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멀리 가운데는 계방산, 그 왼쪽은 회령봉
功名도 헌 신이라
헌 신 신고 어대 가리
벗어 후리치고
山中에 들어가니
乾坤이 날다려 이르기를
함께 늙자 하더라
―― 靑丘永言 (가람본)에 나오는 작자미상의 작품
▶ 산행일시 : 2021년 12월 19일(일), 맑음
▶ 산행인원 : 4명
▶ 산행시간 : 7시간 12분
▶ 산행거리 : 도상 14.3km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고 장평으로 감
▶ 올 때 : 봉평 이효석 문학관에서 택시 타고 장평으로 와서, 저녁 먹고 시외버스 타고 동서울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40 - 동서울터미널, 장평 가는 시외버스 출발
08 : 32 ~ 08 : 43 - 장평, 산행준비, 산행시작
09 : 18 - 물안골 입구(백옥포교) 지난 산모퉁이, 산속 진입
10 : 02 - 735m봉, 첫 휴식
10 : 35 - 808.5m봉
10 : 54 - 775m봉
11 : 00 - 안부, 임도
11 : 55 ~ 12 : 33 - △885.8m봉, 점심
13 : 00 - 안부, 임도
13 : 13 - 874.2m봉
13 : 34 - 895.5m봉
13 : 45 - 최고봉(910m)
14 : 04 - △885.8m봉
14 : 12 - 877.6m봉, ┣자 능선 분기
14 : 45 - 본동 굴다리
15 : 05 - 701.5m봉
15 : 29 - △684.1m봉
15 : 43 - 653.3m봉
15 : 55 - 이효석 문학관, 산행종료
16 : 17 ~ 18 : 53 - 장평, 저녁
20 : 36 - 동서울터미널, 해산
2-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봉평 1/25,000)
2-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봉평 1/25,000)
2-3.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봉평 1/25,000)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전 휘
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
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 장에서 한번이나 흐붓하게 사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 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 걸.”
우리가 익히 아는 가산 이효석(可山 李孝石, 1907~1942)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첫 단락이다. 이 짧은
몇 줄이 이 소설의 대강을 암시하고 있다. 장돌뱅이 왼손잡이 허생원, 곧 등장하게 될 왼손잡이 동이, 그리고 봉
평, 물레방앗간 ……. 가산의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우리는 봉평 그 현장을 장돌뱅이들이 오
가는 시골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산릉을 넘어가고자 한다. 무명봉 9좌를 넘어야 한다. 물론 국토지리정보
원 지형도에 표시된 삼각점 또는 표고점의 봉우리다.
이번에도 우리는 갈 길이 서로 달랐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이른 아침 우연히 같은 시간에 만났다. 킬문 님은 홍
천으로, 칼바위 님은 괴산으로, 우리는 장평으로 간다. 그러고 보면 산꾼 아닌 장돌뱅이가 부럽기도 하다. 그들
은 장이 서는 고장을 찾아 함께 가니까 말이다. 장평을 직통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우등버스다. 횡으로 세 좌석
을 차지한다. 동지섣달 아직 캄캄한 서울을 소등하고 슬며시 빠져나간다.
어제 오후에 전국에 걸쳐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장평 가는 도로사정이 어떠할지 불안하기도 하거니와 차안
소등하자마자 설핏 잠이 들었으니 버스가 어느 고속도로를 달리는 줄 까맣게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르
고 아마 추읍산이 나를 깨웠다. 버스는 중부고속도로를 가다가 곤지암에서 제2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남한강
을 지나고 차창 밖으로 어렴풋이 추읍산이 보였다. 반가웠다. 오랜만이다. 그러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장평터미널. 예정시간인 1시간 50분을 겨우 2분 넘겼다. 이 버스는 잠시 쉬었다가 강릉으로 간다. 눈 쌓인 장평
은 바람 일어 더욱 스산하다. 대합실로 들어가서 산행복장을 다듬는다. 대로 따라가다 물안골(수항동) 입구 지
나 산속에 들 텐데 거기까지 불과 2.5km라 택시 타고 가기가 어중간하다. 걸어가기로 한다. 보도가 끝나면 갓길
이 넓어 걸을만하다. 주변 풍경 또한 타지의 그것이라 유심한 볼거리다.
흥정천을 백옥포교로 건널 때는 이곳의 마을유래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1500년대에는 수운판관으로 부임한 이원수(李元秀, 이율곡의 아버지)가 이 마을에 나루터를 개설하여 물자를
한양으로 나르던 곳으로 추측이 되는 곳이며 추후 진두리 장터로 변형이 되어 구한말시대로 내려오면서 물류
중심지역으로서 장터가 되었다. 1972년도 영동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진두리 장터가 소멸되었다.”
