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8,1-6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일어나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너에게 내 말을 들려주겠다.”
3 그래서 내가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갔더니,
옹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4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5 그때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6 “이스라엘 집안아,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47-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보여 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옹기장이로 비유하십니다.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예레 18,4).
흙은 가소성(可塑性)이 있어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모양의 변형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옹기장이는 이를 잘 알기에 제대로 된 형태가 나올 때까지 계속 흙을 매만지지요.
일단 흙으로 빚은 그릇이 가마에 들어가 불에 구워지면, 그때는 형태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뒤늦게 결함이 발견되어도 수정이 불가능해서 결국 깨버리는 수밖에 없지요.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는 내 손에 있다"(예레 18,5).
그러니 우리가 아직 진흙 상태로 주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비록 흠 많고 일그러진 몰골이라도 우리를 포기해 내던져 버리지 않으시고 인내심을 다해 재차 삼차 사차... 계속 다듬고 고쳐 주실 것이니 말이지요.
우리가 창조 때의 아름다움을 회복할 때까지, 하느님 모상성이 충만히 빛날 때까지 용서와 자비와 기다림의 주님 손길은 지치지 않고 무한 반복될 것입니다.
복음은 지난 며칠 동안 이어지던 하늘 나라 비유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그물이 가득 차자 ...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태 13,48).
하늘 나라는 일단 열린 상태의 그물입니다. 온갖 종류의 고기가 다 들어 있지요. 세상 종말에 선별작업이 시작되면 그때에는 선인과 악인의 처지가 극명하게 갈릴 겁니다.
사후 세계를 믿는 우리에게 다소 긴장감을 형성하는 대목입니다. 신앙도 사랑도 희생도 나름 하느라고 했건만 자기가 백 프로 선인 축에 끼일 거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좋은 것들"을 먼저 골라낸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분명 좋은 부분이 다 있으니까요.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먼저 고르고, 남은 것 중에서 비교적 좋은 것을 고르고, 또 나머지 안에서 그나마 좋은 것을 고르고 ... 이 작업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거의 대부분의 고기가 그릇에 담겨질 것 같습니다. 고기로 비유된 우리 중에 좋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영혼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고르고 고른 선별 작업 후에도 밖에 버려질 나쁜 것, 악한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울면서 이를 갈 것"(마태 13,50)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함을 통탄해서 울며 이를 간다는 뜻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하늘 나라를 갈망했다면 비록 실수는 있을지언정 하늘 나라에 맞갖는 모습으로 살려고 애썼을 터이고 그 자국은 영혼에서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하늘 나라에 어울리는 모습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고 적극적으로 그 반대의 길을 가던 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살아있는 내내 하늘 나라에 속하기를 거부하며 하늘 나라에 속할 만한 이들과의 교류조차 불편해 했을 것이고요. 어쩌면 그들은 하늘 나라를 자기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바꾸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불평하고 분열시키고 분노하는, 울며 이를 가는 것이 매우 익숙한 이들일 확률이 더 크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좋은 것들을 골라내는 하느님의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눈길을 바라봅니다. 행여 하나라도 놓칠까 주의를 기울여 살피고 또 살펴 좋은 점을 찾아내는 자애 가득한 시선입니다. 진흙이 제 꼴을 갖출 때까지 싫증 내지 않고, 노고를 마다 않고 다시 흙을 주무르는 옹기장이의 정성어린 그 손길과도 닮아 보입니다.
하늘 나라는 우리의 좋은 점들을 놓치지 않습니다. 또 더 좋게 되도록 끊임없이 도와주시지요. 좋은 것이 나올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정성껏 흙을 매만지는 옹기장이의 땀방울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맺혀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옹기장이 하느님 손길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맡기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자애로운 그분 손 안에 있으니 모든 걱정 붙들어매고 믿고 감사하며 의탁합시다. 우리는 하느님이 손수 빚으시는 멋진 작품입니다! 아멘.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