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극기와 겸손의 생애가 그처럼 어려운가!
두 길 - 1856 년 5월 27일 ‘베틀클릭총회’에서, 나는 주로 교회에 관련된 일을 이상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천사는 말하였다. “하나님은 그 위엄이 두렵지만, 그대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분의 진노가 무섭지만, 그대들은 날마다 그분을 거슬린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눅13:24; 마7:13,14).
이 길들은 서로 구별되고, 분리되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한 길은 영생으로, 다른 길은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한다. 나는 이 두 길이 다른 것과, 그 길로 여행하는 자들이 다른 것을 보았다. 그 길들은 서로 반대되는데, 한 길은 넓고 평탄하고, 다른 길은 좁고 험하다. 그러므로 그 길로 여행하는 자들도 품성과 생애와 의복과 대화에 관하여, 서로 반대된다.(1T 127.1)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여행 끝에 가질,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은 가끔 슬픈 빛을 띠나, 자주 거룩하고 성스러운 빛으로 빛난다. 그들은 넓은 길에 있는 무리처럼, 옷 입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한 분의 모본이 주어져 있었다.
슬픔에 처한 자요 질고를 아는 자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 길을 여셨고, 친히 그 길로 걸어가셨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분의 발자취를 보고, 위로와 기쁨을 얻는다. 그분께서는 안전하게 지나가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한, 그들 역시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1T 127.2)
넓은 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용모와 의복과, 그 길에서 얻는 쾌락 등에 몰두한다. 그들은 마음 놓고 쾌락에 몰두하고, 그 길 끝에 있는 분명한 멸망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그들은 그들의 멸망에 접근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미친 듯이 점점 더 빨리 달려가고 있다. 아, 나에게는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섭게 보였던가!(1T 128.1)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너희는 예비하라”는 말을 그들의 옷에 기록한 많은 사람들이, 이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얼굴에 보이는 슬픔의 그림자 외에는, 그들 주변에 있는 허망한 자들과 꼭 같아 보였다. 그들의 대화는 그들 주변의, 경박한 자들의 대화와 꼭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그들의 옷에 쓰여 있는 글자를 지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것과 같은, 글자를 쓰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넓은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에게 속한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하였다.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도 꼭 같다. 우리도 꼭 같이 옷을 입고, 말하고 행동한다.”(1T 128.2) 그 후에, 나는 1843년과 1844년을, 뒤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 찾아볼 수 없는, 헌신의 정신이 있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세상과 일치되는 것,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자 하지 않는 것 등을 보았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일이, 크게 부족함을 보았다. 나는 ‘애굽’[애급]을 떠난 후의, ‘이스라엘’ 백성을 뒤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방해나 제지를 당하지 않고, 그분을 경배할 수 있게 하시고자, 그들을 ‘애굽’에서 자비롭게 불러내셨다.
하나님께서는 도중에 그들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시고, 그들을 어려운 지역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심으로, 그들을 시험하고 연단하셨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그들을 취급하시고, 그처럼 여러 번 구원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시험과 연단을 받을 때 불평하였다. 그들은“우리가 ‘애굽’땅에서...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출 16:3)이라고 원망의 말을 하였다.
그들은 ‘애굽’의 ‘파’와, ‘마늘’을 갈망했다.(1T 128.3) 나는 이 마지막 시대에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행하는 도중에 불평한 사실과, 하나님이 그들을 놀랍게 인도해 주신 후에도,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잊어버릴 만큼, 배은망덕하게 된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너희는 그들보다, 더욱 나쁘게 행하였”다고 천사는 말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명백한 진리를,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것을 보았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그들은 분명한 승리를 거두었다. 원수들은 설득력 있는 진리를 속일 수 없다.
빛이 너무도 분명하게 비추어졌으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어디에서나 서서 진리가 분명하고, 일관성 있게 승리를 거두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큰 축복이 귀중하게 여겨지지 않고, 인정도 받지 못했다. 혹 종의 시련이 생기면, 어떤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고, 어려운 때를 당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정결케 하는 시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때때로 시련을 자초하고, 시련을 상상함으로 너무도 쉽게 낙심하고, 너무도 쉽게 상처를 받고, 너무도 쉽게 자존심을 상한 것으로 느낌으로, 자기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 다른 사람들을 해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해한다. 사단이 그들의 시련을 확대시키고, 그들의 마음속에 잡념을 넣어 주기 때문에, 이에 굴복하면 그들의 영향력과 유용성은 파괴될 것이다.(1T 129.1)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떠나, 자유로운 직업을 택해 보고자하는 유혹을 느껴 왔다.
