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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sda교회 카스다 게시판에서 발췌한글입니다
저는 이책을 수년전에 다 읽은책입니다만
아무튼 이런글들을 통하여
재림교회가 이제 슬슬 그들이 하늘천사의 기별을 거절하고 행위로도 거절하고
결국 촛대가 떠난 교회가 되었음을 모든 백성들도, 말세가 되었으니 모두 다
알게하실것으로 봅니다
그런후에 심판해야 하실것이기 때문입니다
♨ (4).늦은비를 받으라 (로웰 스카브루 저, 김중훈 목사 역) * (제 4 장) 1888년에 무엇이 거절되었는가? ♨
늦은비를 받으라 (로웰 스카브루 저, 김중훈 목사 역)
제 4 장
1888년에 무엇이 거절되었는가?
과거 우리 백성들 중 얼마는 1888기별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
였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보다 폭넓은 영역을
깨달았으나 그들의 기록들 가운데 무엇이 거절되었는지에 관해
서는 실제로 특별히 기록하지 않았다.
내 자신의 경험과 내가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바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경험으로 보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로부터 더욱 더 멀리 떠나고 있는
데, 이것은 다수가 우리 교회 내에 들어오고 있는 최근의 잘못에
대항해 설 준비없이 남아있게 될 때까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888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개혁
신학의 부활에 불과하고, 아무것도 진리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기별을
우리가 거의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에, 1888년에 거절되었던 것
이 무엇이었는지 그 증거를 여기에 제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미네아폴리스
기별은 두 가지 개념을 갖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입혀 주시는
의와 그의 나눠주시는 의, 하늘을 위한 우리의 자격과 적합성
등이다.
거절된 것은 전체적인 기별이었는가, 아니면 바로 한 가지 개념
이었는가. 그렇다면 그중 어느 것이 거절되었는가?
와그너가 1888년 11월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그의
연구를 발표하기 전에, 그가 연구한 갈라디아서의 율법에 대해
발표하였다. 목사들 중 얼마는 그의 입장을 심히 반박하였고 이
것이 뒤따랐던 믿음에 관한 그의 발표에 선입관을 일으키게 하였
다. 다음 문장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선입관념을 굽히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마음은
주로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E. J. 와그너와 A. T. 존스 두 형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반대한 정신에 다분히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단은 반대하는 정신을 자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께서 저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성령의 특별하신 능력을 우리
신자들에게서 빼앗는 데 성공하였다. 원수는 사도들이 오순절
이후에 진리를 선포한 것처럼 저들이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얻지 못하게 길을 막아 버렸다. 진리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비출 빛이 거절당하였으며 우리 형제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1 SM 234)
여기서 거절당한 것은 와그너와 존스를 통해 주신 주님의 기
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온 세상을 그 영광으로 환하
게 할 빛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여기서 언급하는 그 영광으로 환
하게 비출 그 빛이 무엇인가? 위 문장의 전 후 문맥으로 볼 때 그
것은 늦은비임을 보여주는데, 그럼 늦은비란 무엇인가?
늦은비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지는 그리스도의 나눠주시
는 의를 말한다. 이는 나눠주시는 의를 받고 전진하는 점진적 경
험이다. 우리는 이 반대를 받고 거절 당한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
는 의의 성화적 개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주석을 주의 깊이 살펴보자.
“나는 한 사업이 백성을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함을 안다
(이른비). 그렇지 않으면 다수가 온 땅을 그분의 영광으로 환
하게 밝힐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의 빛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무익한 것을 계속 바라본다면, 하나
님의 영광(그리스도의 나눠 주시는 의)을 받기 위해 늦은비의
때에 영예로운 그릇으로 발견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TM
488~489) (괄호안의 말은 보충된 것임)
배틀크릭은 미네아폴리스 총회 후 큰 빛을 발하는 중심이 되
었다. 거의 1년 동안 목회자연수회가 1888기별을 가르치기 위해
그곳에서 열렸다. 엘렌 G. 화잇은 1895년 그들에게 한 기별을 보
냈다. 그의 책망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것은 그가 기록하기
를 꺼려했던 내용이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배틀크릭의 책임있는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그대들
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등을 돌리고 주께로 얼굴을
향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 시기에 주어질 기별인가? 그것은 셋
째 천사의 기별이다. 그러나 온 세상을 그 영광으로 비출 빛은
현대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멸시 받아왔다.
