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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용길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영산
신 돈(辛旽) 편조할아버지 (1990. 8. 5) 고려 말 영산후인 신자 돈자 할아버지께서는 저의 13세조 청한거사 편조 할아버지이십니다.
고려 말의 왕들은 나약하고 권력도 없고 신하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었습니다.
시작은 고려중기 제18대 의종왕(1127.5.23.생 1173년 11.7.졸) 재위(1146~1170)24년간 19살에 왕좌에 올라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문벌귀족인 문신(글 하는 사람)들이 무신(군인)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하여 이를 참다못한 군의 수장이었던 정중부가 난(구데타)을 일으켜 문벌귀족들을 깡그리 죽이고, 왕좌에서 쫓겨난 왕을 3년 뒤 이의민이 죽인 무신의 난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0년간은 무인들의 독무대가 되었습니다.
무신들이 저들의 권력기구를 만들어(지금 국회마냥) 조정이나 왕을 마음대로 살해하니, 왕은 무신들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이때 1280년 몽고침입으로 원에 항복하고 고려에 정동행성 기관을 설치하고, 고려왕자는 어릴 때 볼모로 원에 잡아가서, 몽골(원)공주와 결혼해 왕이 되어야만 고려로 뒤돌아옵니다.
이러니 사실상 고려의 왕실은 힘이 약했습니다.
이때 원에 빌붙은 친원파 권문세족들 중에 원에 공녀로 끌려가 후궁이 되고 더욱 기황후가 된 오라비 기철을 비롯한 권문세족들이 왕보다 더 큰 엄청난 부귀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고려 31대 공민왕은 볼모로 원에 잡혀갔다 노국공주와 결혼 하여 왕이 되어 돌아왔으나 이미 원나라의 세력이 쇠약해져 가고, 명나라(지금 중국)가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공민왕은 최영장군과 장수이자춘(이성계의 아버지)을 시켜 쌍성총관부와 요동을 공격 100전100승하고 친원 세력 기철,권겸,노정 등 권문세족을 제거 원의 정동행성을 폐지하고, 고려는 100년 이상 지배당하던 영토를 회복했지만 오랜 전쟁으로 국력은 쇠약해지고 있을 그 때 신돈(편조) 청한거사라는 승려가 인도와 중국 스메르와 지중해를 7세 부터 주유하고 13~4살쯤 득도하여 원나라에 다시 도착하여 볼모로 잡혀온 공민왕과 우연히 만나 비슷한 나이에 영민함을 잘 아는 공민왕이 후에 1358년 김원명의 소개로 다시 만나 서기1366년 신돈에게 왕사(王師:).사부(師傅)왕의스승 직함과 개인에게 무려 28개 관직을 내려 개혁 작업을 진행하던 중, (세계에서 제일 긴 51자 직함을 가져 기네스북 감이죠) 공민왕이 지극히 사랑하던 중전(노국공주)이 왕자를 출산하다 사망한 이후로 공민왕은 삶의 의욕을 잃고, 불교에만 심취하여 나중에는 실망스런 별 엉뚱한 일을 하며 신돈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이틈을 이용한 기득권세력들이 합작하여 신돈이 전민수정도감을 설치 혁신적인 엄청난 개혁을 이룩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득권 세력에 밀려 실패로 끝나 처형당한 신돈 우리 편조할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요승으로 소문을 만들어 퍼뜨렸습니다. (지금처지와 꼭 같음) 이때 호위하던 홍윤(김재규 모양)에게 공민왕(박정희 모양)이 살해당해 고려(대한민국 마냥)부흥이 사라지고 정국혼란을 틈타 이인임이(전두환 모양) 권력을 잡아 <빨리 정세를 수습한다.>며 공민왕과 궁녀반야 사이에서 태어난 제32대 우왕을 세웠습니다.
정도전이 이성계의 측사로 끊임없이 반야는 신돈의 시녀이니 우왕이 공민왕의 왕자가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니 정통성이 없는 비왕(왕이 아님)이다. 소문을 내어 퍼뜨렸습니다. (현재 좌 빨 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사전시나리오를 만들어 흔드는 것이나 꼭 같습니다.) 하여 정도전은 신씨 문중과는 대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성계가 우왕을 폐할 때에 써먹습니다.) 우왕이 나이가 10살로 너무 어려 왕의 자질이 모자라 이인임이 모든 정권을 잡아 섭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최영과 이성계가 합작 이인임을 축출하여 우왕은 더욱 옴츠러들었습니다.
또 세력이 커지기전 명(현재 중국)을 쳐야 한다는 최영의 말에 반대하는 이성계의 청을 듣지 않고 요동정벌을 명하였다. 마침 전쟁진지를 구축한 위화도에 오랜 장마로 진격하지 못해 문책당할 것을 고민하든 이성계가 장수와 군사들을 회군시켜 도성을 함락하고, 궁궐에 진입하여 최영장군을 몰아내고 우왕을 강화도에 유배 보냈습니다.
다음 33대 창왕은 이성계의 마음대로 우왕과 창왕은 신돈의 자식(정도전이 퍼뜨린 헛소문) 이기 때문에 왕이 아니다. 하여 왕좌를 빼앗아 폐위시키고, 이듬해에 우왕 창왕이 이성계를 제거하려 한다고 누명을 씌워 두 왕을 죽이고.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34대)을 왕위에 올렸으나.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던 온건혁명파이자 (지금의 국무총리 황교안 같이) 국민의 추앙을 받는 정몽주를 이방원(이성계 5남)이 개성 선죽교에서 살해하고, 왕좌를 빼앗아 원주로 유배시켰다가 아들과 가족을 몰살 왕가의 대를 끊어 후한을 없앴다.
31대 공민왕, 32대 우왕, 33대 창왕, 34대 공양왕 고려의 마지막 왕들은 권문세족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정도전 파들에게 살해되고
(환기8172년) (단기3250년) (불기1461년) 서기 917년에 왕건이 세운 34대 475년간 면면이 이어온 고려역사는 해가지고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현재 당파싸움과 비교해보세요 뭐가 다른지!)
475년 역사를 이야기로 쓰려니 많이 부족합니다. 이해바랍니다. 위 내용은 영산신씨(靈山辛氏) 족보와 사료에 근거해 쓴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2017.2.10. 영산후인 30세 신 용 길(辛容吉)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