨으면 하는 주제입니다.잠깐 기도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하느님께서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의 죽음을 바라셨을까 안 바라셨을까?질문이 어렵죠. 저희 신학생 때인데 영적 지도 신부님께서 그렇게 물으셨어요.전 자신 있게 뭐라고 대답했느냐 바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부님께서 만약에 그런 하느님이라면 당신은 그 하느님 믿지 않는 거래요.어찌 어느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바랍니까? 아들의 죽음을 바란 하느님이라면 하물며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모진 분이 되실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신부님께서 해주신 설명이 저한테는 정말 뇌리에 새겨졌어요.말씀에 새겨졌어요.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사랑입니다.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언젠가 하세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는 예수님이 하신 사랑이 누구 사랑이라고요?아버지 사랑, 그리고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새 계명을 주실 때 뭐라고 하세요?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사실 그 누구처럼 사랑하라는 얘기예요. 성부의 사랑을 하는 거.근데 이 성부의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정말 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어요.이 사랑을 이렇게 해나가다가는 죽는다는 걸 알고.
그래서 사실 죽음의 위협도 많이 받으셨죠. 그리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죠. 인간이셨으니까 똑같은 거야. 죽음이 안 두렵다면 인간이 아니잖아요. 정말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시는데 뭐라고 마무리하시죠?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뜻이 뭐예요?아들이 죽는 거 하는 거 끝까지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왜 아버지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는 예수님도 알고 계셨습니다.그 사랑은 결국 당신을 죽게 만듭니다. 그러면은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겠죠.만약에 악마는 예수님의 죽음을 바랬을까요? 안 바랬을까요?저는 자신 있게 바랬습니다. 라고 말할 만하죠.악마가 바라는 거는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안 돼요.뭘 해야 되는 거예요? 죽음의 위협 때문에 그 사랑을 포기해야 되는 거예요.
영화<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보시면 예수님 돌아가시고 난 뒤에 성부의 하느님의 눈물을 형상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다음에 그 마귀가 광야에서 울부짖는 장면이 나와요. 왜 실패한 거예요? 예수님은 정말 마귀가 원한 거는 예수님이 나 무서워 나 죽을까 봐 두려워 사랑 안 할래?이렇게 사랑 안 할 거야. 나 살려줘 하기를 바랐던 거지.그분이 돌아가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왜 하느님이신 분이 돌아가심으로 인해 뭐가 되는 거예요? 죽음이 죽음을 당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부활이 사실 예수님이 죽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있어요.누구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사제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십자가 위에서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고 정말 그들은 바랬어요. 그분이 죽기를 그래야지 자기네들의 권력이 유지되니까.근데 악마의 유혹을 받아서 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그들이 자신들이 정말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거죠.마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앞에서 주저앉기를 바랐던 겁니다.바로 이게 성부께서 성자에게 하신 사랑이고 성자가 제자들에게 하신 사랑이고 그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진 사랑이라는 거예요.그렇다면 저 십자가고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제일 먼저 느끼는 게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이잖아요.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저 십자가고상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느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사랑, 사랑의 최고의 사랑의 고백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어야 된다는 거죠.저 십자가를 단지 고통과 죽음이 아니라 사람, 죽음도 막지 못했던 사랑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다시 기도로 돌아올게요.우리가 하는 기도는 바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 분을 배우고 그분과 그 사랑을 나누려는 그 장입니다.정말 그곳에 초대받는 이, 예수님께서 늘 우리 기도 안에 함께 하신다 라는 걸, 예수님께서는 말씀 그대로 정말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우리가 그분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분을 우리는 사랑의 원천이라고 부릅니다.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요한1 4장 10절에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어떻게 기도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르셨다면 좀 재정립이 되셨나요?내가 왜 기도하는지? 나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나도 예수님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맥락에서 기도해보실 만한 조금 원의가 생기시나요?