그대들이 그것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조심하라. 그대들
의 발로부터 신을 벗으라 왜냐하면, 그대들은 거룩한 땅을 밟
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여러분이 사탄의 태도를 취하고 있
는지, 그리고 성령의 나타나심을 모욕하고 있는지 그대들은 알
라.”(TM 89, 90)
여기에서도 또다시 그 반대 정신은 세상을 그 영광으로 환하
게 비출 빛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빛은 성령에 의해 나누어지는
그리스도의 의(역자 주: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이다. 이것은 다음
의 몇몇 진술에서 너무나 밝히 드러났으므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1892년 11월 22일자 리뷰 앤 헤럴드에 엘렌 G. 화잇의 한 기사가
실렸는데 다음과 같다.
“시련의 시기가 우리에게 임박하였는데 이는 죄를 사하시는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 줌으로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땅을
그의 영광으로 환하게 할 천사의 빛의 시작이다.”(1 SM 363)
1893년 대총회가 끝난 몇 개월 후 A.T. 존스는 강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한 집회에서 그는 위에 인용된 1892년의 엘렌 G. 화잇
의 기사에 관해 언급했다.
“-자, 형제들이여, 그리스도의 의의 기별이 한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청중 가운데 한두 명이 대답했다.
-3, 4년 전입니다.
-언제입니까? 3년? 아니면, 4년?
회중:
-4년입니다.
-4년 전입니다.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회중:
-미네아폴리스입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형제들이 무엇을 거절했습니까?
회중 가운데 몇 명이 말했다:
-큰 외침
-무엇이 그 의의 기별입니까? 증언은 우리에게 그것이 무엇
인지 말해주었습니다. 큰 외침 곧 늦은비입니다. 그러면 그
들이 미네아폴리스에서 무엇을 거절했습니까? 그들은 늦은비
곧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을 거절했습니다. ”(대총회 회보 183)
A. T. 존스는 거절한 것이 늦은비이며,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
의 의였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셋째 천사의 기
별의 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가 될 것이며, 이것은 그의 영광
으로 온 땅을 밝게 할 빛이다. (먼저 언급한 1 SM 234, 235, TM
89, 90, 468, 469을 보라)
“그리스도의 의”란 용어는 1888 이후 그렇게 말해 왔듯이 한
세대의 용어가 되었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 혹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줄임말이었다. 이 용어
는 그리스도의 입혀주시는 혹은 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義)
나 아니면 이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왜냐
하면, 그것들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A.T. 존스는 1888년 기별에 대한 반대가 무엇이었는지 분명
히 알았는데, 왜냐하면, 그가 바로 이 기별의 전달자 중 한 사람
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엘렌 G. 화잇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알았는데, 그녀가 그 기별을 전하는 일에 존스와 와그너로 더불
어 많은 시간을 동행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의 증거는 이런 결론을 충분히 지지한다. 1888년 후 여러
해, 그들은 여전히 목회자연수회를 열고 있었으며, 엘렌 G. 화잇
은 1888기별을 충분히 오랫동안 연구하였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
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녀의 논평을 들어보자.
“거듭해서 빛이 주어졌지만,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해
애쓰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중에 계속해서 일했
어야 할 현장으로부터 사람들이 불려와 수 주일간씩 목회자연
수회에 참석을 하고 있다. 우리 백성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
리스도의 의에 관한 진리의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의 사업을 반대했기 때문에 이 일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이것
을 그들은 받아들여 마음과 음성과 펜을 통해 반향해야만 했었
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의 유일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들
은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기 위해 성령의 지시 아래 일 해
야만 했다.”(TM 401)
앞뒤 문맥에 비취어 볼 때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에 대한 존경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힘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령의 지시하에 일
해야만 한다. “우리의 유일한 힘”이란 이 용어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만 우리 사업이 힘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차례 사용하는 용어이다. 세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성령의 역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크다. 바로 이 근
원으로부터 권세와 능력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주어진다.
