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3 : 1 – 11
예수님께서 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며 열두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찬과 베드로에게 부인할 것을 공관복음서에는 불과 몇 절로 간단하게 기록했습니다(마26:17-35, 막14:17-31, 눅22:14-38).
그러나 요한복음서에는 13:1에서부터 16장까지 공관복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언과 같은 말씀하시고 17장에 제자들에게 축복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18장에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다가 잡혀 끌려가셨다는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 가운데 13:1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는 종말론적으로 죄인의 구원과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택한 제자들입니다.(18) 열두 제자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모든 성도들의 대표를 상징합니다.
오늘 예수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마지막 유월절 밤을 지내시며 열두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행하신 일은 기독교의 본질을 가르쳐 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동안 다사다난하고 분주했던 사역과는 달리 그날 밤은 매우 차분하고 질서있게 진행하시며 생애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셨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누가 크냐고 다툼었습니다.(눅22:24) 그뿐 아니라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의논해서 돈까지 받고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마26:15).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4,5).
당시 유대인들은 발을 씻는 것은 그 집에서 가장 천한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선생’이요 ‘주’되신 예수님께서(13,14)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은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심을 행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8)라고 말한 것은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긴다는 것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는 베드로의 열정과 기질을 잘 대변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8)고 말씀하셨습니다. ‘상관이 없다’는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의 기업을 누릴 수 없다는 뜻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의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9). 베드로는 발뿐 아니라 온몸을 씻으면 더 큰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고 봅니다.
기도원이나 소위 은사를 받은 강사가 안수 기도를 할 때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안수하는 강사의 손을 서로 잡아 끄집어 자기 머리뿐 아니라 아픈 부위에 대고 ‘아멘’ 소리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 ‘이미 목욕한 자’란 중생을 경험한 자이기 때문에 발을 씻는 것은, 일상의 삶에서 쉽게 범하는 죄를 매일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자이심을 아시고 심령이 괴로워하시며(21) 그의 발을 씻어 주시고 성만찬의 떡과 잔을 주며 먹고 마시게 하셨습니다(26). 이것이 곧 가룟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결국 예수님을 팔았고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행1:18) 예수님께서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막14:21)는 말씀대로 그의 영혼은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하십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고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시고도 회개하지 않고 사단의 지배를 받으면, 우리도 가룟 유다와 같이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 속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라고 물었습니다(12).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씻어 주신 것은 구속사적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정신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입니다. 바울도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딤전5: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이며 기독교의 믿음의 본질입니다.
사도행전 20:35에 바울은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어디에도 바울이 말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정신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고 말씀하신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석은 말합니다.
‘주는 것이 받은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매일 범하는 죄까지도 용서하시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내가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축복하면 누구든지 다 좋아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받는 것을 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시고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교회는 주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신혼부부가 사랑한다고 맹세하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미워하고 헤어집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며 불평하고 싸웁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병든 사람을 블상히 여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크냐고 다툰 제자들에게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12)라고 물으시고,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7)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어떤 교회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교인들의 발을 씻어 주는 세족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근본정신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은 발을 씻겨 주는 세족식이 아닙니다. 먼지 같은 작은 죄까지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위선입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신 열두 제자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의 대표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투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서로 누가 큰 자인가를 다툽니다. 그래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할 수 있도록 흠도 티도 없는 작은 죄까지도 용서해 주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전지하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중에 두 제자의 문제를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2) 이미 대제사장에게 예수를 팔기로 약속하고 돈까지 받았습니다.(눅2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성찬의 떡을 먹여 주시며, 두 번이나 경고하시며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12,27)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받고도, 회개하지 않고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행1:18)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받았음에도 그는 회개하지 않음으로 그의 영혼은 지옥 불꽃 속에서 고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13:3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날이 새기 전에 작은 여종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고 회개하였습니다.(요18:27;눅22:62)
가룟 유다와 베드로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도 가룟 유다와 베드로와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와 같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용서받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예수님으로부터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계속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받읍시다. 주께서 오시는 날,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천국에서 들어가서 서로 사랑하며 영생복락을 누립시다.
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잠 29:9).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