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142 號 Online Photo News 🦀
西 紀 2023 年 01 月 07日 土曜日
檀 記 4356 年 12 月 15日 乙丑(을축)
compilation : 시나브로 李 福日 (鎔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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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李 相龍님 께서 보내주신 좋은글을 공유합니다
❤️운(運)이란❤️
❤️🐾''니시나카 쓰토무''라는 일본의 전직 변호사가 쓴 ''運을 읽는 변호사''란 책이 있습니다. 재임중 소송을 처리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들을 써 내려간 책입니다. 🌿🌸⁀⋱다음 글은 ''運을 읽는 변호사''의 저자 ''니시나카 쓰토무''의 글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는 50여년의 변호사 생활동안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그의 저서 «運을 읽는 변호사»에 우리에게 꼭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운(運)'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운(運)이란?
저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타인의 중대사에 많이 관여하기 때문에 인생 공부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곰곰이 생각합니다. ‘'運이라는 것은 정말 신기하구나!’' 하고 말이지요.
1만 명 이상의 인생을 지켜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확실히 운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몇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악행으로 얻은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업에 실패하여 변호사에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얼마 전만 해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잔머리를 굴려 돈을 잔뜩 벌거나 출세를 했어도,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하여 궁지에 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행은 반드시 신이 벌을 내립니다. 악행으로 얻은 성공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2, 다퉈서 좋은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다툼은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원한을 사 운을 나쁘게 합니다. 신기하게도 재판에서 이긴 후에 불행해지는 사람이 드물지 않습니다. 다툼은 원한을 남기고 운을 달아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3, 도덕적 부채는 금전적 부채보다 운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감사하는 마음이 운을 가져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편안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므로 항상 이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도덕적 부채에 대한 인식없이 살거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운은 달아납니다. 법만 지키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거나 남들도 다 하는 일이니 괜찮다고 생각해 도덕적 과실을 반복하게 되면 좋은 운은 달아나게 마련입니다.
4, 좋은 운은 겸손하고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도덕, 과학적으로 성찰해 보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큰 행운입니다. 살아있음의 행운을 실감하고 경이와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지금의 행운을 지키고 더 좋은 운을 부르는 비결입니다. 행운을 부르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상과 사람들 앞에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이 좋은 운을 부릅니다.
5, 배려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라.
마치 공을 받으면 다시 공을 그대로 던지는 야구의 캐치볼과 같습니다. 공이 몇 번이나 똑같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지만, 그 위력은 대단히 큽니다. 공을 받으면 다시 공을 던지는 것이 바로 다툼없이 화합하고 결국 운으로 연결되는 커뮤니케이션의 비결입니다.
6, 남을 위한 일일수록 더 기쁜 마음으로 하라.
운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준다.’' ''하늘이 돕는다.'' 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을 할 때는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기뻐하니 나도 기쁘고, 점점 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급적 많은 도움을 주세요. 신이 당신에게 행운을 내려줄 것입니다.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7, 기타 명언
🐾 부부끼리 감사해하면 그 집은 잘되기 마련이다.
🐾 다툼 중에서도 상속 분쟁은 큰 불운의 서막이다.
🎯 나만 잘 되길 바라면 운은 돌아선다.
❤️ 어머니 은혜를 깨닫기만 해도 운을 좋게 바꿀 수 있다.
❤️ 부모님을 부양하면 좋은 운이 나를 부양한다.
❤️ 인간성 좋은 사람은 처음엔 손해를 보지만 나중엔 결국 성공한다.
🌸'유능하다'는 말보다 ‘믿을 수 있다’는 말이 진짜 값진 칭찬이다.
🌸 100만큼 일하고 80만 바라면 120이 들어온다.
화목하고 봉사하며 은혜를 알고 사람답게 살면 운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경쟁에만 치우치는 우리 현실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사람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학교 교육에서는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가정과 사회와 이웃과의 소통에서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운을 물려주기 위하여 또는 스스로 맞이하기 위하여 계묘년 새해에 참고되시면 좋겠습니다. 운(運)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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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임 진천님께서 보내주신 좋은 글을 공유합니다
🌾◇ 199대 1의 승리자
파격적인 진급을 하고 현지에 부임한 이순신은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 경상 우수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그 울타리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로 왔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장수를 보고 순순히 인정하고 가만있었을 리는 없는 것이다.
1597년(정유년)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된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이 열리고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 200명 모두가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마땅하옵니다."라고 외친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읍조하면서 임금(선조도 속으로는 동조함)을 압박하고 있으니 이순신을 발탁해 주고 6계급 파격 진급에 힘을 써준 유성룡까지도 "공은 공, 사는 사"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의견에 반대를 하지 못한다.
당시 이순신의 누명 상황이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 형 집행을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당시 영의정겸 도체찰사 (국가비상사태 직무 총사령관) 梧里 李元翼(오리 이원익, 1547~1634)이 어명으로 전시상태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시상태에서는 임금과 모든 문무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고 외쳐도 도체찰사 이원익의 승인 없이는 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의 형 집행 재촉에 청사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대사로 고한다.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하지 못하옵니다."
이원익의 이 말에 선조도 이틀이나 걸린 이순신 국형장 문무백관들 앞에서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 없는가 보구나." 라고 체념했다 한다.
오직 한사람의 곱고 바른 판단과 집념으로 199명의 나쁜 고집을 꺽었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된 것이다.
당시 문무백관 199명 대 1, 이원익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낸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만 떠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자리를 잡게되는 소박하고 비범한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 초가집에 살았던 '조선의 명재상 오리 이원익 대감'...
세월은 400여년이 지나고 시대만 수없이 변했을 뿐 정치는 변한게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알아주는 한사람만 있으면 외롭지 않은 것이 대장부의 자존심이요 명예이다.
더구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 통에는 더할 것이다.
온갖 시기, 질투와 모함으로 사형 직전까지 간 만고의 충신을 알아보고 199대 1로 임금의 불신으로 부터 믿어준 탁월한 선견지명의 굳은 신념이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들의 생명과 조선 사직을 지켜낸 오리 이원익 대감이야 말로 만고에 길이 빛나는 충신이며 나라의 보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사람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 이원익이 결과적으로 나라를 구했던 것이다.
한 사람, 올바른 한 사람이 중요하다.
생각해 보면 이순신장군은 행복한 분이셨다.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에 뜻을 굽히지 않았던 오리 대감과 같은 분이 시대에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오리 이원익은 87세로 눈을 감으면서 모든 자식들을 불러 놓고 유언을 하며
"나의 부고도 알리지 마라. 사후에 어떠한 사당이나 칭송된 일이나, 비석도 세우지 마라."는 말도 남겼다 한다.
그러기에 오리 정승은 우리에게 잊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400년이 지났지만 오늘의 이 시대에 이원익 대감 같은 '정정당당'했던 청백리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각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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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판대에 놓인 신문을 골라잡아 크릭해보세요 그 신문을 바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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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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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스크랩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