이제 2단계로 넘어가서 그러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해서 저는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리고 싶은 거는 두 가지입니다.하나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묵상 기도.이 묵상이라는 말이 참 많이 쓰입니다. 묵주 기도할 때도 쓰이고 성체을 모시고도 잠시 묵상을 합시다. 기도할 때는 묵상합시다. 라는 말 참 많이 쓰는데 여러분 오늘 주보간지에 나누어 드린 간략한 기도 안내를 보시면서 조금 설명을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앞에 1부를 너무 길게 해가지고 2부를 최대한 간략하게 소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이거는 우리 신학생들한테 기도 안내를 할 때 가르쳐주는 그 방식 그대로 우선 첫 번째로 묵상 기도에는 기도 자료가 있습니다.기도할 자료가 있습니다. 그 기도 자료를 무엇으로 삼는 게 가장 이상적일까요?복음입니다. 복음 말씀은 복음에 관한 말씀이에요.예수님에 관한 말씀, 그래서 우리는 천주교 전례에는 매일 미사 전례 독서가 있잖아요.그래서 친절하게 오늘 무슨 복음을 읽어야 될지도 너무 잘 가르쳐줘 저 그걸 따르기를 권해드립니다.즉 오늘 복음을 이제 준비하는 거죠.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내가 어디 가서 딱 무릎 꿇고 혹은 이제 앉아서 눈 감고 이제 예수님 생각해야지 시작하면 뭐 하는 거예요?나만의 상상하는 거죠. 나만의 상상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기도하는 자료가 필요한데 그 기도 자료가 무엇이다? 복음 말씀입니다.복음 말씀은 바로 예수님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구체적으로 기도 준비를 하는데, 이 복음 말씀을 기도하시기 전에 두 번 세 번 정도 정말 정독을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저는 정독을, 경청이라는 말로도 써요. 왜 무엇입니까?이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보는 순간 뭐가 되는 거예요?살아있는 말씀이시니 경청하십시오. 라고 권해드립니다.그러면서 학사님들, 우리 신학생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해요.여러분들 복음을 펼치신 후에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 보아도 오늘 복음이 뭔지 다 알죠? 복음을 많이 봅니다. 근데 이게 함정입니다.내가 너무 잘 아는 복음이니 뭘 하게 되는 거예요? 속독을 해버리는 거예요.그러면 오늘 다시금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두드려준 그 말씀을 우리가 못 만나는 거잖아요.그래서 다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경청해 보십시오.정성껏 그 말씀을 한번 읽어보세요. 달달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하지만 그 말씀을 정성껏 읽으시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 2개 정도 3개 정도 마음에 한번 품어보세요.이것이 기도 중입니다. 기도 준비와 본기도는 저는 이렇게 권합니다.따로 떨어뜨려 놓으세요. 즉 오늘 성당에 딱 와서 성당에 딱 앉아가지고 기도 준비하고, 기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지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권해요.그럼 어떻게 하느냐 매일 미사 오시는 분들한테 굉장히 유리한데, 집에서 미리 뭘 하는 거예요?복음 말씀을 경청하시고 그 말씀을 품고 성당에 오시는 길이 충분히 기도 준비의 시간이 됩니다.미사 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성당에 오셨던 그 미사 전에, 묵상을 하시면 되겠죠.그렇지 않고 미사 시간에 맞춰서 성당에 왔던 그 미사를 봉헌하고 난 뒤에 잠깐 10분 20분 묵상 기도를 하실 수 있겠죠.묵상 기도에 대해서 그거는 조금 이따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그런 다음에 묵상 기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뭘 하느냐 그거를 되새겨보는 겁니다.그거를 전문 용어로 기도 성찰이라고 부릅니다. 바둑 두시는 분들한테는 복귀라는 표현이 있잖아요.어떻게 바둑을 뒀는지 딱 보는 거잖아요. 신기하게 정말 한 수 한 수 다 기억나세요?내 기도 성찰도 내 기도 안에서 어떤 은총이 있었는지 돌아보고 마치 꿈결과 같아서요.기도는 꿈결과 같아서 기도 안에 은총이 충만했을 때 너무 기분 좋고 행복하고 편하다고 하지만 조금 지나잖아요.내가 기분 좋았던 거 기억나 왜 좋았지 하고 까먹기가 쉬워요.그래서 기도 성찰을 통해서 내 기도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가장 은총이 큰 것 위주로 그 하나만 딱 기억하시고 또 매일 미사책이라든가 아니면 나만의 영적 노트가 있다면, 거기에 조금 메모해 놓으시는 것도 굉장히 유익할 겁니다.제가 아까 기도하시기에는 매일 예사 드리시는 분들께 유리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미사를 보고 나시면, 본당에서 본당 신부님이 뭘 하시죠?강론을 읽으시잖아요. 그 강론이 나의 기도를 비춰주는 좋은 성찰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요.혹은 미사 전후에 기도하시는 분들에게는 나의 기도를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어요.그런데 묵상하실 때 꼭 기억하셔야 되는 것, 아까 또 어려운 말로 주님께 대한 내적 인식을 청함, 다른 말로, 쉬운 말로 예수님 알고 싶어요. 라는 마음은 늘 계속 간직하고 계셔야 돼요.이거를 무엇에 비길 수 있느냐? 내비게이션을 비길 수 있어요.예를 들면 이런 거죠. 차에 탔어요. 그리고 시동을 걸었어요. 그다음에 드라이브에 딱 넣었어요. 