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학교 창립을
위해 같이 추위를 무릅쓰고 나와 같이 다녔던 친구,
빙판에도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학교에 나오다 갈비뼈를
다친 친구,
열심히 영어를 가르쳐 주시던 강사님!
학생들이 가까히 했던 이들이 모두 하늘나라로 가는 슬픔을 맛봤다.
특히 이 가운데도
50대의 미모를 갖췄던 젊은 여선생님이 생을 달리 하심에는
보통 충격이 아니였다.
일 년 여를
잘 지도하시던 이 선생님은 가끔 강의를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불편해서 좀 쉬어 야 겠어요. 나보다 훨씬 잘 가르칠 분을 소개 해 드릴게요’란
말을 남긴 채
사임했지만 무심하게도 나는 연락도 하지 않았었다.
그 대타로 오신 분이 바로 역대 강사중 제일 인기를 끌었던
이주남 선생(가스펠교회딤임 목사)이다.
언제나 미국
여강사를 대동하고 강의를 맡았던 이 목사님은 한달 후 나에게
‘그 여선생님이 소천하셨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 줬다.
그 여강사님은 가스펠교회 출석하는 착실한 교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 열정을 다하는
강의모습, 젊은 나이에 마지막
가는 길 이라도 보지 못함에 몇일후
영원한 세계에서 편히 쉬길 바라는 카드와 곷다발 하나를 가정에 보낸게 전부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찡~하는 마음 금할수없다.
뿐만 아니다.
얼마 후엔 사랑하는 나의 처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일도 일어났다.
병석에서 투병하던
아내를 봉사란 미명(美名)하에 옆에서 지켜주지 못한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얼마후엔 조은학교에 큰 이변이 일었다.
신임 한인회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역대 한인회장이 한인회 부설로 역여
모든 책자에도 그렇게 소개된 사실엔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
‘조은학교는 더 이상 뉴저지한인회 부설이 아니다’라고 선을 긎고
작은 사무실을 얻어 이전했다.
이 때에 이곳 여러 신문,방송등
언론기관에선
'뉴저지에서 각광받던 조은학교가 문닫을 신세’라고 대서 특필했다.
그러자 많은 동포들이 교회나 사무실 제공을 할수
있다고 전화를 주셨고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던 현 도너반 버겐타운티장도 교육국장에 지시하여
본인이 직접 찾아가 여러번 상의를 했었으나 주로
성당의 사무실 등을 추천했다.

수강생들이 모인 팔팍 공립도서관에서 이주남 선생님의 영어강좌
이렇게 바삐 현지를 답사하며 위치,교통편등을 마추려 여려움을 겪을때
한통의 전화가
귓전을 울렸다.
한인 제일 밀집 중심인 팔팍 공립도서관을 하루만 사용 할수있다는 내용이였다.
그 주선자가 바로 현 뉴저지한인회 박은임 수석부회장이다.
학생임원들과 상의 한 결과 영어 강좌만 우선 하기로 결정하고 더 낳은 장소가
나타나지 않으면 문을 닫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목요일 만을 사용키로 했다.
별도 조은학교 비품이나 집기 등은 그대로 둔체 들어갔다.
이 때 40 여
명의 청강생이 모려들어 메스컴을 타기 시작하자 괴의한 일이 일어났다.
공립도서관에서 ‘왜 돈을 걷는 조은학교를
받아 드렸느냐’는 항의성 전화였다.
'못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보에 모두들 황당 해 했다.
즉시 단 $1도 걷지 않았기에 헤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에 대한 환멸은
지금까지 머리속에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역경을 거치면서 뉴저지한인회로 다시 돌아온 조은학교는
한국 서예공모전에 입선하는 등 7개 과목에서 안정을 찾고 열심히 배워가고 있다.
이제 스승과 제자가 합심하여 커가고 있는 사제동행(師弟同行)을 보면서
이임식을 마치고 일선에서 물러난 마음 너무 편하기만 하다.
세상만사 때가 있는 법이어늘 나는 이때를 좀 놓쳐 늦은 감이 있지만.
그간 조은학교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조은학교가 오랫도록 아름다운 발자욱을 남기길 소망한다.
이상 글은 조은학교 발자취를 위주로했기에 나 자신을 들어낸 글귀가 있었다면
널리 용서 있기를 빈다. (끝)
첫댓글 조은 학교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고생 많으셨네요. 이제 남은 생을 편안하게 즐기시고 여유있게 사세요.
고맙다. 한국에서...
새해엔 존일만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