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127 號 Online Photo News 💏
西 紀 2022 年 12 月 06日 火曜日
檀 記 4354 年 11 月 13日 庚子(경자)
compilation : 시나브로 李 福日 (鎔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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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임 진천형님 께서 보내주신 좋은 글을 공유합니다.
눈물 나도록 살아라. 🍎
(Live to the point of tears)] ♧
이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 (1913~1960년) 입니다.
카뮈는 '하루 하루 최선을 다 해 살라' 는 의미로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 더욱 실감나게 삶을 살다간 영국의 여류 극작가 Charlotte Kitley (샬롯 키틀리)의 인생 삶에서 진수를 느끼게 한 그녀의 유언장 같은 글을 소개합니다.
그녀가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는데, 그후 암 세포가 간과 폐로 전이되어 종양 제거술 2회, 방사선 치료 25회, 화학요법 치료 39회 등 암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는데 안타깝게도 남편과 5살, 3살짜리 자녀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글 입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이렇게도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지금까지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깨우고, 이 닦으라고 소리지르는 나날들이 모두가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 봤습니다. 기본적 의학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어요.
한방에 가서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모두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 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 주고 뽀뽀해 줄 수 있다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얼마 후에 나는 남편의 곁에서 잠이 깬 이른 아침의 기쁨과 행복을 잃게 될 것이고, 남편은 무심코 커피잔 두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게 되겠지요.
딸 아이 머리 땋아줘야 하는데 이제 이를 누가.., 아들이 가지고 놀던 레고의 한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나만 아는데 그건 이제 누가 찾아 줄까요.
의사로 부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22개월을 살았습니다. >
그렇게 1년 넘게 보너스를 얻은 덕분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가슴에 품고 떠나 갈 수 있게 됐지요.
아이의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 했었습니다.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다가니 감사 합니다.
감사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중년의 복부 비만 같은거 또 늘어나는 허리둘레 같은거 그거 한번 가져 봤으면 좋겠어요.
그 만큼 살아 남는다는 얘기 잖습니까?
저는 한 번 늙어 보고 싶었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샬롯 키틀리, 기탄없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속 깊숙한 곳 까지 닿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잠이 깨면 매일 별 생각 없이 하루를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어제도, 그제도 그랬듯이 하루를 대충 대충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맞이하는 오늘 하루, 그 하루가 어제 죽어간 사람들에겐 그토록 그리워 했던 그 내일이었고, 그들이 고대하고 누리고 싶었던 하루였음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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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李 相龍님 께서 보내주신 좋은 글을 공유합니다.
감사의 기억으로 씨앗을 뿌려라 🍎
慈恩 편지
(세상을 보는 지혜, 1170회) 2022.12.02.(금요일)
감사의 기억으로 씨앗을 뿌려라
고등학생 때만 해도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이 부도를 맞게 되었고 그 이후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파출부로 일하셔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채권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힘겹던 시간이 지나고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무료 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데 때로는 저희 아이를 데리고 갑니다. 식사하러 오는 사람 중에 노숙인도 있다 보니 혹여나 저희 아이에게 해가 될까 싶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명절날, 어머니는 당신이 봉사하는 곳으로 저를 데려가셨습니다. 구석진 자리에 저를 앉히시고, 식판에 밥을 떠 주시면서 말했습니다.
"거기가 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식사했던 자리다. 사업이 망하니까 친척도, 친구도 모두 네 아버지를 버렸는데 유일하게 네 아버지에게 따뜻한 식사를 줬던 곳이 여기야. 난 여기서 식사를 하는 이 사람들을 보면 너희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아프구나."
전 울컥하는 마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가끔 어머니를 따라서 자원봉사를 하러 나가곤 합니다.
처음부터 노숙인이었던 분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독거노인이었던 분도 없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더욱 외로우신 분들... 따뜻한 하루는 오늘도 어려운 우리 이웃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선한 봉사의 씨앗을 뿌려라. 감사의 기억들이 이 씨앗을 자라게 할 것이다.
- 마담 드 스탈 -
출처 : -‘따뜻한 하루’ 따뜻한 편지(2252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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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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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크랩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