3. 차창 밖으로 바라본 남한강의 이른 아침
4. 차창 밖으로 바라본 추읍산
5. 설원
6. 멀리는 회령봉
7. 왼쪽은 흥정산, 오른쪽은 회령봉
8. 임도
9. 회령봉, 맨 오른쪽은 계방산
6번 국도를 타고 봉평 쪽으로 가다보면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와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
1792~1868)를 제향하는 사당인 봉산서재(蓬山書齋)가 있다. 율곡을 제향하게 된 것은 그의 부친 이원수가 수
운판관(水運判官)으로 이곳에 거주할 때 신사임당이 율곡을 잉태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서이고, 한편 이곳을 창
건할 때 화서의 문인인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 태은 추성구(泰隱 秋性求) 등이 조
직한 강수계(講修契)의 노력이 컸다고 해서 화서도 모셨다.
물안골 입구 지나고 산모퉁이 도는 오르막과 산자락 절개지 옹벽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산속으로 들어간다. 첫
발부터 가파르다. 더구나 눈길이다. 설벽이다. 수북한 낙엽을 덮은 눈이 그다지 깊지 않아 도리어 고역이다. 쭉
쭉 미끄러진다. 차라리 제자리걸음은 나은 편이다. 1보 전진하려다 2보 후퇴하기 일쑤다. 갈지자 대자로 그려
엷은 능선을 잡은 다음 가느다란 밧줄(산양삼 등 특용작물 재배지 경계표시였다)을 거머쥐고 오른다.
한 피치 된 오르막을 거친 숨으로 극복하면 너른 설원이 펼쳐진다. 우리가 새길 낸다. 함부로 누벼도 좋다. 그러
나 낭만은 잠시다. 키 큰 산죽 숲을 헤친다. 산죽 잎에는 눈이 소담히 쌓였다. 그런 산죽 숲을 헤치니 곧 전설이
아닌 실재의 설인(雪人)이 되고 만다. 긴 능선이 한숨 돌리는 735m봉이다. 우리도 배낭 벗고 휴식한다. 이가 시
리도록 차디찬 입산주 탁주가 목을 넘어서는 시원하다.
이다음에 오른 808.5m봉의 오른쪽 사면은 장뇌삼 등 특용작물 재배지다. 둘러친 철조망이 하도 엄중하여 군부
대인 줄 알았다. 혹시나 그 특용작물의 씨앗이 왼쪽 사면에 튀기라도 했을까 먼눈으로 살폈으나 온통 눈밭이라
구별하기 어렵다. 오르막에서는 엎어지더니 내리막에서는 넘어지고 자빠진다. 도대체 쉬운 길이 없다. 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내려선다. 여태 답답하던 조망이 훤히 트인다. 흥정산, 회령봉, 계방산, 황병산, 이를 앙다문 강인
한 설산이다.
임도 절개지 왼쪽 가장자리가 느슨하다. 눈길 고라니가 러셀한 자국을 따른다. 촘촘한 수렴(樹簾)을 발로 걷어
첩첩한 설산을 들여다본다. 능선에는 칼바람이 인다. △885.8m봉 정상을 몇 미터 앞에 두고 칼바람이 무딘 눈
밭에 점심자리 편다. 휴식할 때마다 입을 놀리지 않았지만 점심은 별개다. 어느 해 겨울 지독히 춥던 날 오지산
행에서 설악산 감투봉을 갔었다. 그날 능선에는 바람이 일어 가파른 사면으로 피해 선 채로 점심을 먹어야 했
다.
모든 게 얼었다. 밥알은 왕모래와 같았고 깍두기는 돌멩이와 같았다. 이빨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날에 비하면
오늘은 봄날이다. 코펠 속 어묵은 찰지고 떡살은 쫀득쫀득하고 라면발은 꼬독꼬독하고 식후 커피는 구수하다.
△885.8m봉 오른쪽 사면도 철조망 길게 두른 특용작물 재배지다.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길게 내린
안부도 임도가 지난다. 새로 난 임도와 함께 능선을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이다.