그리고 나서 어디로 가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차에 시동 걸기 전에 어디 갈 곳이 있기 때문에 시동을 걸어요.그 갈 곳은 내비게이션에 찍고 출발해야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기도 안의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주님 알고 싶어요.당신을 조금 더 알고 싶어요. 더 알게 해주세요. 그래서 더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목적지를 설정해 놓으시고 기도에 임하시면 되고 기도하다가 근심으로 빠진다던가, 다른 곳으로 빠졌다 그러면 다시 그럼 내비게이션이 뭐라고 하죠?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다시 안내해 드립니다.하잖아요. 그것이 우리 근심에 대한 좋은 안내가 되죠.그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장황하게 설명 드리는 거 왜 우리가 기도하죠?예수님 알고 싶어요. 이것만 잘 붙들고 계시면 기도하시는데 계속 길잡이가 되어주실 것이고 주님께서도 그렇게 이끌어주실 겁니다.그래서 기도 준비와 묵상 기도 그다음에 기도 성찰 이 세 가지 단계를 설명을 드렸는데, 그러면 어느 정도 기도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물으실 수 있지요.
저는 이제 영신수련 동반은 담당인 거거든요. 이냐시오성인이 만든 영신수련이라는 거 들어보셨을 거예요.거기서는 묵상 기도를 1시간은 넘지 않기를 권합니다.그래서 저도 신학생들 앞에 1시간 넘게 기도하지 마라.신학생들 다행이나 하지요. 보통 20~30분 정도 묵상 기도를 하게 되는데 여러분들께도 너무 처음부터 오랜 시간 묵상을 하려고 하지 마시고 괜찮으시다면 20분, 10분 괜찮습니다.그렇다면 1시간 기도할 때 기도 준비는 15분 넘지 말라 그래요.왜 기도 준비 많이 하면 더 잘 될 것 같은데 그렇다면 기도 준비가 너무 많으면 그 기도는 누가 주도권을 갖는 거예요?내가 같은 거예요. 사실 기도는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실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겁니다.그래서 1시간 기도할 때 15분 넘지 말라고 해요.그럼 한 20분 기도한다면 한 몇 분 정도가 적절할까요?한 3분 45초 마무리 5분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래서 집에서 나오시기 전에 5분 정도 성경 복음 말씀 읽으시고 성당에 오시는 길에 휴대폰 보시는 일도 있고 사람 만날 일도 있겠지만 그 말씀을 계속 이제 곰곰이 새겨보시면서 성당에 오셔서 묵상하시고 그다음에 미사해 보세요.그 미사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정말 은총이 더 콸콸콸콸 넘쳐 흐를 수도 있고 물론 모든 기도가 그렇지는 않지만 때로는 메마름도 있을 수 있어요.그렇게 기도하시고 미사하시고 집으로 가시면서 내 기도 안에서 어떤 은총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의 좋은 예일 겁니다.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기도 준비를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까 궁금하실 것 같은데 오늘 복음 말씀이죠.요한복음은 사실 조금 좀 난해함이 있어요. 하지만 그래서도 기도하기 좋은 복음이기도 해요.예를 들면 이 복음 말씀을 읽는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하나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우리 마음에 부대낌이 있을 수가 있었겠죠.근데 오늘따라 이 말씀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이 말씀을 품고 성당에 와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밀알 하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하늘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이제 내가 그 밀알이 되겠다. 즉 그전까지는 우리 입으로 그렇게 하라고 너 왜 그렇게 해야 돼? 느껴졌던 말씀이 그런 내적 인식이 있는 거죠.예수님께서 지금 이것을 당신이 하시겠다고 나에게 알려주고 계시는구나. 라는 것이 다가오면서 그냥 내 마음이 한없이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하지? 하고 경계하던 마음이 확 녹아내리면서 나를 위해 그렇게 목숨을 바치셨구나. 라는 그 맥락으로 이 복음 말씀이 새롭게 다가올 수 있겠죠.이거는 하나의 예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어떻게 노크하시고 어떻게 준비되셔서 내 마음을 울리실지는 그분과 우리 각자만의 데이터 안에서 이루어질 일이니 정말 그 안에서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도하기 좋은 팁, 예수님의 기도의 모범을 보면은 예수님은 늘 기도하시기 위해 어디로 가셨어요?외딴 곳, 혹은 산꼭대기 우리만의 외딴 곳과 산꼭대기가 필요합니다.그렇다고 광교산 올라가시라는 얘기가 아니라, 나만의 기도하는 장소 마련해 보시면 좋아요.성당에 꼭 어느 장소일 필요는 없지만, 난 어디 가서 기도하겠다 라고 그런 나만의 기도하는 장소 마련해 주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또 예수님 언제 기도하셨죠? 이른 새벽 혹은 한밤중 그렇다고 한밤중에 와서 기도하시라는 얘기가 아니라 나만의 미래, 새벽, 나만의 한밤중을 마련해 보시면 좋아요.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얼마나 기도하셨죠?이런 표현이 많이 나오는 밤을 새워 기도하신다. 그렇다고 여러분들 밤새고 기도하시지 마시고 나만의 기도하는 시각.그래서 저는 이렇게 세 가지 말씀드립니다. 나만의 기도하는 장소, 나만의 기도하는 시간, 나만의 기도하는 시각을 정해놓으시면 기도 생활하시는 데 좀 안전장치가 됩니다.
