兩班者(양반자) : 양반이란
士族之尊稱也(사족지존칭야) : 사족(士族)들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旌善之郡(정선지군) : 정선군(旌善郡)에
有一兩班(유일양반) : 한 양반이 살았다.
賢而好讀書(현이호독서) : 어질고 글읽기를 좋아하여
每郡守新至(매군수신지) : 매양 군수가 새로 括覃玖�
必親造其廬而禮之(필친조기려이례지) : 필히 몸소 그 집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然家貧(연가빈) : 그런데 이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歲食郡糶(세식군조) : 해마다 고을의 환자를 타다 먹은 것이
積歲至千石(적세지천석) : 쌓여서 천석에 이르렀다.
觀察使巡行郡邑(관찰사순행군읍) : 강원도 감사(監使)가 군읍(郡邑)을 순시하다가
閱糶糴大怒曰(열조적대노왈) : 정선에 들러 환곡(還穀)의 장부를 열람하고는
대노해서 이르기를
何物兩班(하물양반) : "어떤 놈의 양반이
乃乏軍興(내핍군흥) : 이처럼 군량(軍糧)을 축냈단 말이냐?" 하고
命囚其兩班(명수기양반) : 그양반을 가두라고 명령했다
郡守意哀其兩班(군수의애기양반) : 군수는 마음 속으로
貧無以爲償(빈무이위상) :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수 없음을 딱하게 여기고
不忍囚之(불인수지) : 차마 가두지 못했지만
亦無可奈何(역무가내하) : 무슨 도리도 없었다.
兩班日夜泣(양반일야읍) : 양반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計不知所出(계불지소출) : 해결할 방도를 차리지 못했다.
其妻罵曰(기처매왈) : 그 부인이 역정을 냈다.
平生子好讀書(평생자호독서) : "당신은 평생 글 읽기만 좋아하더니
無益縣官糶(무익현관조) : 고을의 환곡을 갚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군요.
돌兩班兩班不直一錢(돌양반양반부직일전) : 쯧쯧 양반, 양반이란 한푼어치도 안 되는 걸."
其里之富人(기리지부인) : 그 마을에 사는 한 부자가
私相議曰(사상의왈) : 가족들과 의논하기를
兩班雖貧(양반수빈) :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常尊榮我雖富(상존영아수부) : 늘 존귀하게 대접받고 나는 아무리 부자라도
常卑賤(상비천) : 항상 비천(卑賤)하지 않느냐.
不敢騎馬(불감기마) : 말도 못타고,
見兩班(견양반) : 양반만 보면
則跼縮屛營(칙국축병영) : 굽신굽신 두려워해야 하고,
匍匐拜庭(포복배정) : 엉금엉금 가서 정하배(庭下拜)를 하는데
曳鼻膝行(예비슬행) : 코를 땅에 대고 무릎으로 기는 등
我常如此(아상여차) : 우리는 항상 이렇게
其륙辱也(其륙욕야) : 수모를 받는단 말이다.
今兩班(금양반) : 이제 동네 양반이
貧不能償적(빈불능상적) : 가난해서 타먹은 환자를 갚지 못하고
方大窘(방대군) : 시방 아주 군색한 판이니
其勢誠不能保其兩班(기세성불능보기양반) : 그 형편이 도저히 양반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我且買而有之(아차매이유지) : 내가 장차 그의 양반을 사서 가져 보겠다."
遂踵門而請償其적(수종문이청상기적) : 부자는 곧 양반을 찾아가서 자기가 대신 환자를 갚아
주겠다고 청했다.
兩班大喜許諾(양반대희허낙) : 양반은 크게 기뻐하며 승낙했다.
於是(어시) : 이에
富人立輸其적於官(부인립수기적어관) : 부자는 즉시 곡식을 관가에 실어 가서 양반의 환자를
갚았다.