이 임도는 874.2m봉에서 왼쪽 산허리 돌아 휘닉스파크 쪽으로 간다. 우리는 북진한다. 비슷비슷한 표고의 봉봉
을 오르내린다. 등로 주변은 수렴에 가려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다. 저 앞에 가면 혹시 조망이 트일까 잰걸음
한다. 895.5m봉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상 오늘 산행의 최고봉이다. 그런데 이정표상의 최고봉은 조금 더
가서 있다. ┫자 갈림길에 ‘최고봉 910m’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왼쪽은 휘닉스파크를 오가는 길이고 여기
서부터 ‘이효석 문학관’ 가는 길을 안내한다.
10. 왼쪽은 흥정산
11. 멀리 가운데는 발왕산, 그 앞 오른쪽은 백적산, 맨 오른쪽은 괴밭산
12. 멀리 가운데에서 약간 비킨 왼쪽은 황병산, 오른쪽은 백적산 북릉
13. 멀리 가운데는 황병산
14. 등로
15. 지도상 오늘 산행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895.5m봉
16. 최고봉, 여기서부터 잘난 길이 이효석 문학관을 안내한다
왜 하필 ‘최고봉’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누구나 가산 이효석 하면 그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린다.
평자들은 이를 두고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백미요, ‘최고봉’이라고 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가
아닐까? 최고봉이라 일컫게 하는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
이 막힐 지경이다.”
길 좋다. 산책길이다. 미음완보가 적당한 길을 줄달음한다. 버릇이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멀리 하
늘금은 잠두산, 백석산 연봉 연릉이다. 저 산 아래가 허생원이 밤길로 갔던 대화다. △885.8m봉 삼각점도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이 다음 877.6m봉은 ┫자 능선이 분기한다. 직진하는 잘난 길은 ‘이효석 문학의 숲’으로 가
는 길이고 왼쪽(북쪽)은 길 없는 우리의 길이다. 자연 님과 하운 님은 잘난 길 따라 ‘이효석 문학의 숲’으로 가
고, 메아리 님과 나는 왼쪽의 산릉을 넘어 ‘이효석 문학관’으로 가기로 한다.
매운 잡목 헤친다. 잘못 내쳤다가 귀싸대기 된통 얻어맞으니 생눈물이 난다. 임도로 내려서고 임도를 간다. 임
도가 왼쪽 사면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능선마루 고집하여 임도를 버린다. 얼마 안 가 안부인 도로의 깊은 절개
지에 맞닥뜨리고 그 아래 도로는 4차선의 6번 (고속화)국도다. 줄줄이 총알처럼 달리는 차량을 피한다고 해도
높은 중앙분리대를 넘기 어렵겠다. 잡목 숲 헤쳐 다시 임도와 만나고 본동 마을로 내려간다.
6번 국도 밑을 지나는 굴다리가 있다. 산기슭 빈 밭을 가로지르고 가파른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아까는 납작한
동네 야산으로 보였는데 다가가자 상당한 첨봉이다. 걸음걸음 스틱 휘청하게 짚는다. 무이삼거리에서 오는 잘
난 길과 만난다. 이정표는 ‘이효석 문학관’ 가는 길을 안내한다. 701.5m봉. 조망이 약간 트인다. 백적산, 괴밭산,
잠두산, 백석산, 가리왕산, 금당산이 반갑다. 여기도 길 좋다. 길 양쪽은 낙엽송 숲이니 그 열주를 사열하는 발걸
음이라 우쭐해진다.
봉마다 쉼터로 벤치를 놓았다. 길게 내렸다가 한 피치 가쁜 숨으로 첨봉인 △684.1m봉을 오른다. 삼각점은 ‘봉
평 439’이다. 이곳도 6.25때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 기념지역’ 안내판이 있다. 이제 ‘이
효석 문학관’까지는 한달음 거리다. 653.3m봉을 대깍 넘고 이정표가 안내하는 왼쪽 능선에 들어 그 끄트머리인
문학관 후원(?)일 듯한 뒷산에서 멀리 금당산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문학관으로 내려선다.
택시 부른다. 자연 님과 하운 님도 때마침 문학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장평까지 금방이다. 오늘은 하산이 일러
저녁시간이 넉넉하다. 낯익힌 고려회관 사장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무리 느긋해도 버스시간이 남아
더덕주 한 병을 더 비운다.
17. 잠두산 연릉
18. 임도, 가로수로 자작나무를 심었다
19. 태기산
20. 이효석 문학관 가는 길, 낙엽송 숲을 자주 지난다
21. 맨 왼쪽은 병두산, 그 앞 오른쪽은 백적산, 맨 오른쪽은 괴밭산
22. 이효석 문학관 뒷산에서 바라본 금당산
23. 이효석 문학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봉평 주변, 멀리는 금당산
24. 이효석 문학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봉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