매번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두 가지 정도가 충족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지켜줄 겁니다.이런 표현도 쓰고요. 또 이런 조언을 해요. 나 오늘 20분 기도할 건데 기도하다 보니까 너무 잘되는 것 같아 이 말씀이 그냥 쏙쏙 들어와.그래서 난 기도하다 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더 해야겠다.30분 40분 해야겠다 이거는 권해드리지 않습니다.그냥 처음에 기도하시기로 한 만큼만 기도하시면 됩니다.그렇다면 20분 기도하기로 했는데 5분 앉아 있다 보니까 도무지 안 돼 그러면은 그만하고 뛰쳐나오기를 권해드리지 않습니다.기도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그러니 원래 기도하기로 한 만큼 기도하십시오라고 권해드립니다.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유혹이 있을 수 있죠. 안 되니까 다음에 해. 안 돼도 내가 기도하려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습니다.더 되니까 더 해볼래? 아니요. 주도권은 그분께 있습니다.기도하기로 한 시간 그만큼 맡겨드리고 감사하면서 기도를 마치시면 되겠습니다.그리고 기도할 때 자꾸 답을 찾으려고 할 수도 있어요.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답이 없네. 기도한다고 답이 주어진다면 오히려 조금 경계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답이 어떻게 그렇게 똑똑 주어집니까? 물론 명확하게 밝혀주시겠지만 어떤 답을 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는 것, 또 기도하는 데 좋은 팁이 될 겁니다.그리고 기도하다가 호기심의 유혹에 빠지는 위험이 있어요.대표적인 예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복음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게 어디 있어요?예수님께서는 땅바닥에 주저앉으면서 바닥에 무언가를 쓰셨다.우리 다 그쪽으로 쏠릴 위험이 있는데 그건 전형적인 호기심의 유혹입니다.우리의 기도를 오히려 방해합니다. 그건 그 땅바닥에 무얼 쓰셨는지 누가 아세요?예수님만 아세요? 그건 나중에 우리 하늘나라 가서 물어보면 돼요.그게 뭔지 파악하다가 진짜 예수님 이 복음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묵상할 수 있는 거를 놓칠 수가 있겠죠.또 다른 데에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있는데, 12광주리에서 3만개 계속 나오는데 그 빵이 어떻게 계속 남았지? 광주리를 들여다보느라고 기도가 끝나는 경우도 있어요.그럼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어떤 호기심을 채우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 어디에 있다고요?예수님, 예수님 아는 곳에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기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에 대한 팁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도하다 보면은 이건 내 생각일까? 아니면 그분이 주신 것일까? 궁금해 하시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이거 그리 구별할 이유가 없습니다. 같이 한 시간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은 이게 내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그분이 주신 것인지가 아니라 그 기도에서 본 어떤 인식이 나를 어디로 지향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즉 이런 뜨거움이 있었는데 이게 예수님이 주신 걸까? 아니면 그냥 나만의 상상일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 이 뜨거움이 나를 어떻게 이용하던, 그분을 더 사랑하게끔 이끈다면 그것은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기도의 은총이다.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셔도 좋겠습니다.