... 하늘 빛은 그리스도의 원수에게 속임을 당한 자들의 어두어
졌던 마음을 비추었고 구주께 대한 그릇된 인식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회개
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분을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RH 1892, 11.
29)
우리가 경험해온 반대에 대해 언급하면서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수는 사도들이 오순절 이후에 진리를 선포한 것처럼 저
들이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얻지 못하게 길을
막아버렸다. 진리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비출 빛이 거절
당하였으며 우리 형제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
도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1 SM 235)
엘렌 G. 화잇이 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401페이지에서 말하
고 있는 것은 1888년과 그후에 무엇이 반대를 받고 거절당하였
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성령이 나눠 주시는 믿음으로 말
미암는 그리스도의 의 문제였다. 이것은 A. T. 존스가 1893 대총
회에서 위에 언급된 바 무엇을 말했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확증을
준다. 그가 큰 외침―늦은비와 더불어 동등시하는 것은 그리스도
의 의였다. TM 401페이지는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이중
적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확증을 준다. 그것은 요 3:3, 5, 6과 요
일 5:1, 슥 3:1~5, 딛 3:5~7, MB(산상 보훈) 114에서 보여주는 것
처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보다 폭넓은 의미이며 진실한 개념
이다.
와그너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유명한 연사가 된 이후,
우리는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에
대해 어떤 부분에서 이런 반대를 받을만한 표현을 했는지 발견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의 책 「그리스도와 그의 의」 64, 65페이지
에서 매우 확실히 나타나 있다.
“아무도 의를 ‘베푼다’는 말을 위선적이라고 트집잡지 말도
록 하자. 어떤 사람들은 의의 가치를 잘못 이해하여 베푸는 의
를 원하지 않고 인간으로부터 오는 의를 바람으로써 예수 그리
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는 모든 사람 위에 주시는 하
나님의 의를 멸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능력이 없는 경건의 모
양만을 가진 외식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
의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누가 의를 옷 입히고 베푸는 자인
가에 대해 큰 이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옷으로 입고자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우리의 보기에 아름답다 할지라도, 우리는 실제로 더러
운 옷 외에 아무 것도 입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의로 우리에게 옷 입히시면, 그것은 경멸되거나 거절되
어서는 안 된다.”
위의 설명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성화적 개념을 반
대하는 것에 관해 와그너가 매우 많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그것이 위선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옳게 평가하지 않으므로 그것에 대해 흠을 잡아, 경멸하고 거절
했다는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와그너는 로마서 3: 21~ 22을 주석하는 가운데, 그것이 그리
스도의 나눠주시는 의를 가르치기에 매우 좋은 구절임을 보여주
었다. 아무튼, 그는 동일한 목적으로 바울 서신에 나와 있는 믿음
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성경 말씀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거의
모두 사용했다.
1888년 기별을 이해하고 그것을 믿을 때, 그는 성령으로 말미
암는 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를 가르치기 위해 바울 서신에 기
록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경 구절을 사용함에 대한 두려움
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에 의해 그리스
도께 우리의 의지를 굴복시키면 우리는 성령에 의해 그의 나눠주
시는 의를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를 소유하는 것은 오로지
이와같이 함으로서이다. (1 SM 366, OHC 212를 보라)
「창조 가운데 나타난 복음」 26, 27페이지에서 롬 3:21~ 22에
대한 와그너의 주석을 살펴보자.
“그때에 하나님의 의는 믿는 모든 그들 위에 문자 그대로 입
혀진다. 그러면 그들은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의로 옷입고, 그
것으로 채움을 받게 된다....또한 이에 뒤따라 새로운 생애가
그 사람 안에 시작된다. (거듭남에 대한 와그너의 개념) 그리고
그 생애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이 따르는 생애가 된다.”