나는 하나님의 손이 그들에게서 떠나가고, 질병과 죽음에 굴복하도록 방치되면 그들이 고난이, 무엇임을 알게 될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이 거친 길이요, 극기의 길이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길임을 명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치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순탄하게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1T 129.2)
나는 하나님의 종들 중 어떤 사람들, 심지어 목사들까지도 너무 쉽게 낙심하고, 자아가 너무 쉽게 상처를 받음으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멸시를 받고 상처를 입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처지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거두어지고, 그들이 심령의 고통을 겪게 될 때,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그 때, 시련과 고난을 당했을지라도 주님의 인정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던 그 전보다 그들의 처지가 십 배나, 더 어려워진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활동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순조로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순조로운 처지에 있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정신의 번민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있으므로 궁핍이 거의 없고, 가난과 힘겨운 활동과 영혼에 대한 부담을 거의 깨닫지 못하므로, 시련을 알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시련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자아희생의 정신을 가지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준비를 갖추지 않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실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자아 희생적 종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어 활동하고, 그들이 순조로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영혼들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낭실[기도실]과 제단 사이에서,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욜 2:17)라고 부르짖어야 한다.(1T 129.3) 하나님의 종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건강을 상하기까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생애를 바쳤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신적 활동, 끊임없는 걱정, 고생과 가난 등으로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지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들은 그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혀 고난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난의 침례를 결코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처럼 연약한 태도와 용기 없는 마음을 나타내고, 자신의 안일을 여전히 사랑할 것 같으면, 그들은 앞으로도 고난의 침례를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보여 주신 바에 의하면, 교역자들 중에는 매를 맞아야 할 필요가 있는 자들도 있는데, 느리고 자아 중심적인 자들은 계속해서 매를 맞고,
자신의 안일을 도모하지 않고 말씀과 교훈을, 성실하게 증거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또한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여 참을 수 있는 순결하고, 성실하고 자아 희생적인 무리들은 남게 될 것이다. 이 교역자들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은 아니다.(1T 130.1)
세상과 일치됨 - 나는 안식일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 어떤 사람들이 세상과 일치된 것을 보았다. 아, 나는 그것이 그들의 고백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업에 욕을 돌리는 일임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고백을 거짓되게 만든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의복과 언어와 행동에 있어서, 그들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에, 그들과의 구별이 없다. 나는 그들이, 어느 순간이나 하나님의 손가락이 닿기만 하면, 고통의 병상에 눕게 될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을 치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 그런데, 그들이 마지막 변화를 향하여 접근할 때, 육체적 고통으로 아픔을 느낄 때, 그들은 심각한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죽을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나는 심판정[장]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 그 엄숙한 검사를 통과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준비를 갖추는 문제에 관하여,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 동시에 그들의 몸을 치장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물어 보라. 그러면, 만일 그들이 과거로 되돌아가서,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들은 생애를 교정하고, 세상의 어리석음과 허영과 자랑을 피하고, 검소한 옷으로 몸을 치장하고,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일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생활할 것이다.(1T 131.1) 왜 극기와 겸손의 생애가, 그처럼 어려운가!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자들이, 세상에 대하여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는 죽으면 살기가 쉽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애굽’의 ‘파’와 ‘마늘’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세상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늘에 가고 싶어 한다. 그들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좁은 문과, 좁은 길로 들어가지 않는다.(1T 131.2)
나는 총회참석 무리들을 보았다. 그 때에, 천사는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충이 먹고,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일곱 재앙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살아남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승천하게 될 것이다.”(1T 131.3) 천사가 한 이와 같은, 말들은 너무 엄숙했다.
나는 그 천사에게 왜 영원한 복리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그처럼 적고, 마지막 변화를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처럼 적은지 물어 보았다. 그는, “세상이 그들에게 매력이 있고, 세상의 보화가 그들에게 가치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음을 빼앗기기에 충분한 것들을, 발견하므로 하늘을 위하여 준비할 시간이 없다.