두 번째 짧게 언급 드리면 드리려고 하는 거는 양심 성찰인데요.이거는 원래 미리 안 나눠드렸고 오늘 제가 들고 왔는데 우리 신학교에서 신학생들한테 나눠주는 겁니다.제가 묵상 기도와 양심 성찰 이 두 가지를 제가 다루게 된 이유는 묵상 기도는 기도 자료가 뭐라고요?복음 말씀, 오늘 하루의 복음 말씀 양심 성찰에는 기도입니다.양심 성찰이 내가 뭐 잘못했고 뭐 잘못했고 뭐 잘못했네를 생각하는 게 양심 성찰의 핵심이 아니라는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거예요.양심 성찰의 기도 자료는 뭘까요? 바로 나의 하루입니다.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이 양심 성찰을 할 하루에 마감하는 그 시간까지의 나의 하루가 바로 양심 성찰의 기도 자리입니다.즉 아까 묵상 기도는 복음을 가지고 준비하고 묵상했고 성찰했잖아요.그거는 이제 미사 전후로, 매일 미사 드리시는 분 혹시 주일에 오시는 분들도 그렇게 묵상 기도를 하실 수 있겠고 그것과는 별개로 하루를 마감하실 때 침대에 앉아서 내 하루를 잠깐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다면 이 방법을 한번 써보시기 바랍니다. 이 양심 성찰의 기도의 자료는 나의 하루입니다. 나의 하루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중에 1번이 뭐죠?감사하기입니다. 감사 하기는 5번까지 있지만 제가 파격 할인해 드려서 1번만 하셔도 됩니다. 1번만 완전 파격적이죠. 3 4 5번 다 생략하셔도 돼요.하지만 1번만 하셔도 돼요. 이게 어떤 의미냐면 오늘 하루 내가 드릴 감사가 어디 있지 라고 찾는 일이 되거든요.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우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볼 수 있어요.불평과 불만, 원망 혼 그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 은총일 수 있겠구나.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마른 땅에서 물주고, 배고프다면 만나주고, 고기 좀 먹고 싶다면 메추라기를 줬는데, 돌아서면 너 나를 죽이려고 여기가지 끌어냈느냐? 망각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기를 떠올리는, 활성화시키는 건요.우리의 삶을 바꿉니다. 비록 오늘 하루가 너무 고되고 힘든 일로 가득 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드릴 감사가 없을까? 그 감사를 찾는 그거 하나면 양심 성찰의 기도가 충분합니다.그리고 감사드립니다. 그다음에 하실 수 있다면 성령을 청해서, 성령께 청하면서 내 하루를 그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십사.그래서 부족함이 있다면 그 부족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은총이 있다면 그 은총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렇게 우리가 살펴볼 수 있겠죠.마지막으로는 주님과 대화 주님과 대화하라고 그랬더니 대상을 만나러 오는 경우가 있어요.주님 저 오늘 힘들었어요.그래 많이 힘들었느냐 그래이런 의미의 대화가 아닙니다. 그냥 내가 그렇게 말씀드리면 돼요.그분은 침묵 가운데 묵묵히 들으시고 응답하실 거예요.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만 당장에는 아무 말씀 없으셔도 다음 날 잠깐 뭘 하는 순간 나에게 탁 건드려주시는 때가 올 겁니다.그렇게 대화하시면 되겠고 이제 결심도 이어가시면 오늘 생각보다 조금 길어졌는데요.요약 정리 해드리면서 책 한 권 더 소개해 드릴게요.
우선 기도하는 이유, 예수님 알고 싶어요로 한번 전환해 보십시오.그러면 우리 신앙생활이 어떻게 바뀌는지 한번 체험해 보시기를 초대해드립니다.왜, 그분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죽음도 거부하지 않고 죽음도 그냥 받아들이신 분이신 거예요.그분이 나를 기도 안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뭐 하기 위해서 데이트를 하고 계신다.그래서 그분의 초대에 응답해 보시기를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두 번째로는 기도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소개해 드렸어요.첫 번째는 묵상 기도, 복음을 가지고 묵상하고 또 매일의 전례 안에서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서 나의 기도를 또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 번째는 양심 성찰기도 오늘 하루를 마감할 때 정말 하느님께 드릴 감사가 무엇인지 그 감사를 찾은 뒤 나의 하루를 성령의 빛으로 돌아오는 정말 해보십시오.그래서 저는 신학생들한테 얘기해요. 기도에 대한 아무리 놀라운 지식을 갖고 있고 기도에 대해서 해박하다 하더라도 기도는 안 하면 안한 거지만 기도에 내가 서툴고 잘 몰라도 기도하면 한 거다. 남은 사순 시기 보내시면서 신앙생활 여정 안에서 이 지향을 두고 한번 해보시기를 초대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