郡守大驚異之(군수대경이지) : 군수는 양반이 환곡을 모두 갚은 것을 놀랍게 생각해
自往勞其兩班(자왕노기양반) : 몸소 찾아가서 양반을 위로하고
且問償적狀(차문상적상) : 또 환자를 갚게 된 사정을 물어 보려고 했다.
兩班氈笠衣短衣(양반전립의단의) : 그런데 뜻밖에 양반이 벙거지를 쓰고 짧은 잠방이를 입고
伏塗謁稱小人不敢仰視(복도알칭소인불감앙시) : 길에 엎드려 '소인'이라고 자칭하며 감히 쳐다
못하고 있지 않는가.
郡守大驚下扶曰(군수대경하부왈) :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부축하고
足下(족하) : "귀하는
何自貶辱若是(하자폄욕약시) : 어찌 이다지 스스로 낮추어 욕되게 하시는가요?" 하고 말했다.
兩班益恐懼(양반익공구) : 양반은 더욱 황공해서
頓首俯伏曰(돈수부복왈) :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엎드려 말하기를
惶悚小人非敢自辱(황송소인비감자욕) : "황송하오이다. 소인이 감히 욕됨을 자청하는 것이 아니
오라,
己自鬻其兩班以償적(기자륙기양반이상적) : 이미 제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았습지요.
里之富人乃兩班也(리지부인내양반야) : 동리의 부자가 양반이올습니다.
小人復安敢冒其舊號而自尊乎(소인복안감모기구호이자존호) : 소인이 이제 다시 어떻게 전의 양
반을 모칭(冒稱)해서 양반 행세를 하겠습니까?"
郡守歎曰(군수탄왈) : 군수는 감탄해서 말했다.
君子哉富人也(군자재부인야) : "군자로구나 부자여!
兩班哉富人也(양반재부인야) : 양반이로구나 부자여!
富而不吝義也(부이불린의야) :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지 않아 의롭고
急人之難仁也(급인지난인야) : 남의 어려움을 다급하게 여기니 어질다,
惡卑而慕尊智也(악비이모존지야) :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한 것을 사모하니 지혜로운 일이다.
此眞兩班雖然(차진양반수연) : 이야말로 진짜 양반이로구나.
私自交易(사자교역) : 그러나 사사로 팔고 사고서
而不立券(이불립권) : 증서를 해 두지 않으면
訟之端也(송지단야) : 송사(訟事)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我與汝約(아여여약) : 내가 너와 약속하노니
郡人而證之(군인이증지) : 고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를 증인 삼고
立券而信之(입권이신지) : 증서를 만들어 미덥게 하되
郡守當自署之(군수당자서지) : 군수가 마땅히 거기에 서명할 것이다."
於是(어시) : 이에
郡守歸府(군수귀부) : 군수는 관부(官府)로 돌아가서
悉召郡中之士族(실소군중지사족) : 고을 안의 사족(士族) 및
及農工商賈悉至于庭(급농공상고실지우정) : 농공상(農工商)들을 모두 불러 동헌뜰에 모았다.
富人坐鄕所之右(부인좌향소지우) : 부자는 향소(鄕所)의 오른쪽에 서고
兩班立於公兄之下(양반입어공형지하) :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섰다.
乃爲立券曰(내위립권왈) : 그리고 증서를 만들어 이르기를
乾隆十年九月日(건륭십년구월일) : 건륭(乾隆) 10년 9월 모일에
右明文段(우명문단) : 이 문서를 만드노라.
屈賣兩班(굴매양반) : 몸을 굽혀 양반을 팔아서
爲償官穀(위상관곡) : 환곡을 갚으니
其直千斛(기직천곡) : 그 값은 천석이다.
維厥兩班(유궐양반) : 오직 이 양반은
名謂多端(명위다단) :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나니
讀書曰士(독서왈사) : 글을 읽으면 사(士)라 하고
從政爲大夫(종정위대부) : 정치에 나아가면 대부(大夫)가 되고
有德爲君子(유덕위군자) :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이다.