사단은 그들을 어려움 가운데, 점점 더 깊이 빠뜨릴 준비를 언제나 갖추고 있다. 한 가지의 어려움과 고통이 마음에서 떠나가면, 그는 즉시 그들의 마음속에서 세상에 속한 더 많은 것들을, 바라는 거룩하지 못한 욕망이 일어나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너무 늦게, 사실상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실체가 없는 것들을 붙잡았으나, 영생을 상실하였다. 그와 같은 자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1T 132.1) 많은 사람들은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처럼 옷을 입는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슬프고도,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다.
만일, 그들이 진실하고 구원하는 감화를 끼치려면, 그들의 신앙고백을 실천하고, 그들의 의로운 행위를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과의 구별을 뚜렷하게 해야 한다. 나는 말과 의복과 행동이 하나님을 위하여, 말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할 때, 거룩한 감화가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되고,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불신자들은 우리가 공언하는 진리에, 거룩한 감화가 있다는 것과,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믿음이 남녀의 품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의 감화력이 진리를 위하여,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고자 하면, 그들은 그 진리를 실천함으로, 겸손한 모본자를 본받아야 한다.(1T 132.2)
나는, 하나님께서 교만을 미워하시므로, 교만한 모든 자들과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이 뿌리째 뽑힐 것을 보았다. 다가오는 그 날이 그들을, 살라 버릴 것도 또한 보았다. 나는 셋째천사의 기별이 그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누룩처럼 작용하여, 그들의 교만과 이기심과 탐심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거해 버려야 할 것을 보았다.(1T 132.3)
무한한 선행의 가능성 - 그대들 스스로 이 일을 행할 때, 그대들은 그대들과 접촉하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희망과 용기의 말 한마디와 바른 행로를 단호하게 고수하는 것은, 타락시키는 습관에 빠져 들어가려는 자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게 될 것인가!
그대들이 선한 원칙을 실행하는 가운데, 가질 수도 있는 확고한 목적은 사람들을, 바른 방향에 안정시키는 감화력을 발휘할 것이다.(MYP 124.5) 그대들이 행할 수 있는, 선에는 한계가 없다.
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애의 규범으로 삼고, 그 교훈으로 그대들의 행동을 지배하고, 그대들의 의무를 완수하는데 있어서, 그대들의 목적과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주가 되지 않고, 축복이 되게 하면 그대들의 노력은 성공할 것이다.
그대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고, 다른 사람에게 빛을 비추는 통로가 되었다. 그대들은 예수와 동역자가 됨으로, 존귀함을 받는다. 그리고 구주의 입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마 25:23)라는 축복을, 받는 것보다 더 귀한 영예는 얻을 수 없다.(MYP 125.1)
자아를 포기함 - 구주께서는 마지못해 하는 봉사는, 받지 않으실 것이다. 날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는, 반드시 자아포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워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그 의미를 배우고 그 교훈을 순종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탁월한 그리스도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가 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역사하신다.
그리하여 최후의 시련의 때에 설 수 있는, 품성을 완성시키신다. 그리고 또한 믿는 자는 날마다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숭고한 실험을 해내고 있다. 그리하여 복음이 타락된 인간을 위하여,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MYP 125.2)
세상과 일치함 -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여행 끝에 가질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은 가끔 슬픈 빛을 띠나, 자주 거룩하고 성스러운 빛으로 빛난다. 그들은 넓은 길에 있는 무리처럼 옷 입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한 분의 모본이 주어져 있었다.
간고를 겪으신 자요, 질고를 아는 자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 길을 여셨고, 친히 그 길로 걸어가셨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분의 발자취를 보고, 위로와 기쁨을 얻는다. 그분께서는 안전하게 지나가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한, 그들 역시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MYP 126.1)
넓은 길 - 넓은 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용모와 의복과, 그 길에서 얻는 쾌락 등에 몰두한다. 그들은 마음 놓고 쾌락에 몰두하고, 그 길 끝에 있는 분명한 멸망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그들은 그들의 멸망에 접근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미친 듯이 점점 더, 빨리 달려가고 있다. 아, 나에게는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섭게 보였던가!(MYP 126.2)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너희는 예비하라”는 말을 그들의 옷에 기록한 많은 사람들이, 이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얼굴에 보이는 슬픔의 그림자 외에는, 그들 주변에 있는 허망한 자들과 똑 같아 보였다. 그들의 대화는 그들 주변의, 경박한 자들의 대화와 똑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그들의 옷에 쓰여 있는 글자를 지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것과 같은 글자를 쓰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넓은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에게 속한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하였다.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도 똑 같다. 우리도 똑 같이 옷을 입고 말하고 행동한다.”(MYP 1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