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누는 한 지체
고전12:19-20
저는 '전문인 선교'란 말을 좋아합니다. 드러내지 않고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흔히 '평신도 사역'이라고 하지요. 실제로 교회에서도 보면 목사가 하는 일(전도)보다 간호사, 교사 등의 전문인이 훨씬 일을 많이 합니다. 바라기는 참으로 제 삶이 목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순수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섬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목사라는 허울을 벗고 섬김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목사라는 정해진 룰과 틀에 갇히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섬김은 상대를 세워주는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변호사처럼 상대의 입장에서 남을 변호해 주는 사람과 함께 검사처럼 상대의 잘못을 지적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검사 같은 사람은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것이 상대를 높여주는 일이요 바로 그것이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리더는 사람을 인정하고 세워주는 것입니다. 또 섬김이란 언제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입니다.
사람의 행불행은 기분은 결코 권력이나 명예나 재물과 건강이 아니라, 얼마나 즐거워하느냐 곧 얼마나 웃으며 살아가느냐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리더에게 웃음은 더욱 중요합니다. 만약에 어느 심장병 담당 간호사가 평소에 웃지 않으면 그 병동 환자 사망률은 다른 병동에 비해 네 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타인에게 웃음으로 대한다는 것은 이웃을 살리는 리더의 필수적인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저에게 바램이 있다면 바로 누구나 마음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따뜻한 사람으로, 그리고 누구라도 저를 만나며 여유롭게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나 선생님들의 하시는 일이 잘해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면 더 쉽고 빠르게 될 수 있음에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는 것은 우리를 자녀로 여기시고 훈련시키시고, 무엇보다 우리와 하나님의 기쁨을 나누어 갖기 원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섬기거나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쁨을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즉 섬기는 것은 결국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아이들과 함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프리카 깊은 밀림에서 공기중의 소량의 수분과 햇빛만으로 사는 우츄프라 카치아란 음지식물이 있습니다. 지나가던 생명체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그날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엔 죽고 만다는 결벽증 강한 식물입니다. 그런데 이 식물을 연구하는 어느 박사는 오랜 연구 끝에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식물을 건드렸던 동일한 사람이 계속해서 건드려주면 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없이 결벽하다고 생각했던 이 식물은 한없이 고독한 식물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두번 눈길주거나 만져줄 때는 아이들은 사랑 결핍증으로 시들해질 것이지만, 끊임없이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면 그들은 분명 감격하고 변화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