武階列西(무계열서) : 무반(武班)은 서쪽에 늘어서고
文秩敍東(문질서동) : 문반(文班)은 동쪽에 늘어서는데
是爲兩班(시위양반) : 이것이 '양반'이니
任爾所從(임이소종) : 너 좋을 대로 따를 것이다.
絶棄鄙事(절기비사) : 야비한 일을 딱 끊고
希古尙志(희고상지) : 옛을 본받고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五更常起(오경상기) : 늘 오경(五更)만 되면 일어나
點硫燃脂(점류연지) : 유황에다 불을 당겨 등잔을 켜고서
目視鼻端(목시비단) : 눈은 가만히 코끝을 보고
會踵支尻(회종지고) : 발꿈치를 궁둥이에 모으고 앉아
東萊博議(동래박의) : 동래박의(東萊博義)를
誦如氷瓢(송여빙표) : 얼음 위에 박 밀듯 왼다.
忍餓耐寒(인아내한) : 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뎌
口不說貧(구불설빈) : 입으로 구차스러움을 남에게 말하지 아니하되
叩齒彈腦(고치탄뇌) : 고치․탄뇌(叩齒彈腦)를 하며
細嗽嚥津(세수연진) : 입안에서 침을 가늘게 내뿜어 연진(嚥津)을 한다.
袖刷毳冠(수쇄취관) : 소매자락으로 모자를 쓸어서
拂塵生波(불진생파) : 먼지를 털어 물결무늬가 생겨나게 하고,
盥無擦拳(관무찰권) : 세수할 때 주먹을 비비지 말고,
漱口無過(수구무과) : 양치질을 지나치게 말고,
長聲喚婢(장성환비) : 소리를 길게 뽑아서 여종을 부르며,
緩步曳履(완보예리) : 걸음을 느릿느릿 옮겨 신발을 땅에 끄은다.
古文眞寶(고문진보) : 고문진보(古文眞寶)와
唐詩品彙(당시품휘) : 당시품휘(唐詩品彙)를
鈔寫如荏(초사여임) : 깨알 같이 베껴 쓰되
一行百字(일행백자) : 한 줄에 백 자를 쓰며,
手毋執錢(수무집전) : 손에 돈을 만지지 말고,
不問米價(불문미가) : 쌀값을 묻지 말고,
署毋跣襪(서무선말) :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飯毋徒髻(반무도계) : 밥을 먹을 때 맨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食毋先羹(식무선갱) : 국을 먼저 훌쩍 떠 먹지 말고,
歠毋流聲(철무류성) : 무엇을 후루루 마시지 말고,
下箸毋舂(하저무용) : 젓가락으로 방아를 찧지 말고,
毋餌生葱(무이생총) : 생파를 먹지 말고,
飮醪毋最鬚(음료무최수) :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쭈욱 빨지 말고,
吸煙毋輔窳(흡연무보유) : 담배를 피울 때 볼에 우물이 파이게 하지 말고,
忿毋搏妻(분무박처) : 화 난다고 처를 두들기지 말고,
怒毋蹋器(노무답기) : 성내서 그릇을 내던지지 말고,
毋拳敺兒女(무권구아녀) :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말고,
毋詈死奴僕(무리사노복) : 노복(奴僕)들을 야단쳐 죽이지 말고,
叱牛馬(질우마) : 마소를 꾸짖되
毋辱鬻主(무욕죽주) : 그 판 주인까지 욕하지 말고,
病毋招巫(병무초무) : 아파도 무당을 부르지 말고,
祭不齊僧(제불제승) : 제사 지낼 때 중을 청해다 재(齋)를 드리지 말고,
爐毋煮手(노무자수) : 추워도 화로에 불을 쬐지 말고,
語不齒唾(어불치타) : 말할 때 이 사이로 침을 흘리지 말고, .
毋屠牛(무도우) : 소 잡는 일을 말고,
毋賭錢(무도전) : 돈을 가지고 놀음을 말 것이다.