E. J. 와그너는 1891년 대총회에서 로마서를 열 두 연구항목
으로 나누어 전달하였는데 여기서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란 용어를 사용한 예가 많지만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아브라함은 율법을 가졌었다. 그런데 믿음의 의를 통하여
그는 그 율법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함
을 받았은즉’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율법에 일치
함을 이뤘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1891년 대총회 로마서 연구」 13페이
지. 이것은 1891년 대총회 당시 와그너의 연구 편찬물로부터
발췌한 것임)
E. J. 와그너는 그 대총회가 열렸을 때. 저녁 집회에서 말하였고,
엘렌 G. 화잇은 아침 목회자 모임에서 말했다. 1891년 대총회
당시 화잇 부인의 언급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는 매우 흥미있는 대총회를 맞이하였다. 나는 세 번을
제외하고 모든 아침 집회에 참석하여 크게 자유한 가운데 목사
들에게 설교하였다.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임재하셨으며, 우
리는 그분의 구원하심을 보았다. 나는 이번 경우에서 만큼 주
의 말씀 연구 중에 그렇게 많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하신 대
총회를 이전에 결코 본 적이 없다.”(편지 1891-미시간주 배틀
크릭에서 3월 20일 기록함)
와그너와 존스에 의해 주어진 1888년의 기별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충성되고 지속적인 지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
한 사도 바울의 기별 바로 그 중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왜
냐하면, 그는 이 두 사람에 의해 제시된 기별들을 여러번 들었고,
계속해 말하기를 “그들의 기별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늘로서 온 기별”, “그들은 주의 말씀을 증거한다.”, “만일 여
러분이 이 사람들에 의해 증거되는 기별을 거절한다면, 기별을
주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화잇 부인의 가
장 강력한 지지 중 얼마의 것이 1895~1896년 사이에 주어졌다.
이 포인트를 잘 기억할 것이니 즉, 엘렌 G. 화잇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거절함에 대한 교회에 보내는 책망 가운데
대부분이 소위 개혁신앙 개념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는 그리스
도의 나눠주시는 의를 포함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셋째 천사
의 기별을 거절함에 대한 책망이었다. 미네아폴리스 기별에 대하
여 기록하는 가운데 엘렌 G. 화잇은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설명
한다.
“진정한 신앙, 곧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부활하신 구주의 공
로만을 통해서 용서가 이르러 온다는 것을 가르치며, 하나님
의 아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옹호하는, 성경이 제
시하는 유일한 신앙이 무시와 반박과 조롱과 거절을 당해왔다.
이것은 열광주의와 광신주의로 이끈다고 정죄를 당해왔다. 그
러나 이것은 영혼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며, 성령
에 의하여 나누어지는 활동적인 사랑의 원칙으로 이것을 통해
서만 영혼이 선행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은 인간의 입술에서 일찍이 발해졌던 하나님을 위한 모든 기별
의 힘이요 능력이다. 우리가 믿음의 일치를 이루는 데 실패한
다면 우리 앞에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우리가 그리스
도께서 기도하셨던 연합 안에서 일치하게 될 때, 사단의 매개
자들을 통하여 계속되어 왔던 이 오랜 논쟁은 끝이 날 것이며,
영적인 것을 식별할 영적 안목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세상적
이치를 따라 계획들을 세우는 것을 우리는 보지 않게 될 것이
다.”(TM 468)
이것은 1890년 11월 3일, 1888년이 지난 2년 후 쓰여진 것이
다. 여기서 도출해 낼 수 있는 두 가지 개념은 죄의 용서와 하나
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그는 이것을 참 신
앙, 성경이 말씀하는 유일한 신앙이라 부르며, 그러므로 그 기별
에는 아무런 결점도 발견할 수 없다. 백성중 어떤 사람들에 의한
반대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것
이며, 화잇 부인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함으로 그것을 옹호하였
다. 그것은 영혼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며 성령에 의
해 나누어 주는 바 사랑의 활동적인 원칙이다. 이것은 사탄의 지
속되던 오랜 투쟁의 원인이 되었다. 여기서 또다시 거절을 당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화적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엘렌
G. 화잇은 1888년 11월 1일 대총회에서 계속 말하고 있었는데,
그때에 거절된 것을 또다시 나타내었다.
