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려는 발악 : 마광수 철학 에세이 「인간에 대하여」
2016.05.15.
11:10
인간에 대하여 / 저자 마광수 / 출판 어문학사 / 발매 2016.04.29.
마광수 교수는 내 기준에서
병약한 사람이다.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아 보이고, 낙관보다는 비관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마광수의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그가 쓴 글에는 쓸데 없는 희망의 흔적이 없고, 절망으로 찌든 우리의 삶을 어떻게 스스로 구원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급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 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1990년대 초 억압적인 성문화에 대한 반기이자
인간해방에 대한 원대한 선언이었다. 25년쯤 지난 지금 보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별로 야하지도 않다. 우리 시대의
성풍속도가 마광수가 25년 전 그린 시대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가 한국사회의 성적해방에 기여했다고 말한다는데, 그는 분명 그런
말을 할 위치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순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성윤리를 강조하고, 혼전 삽입섹스는 죄의식의 온상이 되는 시대였으니, 그
시대 그의 말은 악마의 말이었을 것이다.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로 구속된 것은 한 작품의 적나라한 성희 묘사 때문이 아니라,
마광수가 타파하고자 했던 성윤리에 대한 보호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에세이 <운명>은 인간들이 믿는
종교에 대한 총체적인 에세이인데, 마광수는 교리로써 종교를 분석하기보다, 종교의 창시자들이 남긴 말을 엮은 텍스트를 직접 분석한다. 이 지점에서
신학자나 불교학자들에게 자의적 해석이라고 비판을 받을 만한 지점도 있지만, 그가 텍스트의 원전을 파고들어 자신만의 시각으로 정리하는 정신은
세계를 자기 방식대로 정립하려는 주체의식의 표현으로 볼 수 있어 본받을 만한 일인 것 같다.
<인간에 대하여>도 마광수의
에세이답게 성적해방(성적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성윤리로부터의 해방), 실존주의, 민주주의, 육체적 쾌락 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다만 그가 적은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읽어낸 텍스트가 얼마나 방대한지, 그 텍스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뽑아내는 재주는 또 얼마나 뛰어난지 감탄하게 한다. 그의
소설과 시를 몇 편 봤을 때는 실망했지만, 그의 에세이를 읽고 실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마광수의 에세이는 그가 잘 살아보려고 발악하며
읽은 책들을 요약한 보고서다. 삶의 용기는 때로 희망보다 절망에, 낙관보다 비관에서 생겨난다. 이 책은 어쩐지 힘이 나는
책이다.
[출처] 살아보려는 발악 : 「인간에 대하여」|작성자 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