凡此百行(범차백행) : 이와 같은 모든 품행이
有違兩班(유위양반) : 양반에 어긋남이 있으면
持此文記(지차문기) : 이 증서를 가지고
卞正于官(변정우관) : 관(官)에 나와서 변정할 것이다.
戶長讀旣畢(호장독기필) : 호장(戶長)이 증서를 읽는 것을 쭉 듣고
富人悵然久之曰(부인창연구지왈) : 부자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兩班只此而已耶(양반지차이이야) : "양반이라는 게 이것 뿐입니까?
吾聞兩班如神仙(오문양반여신선) : 나는 양반이 신선 같다고 들었는데
審如是太乾沒(심여시태건몰) :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 걸요.
願改爲可利(원개위가리) : 원하옵건대 무어 이익이 있도록 문서를 바꾸어 주옵소서."
於是(어시) : 이에
乃更作券曰(내갱작권왈) : 다시 문서를 작성했다.
維天生民(유천생민) :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其民四維(기민사유) :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四民之中(사민지중) : 사민(四民) 가운데
最貴者士(최귀자사) :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稱以兩班(칭이양반) : 이것이 곧 양반이다.
利莫大矣(리막대의) :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不耕不商(불경불상) :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粗涉文史(조섭문사) :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大決文科(대결문과) : 크게는 문과(文科) 급제요,
小成進士(소성진사) : 작게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文科紅牌(문과홍패) : 문과의 홍패(紅牌)는
不過二尺(불과이척) :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百物具備(백물구비) :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維錢之槖(유전지탁) :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
進士三十(진사삼십) : 진사가 나이 서른에
乃筮初仕(내서초사) :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猶爲名蔭(유위명음) : 오히려 이름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善事雄南(선사웅남) :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耳白傘風(이백산풍) :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腹皤鈴諾(복파령락) :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室珥冶妓(실이야기) : 방에서 기생이 귀고리로 단장하고,
庭穀鳴鶴(정곡명학) : 뜰에는 학(鶴)을 기른다.
窮士居鄕猶能武斷(궁사거향유능무단) :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능히
무단(武斷)을 하여
先耕隣牛(선경린우) :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借耘里氓(차운리맹) :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孰敢慢我(숙감만아) :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灰灌汝鼻(회관여비) : 너희들 코에 잿물을 붓고
暈髻汰鬢(훈계태빈) : 머리끄뎅이를 회회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無敢怨咨(무감원자) : 누구 가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富人中其券而吐舌曰(부인중기권이토설왈) : 부자는 증서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已之已之(이지이지) :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孟浪哉(맹랑재) : 맹랑하구먼.
將使我爲盜耶(장사아위도야) :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掉頭而去(도두이거) : 머리를 흔들고 가버렸다.
終身不復言兩班之事(종신불복언양반지사) : 부자는 평생 다시 양반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다.
양반전(兩班傳)-박지원(朴趾源)
'양반'은 사족(士族)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어질면서도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군수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반드시 그 집에 몸소 나아가서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나 그는 살림이 가난해서, 해마다 관가에서 환자를 타 먹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쌓이고 보니, 천 석이나 되었다. 관찰사가 여러 고들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관청 쌀의 출납을 검열하고는 매우 노하였다.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을 이렇게 축냈단 말이냐?"
명령을 내려 그 양반을 가두게 하였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길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겼다. 차마 가두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두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양반은 밤낮으로 훌쩍거리며 울었지만, 아무런 대책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이렇게 욕하였다.
"당신이 한평생 글읽기를 좋아했지만, 관가의 환곡을 갚는데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구려. 쯧쯧, 양반 양반 하더니 한푼 어치도 못 되는구려."