“나는 그 의사(E. J. 와그너)가 우리 앞에 제시한 것처럼 그
리스도의 의를 율법과 관련시켜 제시하는 데서 진리의 아름다
움을 본다. 그것은 여러해 동안 내 생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
께서 내게 주시기를 기뻐한 진리의 빛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
다. 만일 우리의 목회하는 형제들이 그렇게 확실히 드러난 교
리 곧 율법과 관련시켜 제시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나는 그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그렇게 할 때 그들을 지배하는 선입관은 힘을 잃을 것이고 백
성들은 때에 맞는 음식을 공급 받아 만족하게 될 것이다.”(원고
15, 1888년)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 와그너는 사람이 율법을 지킬 힘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시는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속에 두었다. 엘렌 G. 화잇의 진술은 “만일 우리 목회자들이 그
교리, 율법과 관련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의의 교리, 나는 그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설명할 장은 그
리스도의 의를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취급하겠다.)
우리가 더욱 주의해 볼 때 우리는 1888년과 그 후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르침을 우리 목사들과 평신도 중 어떤 사람들
에게 이해되거나 정당히 평가되지 못하였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1890년4월 1일자 리뷰 앤 헤럴드지에서 그 중 한 예를 찾게 된
다. 어떤 사람은 그 주제가 너무 많이 거론되고 있다는 두려움을
언급해 왔으나 더 읽어보면 그들이 그 메시지를 거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형제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1890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에 대해 화잇 부인이 그 분명한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에 너
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던 형제들은 그것을 받아들이
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그것을 거절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1891년 목회자연수회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에 똑같은 반대가 있었음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
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염려했
다. 이것이 엘렌 G. 화잇에게 고통을 주었으니 그들의 염려함과
불평이 1890년에 그가 언급했던 기별을 실제적으로 거절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891년 원고 21에서 그들의 두려움
은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과, 모든 가르침들이 성서적이었다고
지적한다.(위기를 통한 승리 75페이지 참조)
RH 1890. 3. 27에, 엘렌 G. 화잇은 동일한 반대에 대해 지적한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해되지 못할 것이며 땅을 그 영광으
로 환하게 밝힐 그 빛은 그의 점진적인 영광중에 걷기를 거절
하는 사람들에게 거짓 빛으로 일컬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목사
들은 하나님의 전체적 권고를 선포하기 위해 성경을 깊이 탐구
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율법에 대한 관계는 분명하게 이해되
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은 율법을 가르치며, 자신들이 가르치
는 똑같은 그 방법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의 형제들이 잘못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제시하
는 일에 꽁무니를 빼고 있다. 그러나 율법과의 관계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참 위치가 드러나게 되면, 그들의 잘못된 개념은
즉시 사라질 것이다. 율법과 복음이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그
진리가 완전한 일치 가운데 예수 안에 있는 그대로 제시될 수
없다.”(RH 1890. 3. 27)
위의 진술은 세 가지 내용으로 촛점을 맞춘다. 와그너와 존스
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치는데 극단으로 치우치고 있다
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하나님의
권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계
명을 지킬 수 있도록 그의 의와 사랑을 주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용서는 물론 십계명을 지
킬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성령
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화적
개념은, 어떤 이들에 의해 거절되었는데, TM 401, 468페이지와
그 밖의 몇몇 곳에서와 이번 제4장에 기록된 것과 같다.
이번 장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리가 엘렌 G. 화잇의 순전한 증
언을 대면하게 될 때, 우리는 1888 당시의 우리의 유력한 사역자
들 중 얼마가 큰 외침 곧 셋째 천사의 기별의 늦은비를 거절하였
다는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을 얻게 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사도 바울의 기별을 강조한 1888 강조는 하나님의 모든 계
명을 지키기 위하여 성령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의 내재하
심을 포함한다.(TM 92)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죄를 이기고
늦은 비를 받도록 준비시킬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
백성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늦은 비의 기별로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알 수 있었으나, 선입관이 그 빛을 막아버
렸다.(TM 467을 보라) 우리 목사와 평신도들 중 어떤 이들에 의
해 현재도 그리스도 의의 기별의 순전함을 지워버리려는 결정적
인 노력이 나타나고 있는가? 다음 장에서는 재림교회사 중에 가
장 비참했던 사건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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