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 어린이대공원을 찾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어린이대공원이라고 하여 어린이만 가는 곳이 아니다.ㅎㅎ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서울 도심에서 걸어서 운동하고 싶을 때, 수목이 우거진 숲길을 누군가와 함께 손잡고 걷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전철로 접근하기 쉬운 곳에 위치 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 어린이공원 정문으로 입장할려면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을, 후문으로 입장할려면 5호선 아차산역을 이용하면 된다. 어린이대공원 입장료는 무료이며, 주변 4곳(능동문, 후문, 구의문, 서울상상나라)에 유료주차장이 있다.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여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일본에서 골프를 배운 영친왕이 조선왕실 소유의 토지 30만평을 무상 기증하여, 1930년에 「경성골프구락부」 군자리 코스가 완공되었다. 이 골프장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컨트리구락부골프장」 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 골프장을 자주 애용했는데, 서울이 확장 및 개발되면서 군자리 골프장에 출입하는 모습이 일반 대중들 눈에 너무 잘 보이는 문제가 있어서 그 골프장을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원당리(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한양컨트리클럽에 추가로 18홀 골프장을 신설하여 이전했고, 골프장 부지는 서울시가 인수하여 어린이 놀이공원을 조성하고, 1973.5.5 어린이 날에 맞춰 개장했다. 이 공원이 조성되는데 결정적 조언을 한 분은 육영수 여사였다고 한다. 지금과 같이 테마공원이 많이 없었던 시절에 개장했기 때문에 당시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들에게는 창경원(현, 창경궁)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기도 한다.
어린이대공원 정문
정문 안쪽의 저수지 및 팔각정
놀이동산
백마고지 삼용사의 상
6.25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철원 백마고지에서 우리의 9사단 장병들이 중공군 38군의 인해전술을 죽음을 각오한 혈전으로 물리쳤으며, 그 당시 1952.10.12 빼앗겼던 고지에 대한 재탈환작전 중 중공군의 중화기진지를 목숨을 바쳐 폭파하고, 장렬히 산화한 소대장 소위 강승우, 일등병 안영권과 오규봉 등 백마고지 삼용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73.2월 동상을 세웠다.
키즈오토파크
한국생활안전연합에서 '어린이가 안전하면 모두가 안전하다.' 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어린이의 교통안전과 사고예방을 위한 어린이 교통안전체험관 키즈오토파크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교통안전에 대해 배운다.
고하 송진우 선생 동상
독립운동가, 교육가, 언론인 및 정치가로서 항일독립과 민주건국을 위하여 몸바친 고하 송진우 선생(1890~1945년)의 위대한 공적을 기념하고자 국민의 뜻을 모아 1983.9.23 이 동상을 세웠다. 고하 선생은 중앙학교 교장으로서 1919.3.1 운동을 배후 주동하여 옥고를 치루었고, 1921년 동아일보 사장 취임 후 20여년간 신문을 통하여 정부가 없는 일제 암흑기에 국내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민족, 민주, 민생, 민문주의를 구국의 기본사상으로 삼아 언론, 교육, 산업, 문화활동을 통하여 독립을 위한 민족의 힘과 얼을 고취하였다.
박연상
이름만 보면 한국인같지만 한국인이 아니다. 네덜란드인으로 항해 중 풍랑으로 제주도에 표착한 후 귀화하여 서울의 훈련도감에서 일을 했다. 병자호란 때 홍이포의 제작법 및 조정법을 지도하였고,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했을 때 통역을 맡아보고, 풍속을 가르쳤다고 한다. 네덜란드인 하면 하멜인데, 그 보다 먼저 한국에 표착하여 귀화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꿈마루
이 곳 꿈마루는 그 옛날 골프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공간(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이었다. 그 후 내부공간을 개조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전시공간(교양관)으로 사용되어 왔다. '한국건축 100년'에 선정되기도 한 이 건축물은 한국 현대건축계의 1세대 건축가 나상진님이 설계한 작품이다. 수평성을 강조한 과감하고도 자유로운 양식으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련된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2011년 건물에 깃들어 있는 시간의 기억(골프장 클럽하우스와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의 기억)을 보존한다는 취지 아래 새로운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재생되었다.(1층 로비/상황실, 2층 피크닉정원/관리사무실, 3층 카페테리아/다목적홀)
일어서자 초인상(서울, 황금알을 품다.)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 도시갤러리 사업으로 조성된 본 작품은 '서울시와 함께 일어서자!, 희망의 힘' 을 주제로 하는 시민참여프로젝트로 제작되었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 돌에 소원을 빌거나 돌탑을 쌓아왔던 우리의 전통을 추억하며 시민들의 꿈과 소망을 모으고 쌓아올렸다.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이며, 우리 사회의 초상이기도 하다. 작품을 통해 어려운 가운데 희망을 함께 꿈꾸고, 만들고, 이겨나가길 기원한다.
능동 숲속의 야외무대 좌석
김동인 문학비와 흉상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등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을 발표한 김동인을 우리 세대들은 잘 안다. 사직공원(1976.10월 건립)에 있던 금동 김동인의 문학비와 흉상을 1988년 이곳에 이전 설치하였다. 하지만 그의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김동인 흉상에 친일문학가를 표시하자.)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식물원
* 식물원의 유래 : 식물원에서 자라는 야자나무, 망고나무, 바나나나무 등 열대식물은 1972년 월남참전 용사들이 전쟁 중에도 고국의 어린이들에게 푸픈 꿈을 안겨주려고 서울시에 기증한 나무들이다. 1972.4.15 열대나무 1,128그루의 나무가 베트남에서 해군 함정에 실려 출발하여, 24일 부산항에 도착하여 27일에 서울시에 기증되어 어린이대공원 식물원에 심어졌다.
식물원에서 인증샷
창가에 걸린 줄기가 아래로 자라는 식물
동물원(입구)
동물원 부근 팔각정
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
어린이대공원에는 동상이 꽤 많이 설치되어 있다. 고당 조만식 선생은 1883.2.1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 독실한 신앙과 숭고한 인격, 투철한 의지와 실천궁행하는 자력갱생정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폭력 저항과 자유민주통일을 위한 투쟁은 살아있는 교훈이다. 업적으로는 평양 산정현교회와 기독교청년회 또는 오산, 숭인, 숭실학교와 관서체육회 및 조선일보 등 교육, 언론, 문화, 산업 등에 미쳤다.
을지문덕 장군 동상(어린이대공원 후문 밖에 위치)
민족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은 고구려 영양왕 때의 사람으로 지혜와 담력이 뛰어났으며, 문무를 겸비한 국민의 지도자였다. 612년 봄 중원을 통일한 수양제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적장 우문술에게 시(신묘한 그대 전술 천문 지리 통달했네. 싸움마다 이겼으니 공이 이미 높았구나, 원컨대 족한 줄 알고 그만 둠이 어떠뇨)를 보내 철병토록 하였으며, 살수 청천강에 이르러 반쯤 건너가자 복병을 풀어 기습작전으로 적들을 완전히 섬멸시킨 지략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