그 마을의 부자가 가족들과 서로 의논하였다.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언제나 높고 영광스럽건만, 우리들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언제나 낮고 천하거든. 감히 말을 탈수도 없고, 양반만 보면 저절로 기가 죽어서 굽실거리며 엉금엉금 기어가서 뜰 밑에서 절해야 하지. 코가 땅에 닿도록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면서, 우리네는 줄창 이렇게 창피를 당해야 하거든. 마침 저 양반이 가난해서 환자를 갚지 못해 몹시 곤란해질 모양이야. 참으로 그 양반이라는 자리도 지닐 수 없는 형편이 되었지. 내가 그것을 사서 가져야겠어."
부자는 곧 양반의 집을 찾아가서 그 환자를 대신 갚겠다고 청하였다. 양반은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그래서 부자가 곧 그 곡식을 관가에 보내어 갚았다. 군수는 매우 놀라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직접 양반에게 찾아가 위로하면서, 환자를 갚은 사정을 물으려 하였다. 그러자 양반은 벙거지를 쓰고 베 잠방이를 입은 채로 길바닥에 엎드려, '쇤네'라고 칭하면서 감히 올려다보지를 못하였다.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그를 부축하며,
"선생께서 어찌 이다지도 스스로를 욕되게 하시는지요."
하였다. 양반은 더욱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황송하옵니다. 쇤네가 감히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쇤네는 벌써 스스로 양반을 팔아 환자를 갚았으니, 마을의 부자가 바로 양반이옵니다. 쇤네가 어찌 다시금 뻔뻔스럽게 옛날처럼 양반 행세를 하면서 스스로 높이겠습니까?"
군수가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군자답구려 부자시여. 양반답구려 부자시여. 부유하면서도 아끼지 않으니 정의롭고, 남의 어려움을 돌봐 주니 어질도다. 낮은 신분을 싫어하고 높은 자리를 그리워하니 슬기롭도다. 이야말로 참된 양반이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소송이 일어날 꼬투리가 되리다. 내가 그들과 더불어 고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증인을 세운 뒤에, 증서를 만들어 주리다. 군수인 내 자신이 마땅히 서명해야지."
군수가 곧 동헌으로 돌아와서 온 고들 사족과, 농민, 공장(工匠), 장사치까지 모두들 불러 뜰에 모았다. 부자는 향소(鄕所)의 오른쪽에 앉히고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세운 뒤에, 바로 증서를 제작하였다.
"건륭(乾隆) 10년 9월 몇 일에 아래와 같이 문권을 밝힌다.
양반을 팔아서 관가의 곡식을 갚은 일이 생겼는데, 그 곡식은 천 섬이나 된다. 이 양반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글만 읽으면 '선비'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大夫)'라 하며, 착한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라고 한다. 무관의 계급은 서쪽에 벌여 있고, 문관의 차례는 동쪽에 자리 잡았으며, 이들을 통틀어 '양반'이라고 한다. 이 여러 가지 양반 가운데서 그대 마음대로 골라잡되, 오늘부터는 지금까지 하던 야비한 일들을 깨끗이 끊어 버리고, 옛 사람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가져야 한다.
