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과 약병 그 사이
전홍구
언제일지 모르지만, 가는 날까지
내 힘으로 일상을 해결해야 할 터인데
뾰족하게 노란 싹이 돋아나면 봄이 왔고
송알송알 이마에 땀 맺히면 여름이요
우거진 나뭇잎 물들어 떨어지면 가을
자고 나 문밖에 하얗게 눈이 쌓였으면 겨울
겨울은 추운 게 겨울인데
여기고 저기고 따뜻하니
어디 겨울인가 봄이지
빌딩 안은 봄이요 주택은 겨울이라
너희는 늙어보았는가
나는 젊어 보았노라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이 줄을 선다
인생, 고작해야 꽃병과 약병 그 사이인 것을
그리 아우성과 발버둥을 쳤던가
갈 때 하나도 가져가지도 못할 것을
모으고 모은다고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여행 한번 못 해보고 그리 살았는지
누구는 병원에 몇 달째 누워있다더라
누구는 요양원에 가 있다고 하더라
누구는 자식들을 몰라본다더라는
소식을 전해 들을 적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내 힘으로 일상을 해결함에 감사하며
아프지 말고 즐기며 살자고 다짐하며
창가에 놓인 저 병이 꽃병인가 약병인가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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