오경(五更)이 되면 언제나 일어나서 성냥을 그어 등불을 켜고, 정신을 가다듬어 눈으로 코끝을 내려다보며, 두 발굽을 한데다가 모아 볼기를 괴고 앉아서 "동래박의"처럼 어려운 글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외워야 한다. 굶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디며, 입에서 가난하다는 말을 내지 않아야 한다. 아래 윗니를 맞부딪쳐 똑똑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튕긴다. 가는 기침이 나면 가래침을 씹어 넘기고, 털 감투를 쓸 때에는 소맷자락으로 털어서 티끌 물결을 일으킨다. 세수 할 때에는 주먹의 때를 비비지 말 것이며, 양치질할 때에는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긴 목소리로 '아무개야' 계집종을 부르고, 느리게 걸으면서 신뒤축을 끌어야 한다. {고문진보}나 {당시품휘} 같은 책들을 깨알처럼 가늘게 배껴 쓰되, 한 줄에 백 자씩 써야 한다. 손에 돈을 지니지 말 것이며, 쌀값을 묻지도 말아야 한다.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도 맨상투 꼴로 앉지 말아야 한다. 식사하면서 국물부터 먼저 마셔 버리지 말며, 마시더라도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젓가락을 내리면서 밥상을 찧어 소리 내지 말며, 생파를 씹지 말아야 한다. 막걸리를 마신 뒤에 수염을 빨지 말며, 담배를 태울 때에도 볼이 오목 파이도록 빨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분하더라도 아내를 치지 말며, 화가 나더라도 그릇을 차지 말아야 한다. 맨주먹으로 아녀자들을 때리지 말며, 종들이 잘못하더라도 족쳐 죽이지 말해야 한다. 말이나 소를 꾸짖으면서 팔아먹은 주인을 들추지 말아야 한다. 병이 들어도 무당을 불러오지 말고, 제사하면서 종을 불러다 재(齋) 들이지 말아야 한다. 화롯가에 손을 쬐지 말며, 말할 때에 침이 튀지 말아야 한다. 소백정 노릇을 하지 말며, 돈치기 놀이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행위 가운데 부자가 한 가지라도 어기면, 양반은 이 증서를 가지고 관청에 와서 송사하여 바로잡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성주(城主) 정선 군수 화압(花押)
좌수(座首) 별감(別監) 증서(證署)
증서를 다 쓰고는 통인(通引)이 인(印)을 받아서 찍었다. 뚜욱뚜욱하는 그 소리는 마치 엄고(嚴鼓) 치는 소리 같았고, 그 찍어 놓은 모습은 마치 북두칠성이 세로 놓인 듯, 삼성(參星)이 가로놓인 듯 벌렸다. 호장(戶長)이 읽기를 마치자, 부자가 한참 동안이나 멍하게 있다가 말했다.
"양반이 겨우 요것뿐이란 말씀이오? 나는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들었지요. 정말 이것뿐이라면, 너무 억울하게 곡식만 빼앗긴 기지유. 아무쪼록 좀 더 이롭게 고쳐 주시오."
그래서 다시 증서를 만들었다.
"하늘이 백성을 낳으실 때에,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셨다. 이 네 갈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이 선비를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그들은 농사 짓지도 않고, 장사하지도 않는다.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르는데, 크게 되면 문과(文科)요, 작게 이르더라도 진사(進士)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온갖 물건이 이것으로 갖추어지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진사는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蔭官)이 될 수 있다.
훌륭한 남인(南人)에게 잘 보인다면, 수령 노릇을 하느라고 귓바퀴는 일산(日傘) 바람에 해쓱해지고, 배는 동헌(東軒) 사령(使令)들의 '예이'하는 소리에 살찌게 되는 법니다. 방안에서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뜰 앞에 곡식을 쌓아 학을 기른다.
(비록 그렇지 못해서)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내 밭을 김 매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네 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
부자가 그 증서 만들기를 중지시키고, 혀를 빼면서 말하였다.
"그만 두시오. 제발 그만 두시오. 참으로 맹랑합니다 그려. 당신네들이 나를 도둑놈이 되라 하시는군유."
하고는 머리채를 흔들면서 달아났다.
첫댓글
漢文小說 朴趾源의 兩班傳은
10년 前 2013년12월11일
'송운사랑방 '읽을만한 글' 방 No 156에
올려졌던 글을 다시 보완했습니다
송운카페지기 쌤님!!!
올린 글 잘 읽었습니다.
유튜브 책읽는 문학관 볼게요
북리뷰~~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아빛님 다녀 가셨군요 고맙습니다
오래된 책들을 뒤적이다가 고전古典을 보고
카페지기 다락방에 올려진 작품들을 몇개
보완 하였습니다
750 이양하 나무(2011.2.14)
815 황순원 소나기(2012.5.30)
1120 정비석 산정무한(2018.7.11)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름다운 나날 되세요
방송대학교 새내기 국문과 학생입니다
학우들과 함께 보려고 학과 카페에
옮겨가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