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누가복음 18 : 15 – 17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고 영생한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점수로 따지면 10점도 안 됩니다. 주일을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때문에 영생을 얻게 된다는 믿음은 매우 위험합니다.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그리고 본문 17절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17)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24)라는 말씀에서 ‘얼마나 어려운지’라는 말은 어렵지만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 다니고 예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올바른 믿음이라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15) ‘어린 아기(아이)’란 젖 먹이로 7세 미만 아이입니다. 유대인들은 존경받는 랍비들에게 어린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도 존경하는 랍비로 알고 안수하여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오늘의 부모들이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와서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 때문에 부모까지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탄생하신 예수도 난지 팔 일 만에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으셨고, 마리아와 요셉은 정결 의식을 행하는 날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아기 예수를 주께 드렸습니다.(눅2:22-25)
그런데 제자들이 어린 아이를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꾸짖고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열심히 예수를 믿고서도 종말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믿음은 바르게 고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갓난 아기는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순전한 믿음입니다.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지합니다.
동물들은 태어나자 곧바로 걷고 뛰어다니며 먹이를 스스로 찾아 먹고 자랍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서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살 수 없습니다. 부모가 먹여주고 돌보아 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혹 부모가 없을지라도 누군가가 먹여주고 안아주고 돌봐주며 가르치고 해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돌봄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돌봄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46:3,4)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태어날 때부터 안아주시고 업어주시며 백발이 되기까지 지켜주시고 구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하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기기를 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찬송가 292장에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서리. 사나운 풍랑일 때 날 도와주시니,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됩니다’. 찬송가 292장은 영국 하버갈(1836-1879)이 작사했습니다. 성공회 목사의 딸로 태어나고서부터 건강이 좋지 못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주만 의지하며 평생을 살았던 그의 신앙고백과 같은 찬송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은 주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복하며, 그분의 보호 아래서만 살고자 하는 겸손함을 의미합니다.
어린 아이는 순수성을 지니고, 가르침도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 시민의 모델이 된 것입니다. 어린 아기는 어머니의 품에 안기면 걱정도 근심도 없습니다. 총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죽는 전쟁에도 두려움 없이 평안히 잡니다.
예수님께서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23:37)
지금도 주님께서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우리를 모으려고 하십니다. 우리도 주님 품에 안기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 없는 평안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합니다. 성경에서 어른들의 믿음을 보고 어린 아이들이 믿음으로 자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사도행전 12장에서 어린 여자 로데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사도들을 비롯한 성령 충만한 교인들의 믿음은 지상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의 가장되고 믿음과 어린 아이의 순전하고 거짓 없는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박해하여 야고보를 죽였을 때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고 하다가 무교절 기간이라 옥에 가두고 쇠사슬에 매여 군인들에게 지키게 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여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대문 두르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나가서 베드로라는 것을 알고 너무나 반가워서 미처 문을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와서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기도하던 사람들은 그에게 ‘네가 미쳤다’고 말하며 베드로가 온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말이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러면 그의 천사라’고 말하며 로데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행12:13-17)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사람들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는 일반 평신도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를 분석하면 ‘불신적인 기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신적인 기도’란 기도를 하면서도 안된다는 것으로 알고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당시 헤롯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인 야고보를 아무 이유도 없이 죽였습니다. 야고보를 죽이니까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헤롯은 이제는 베드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무교절이라 베드로를 죽일 수가 없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날이 새면 베드로도 야고보처럼 죽게 되는 것을 알고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린 로데가 기도하는 그들에게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로데를 보고 ‘네가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로데는 ‘참말이라’고 했을 때, ‘그러면 그의 천사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죽고 그의 천사가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한 그들의 기도가 ‘불신적인 기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베드로가 죽지 않고 살아왔음에도 그들은 계속적으로 부인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가 ‘불신적인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사람들은 사도를 비롯한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와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들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불신적인 기도’를 했다면 오늘의 교회도 ‘불신적인 기도’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 아이(계집아이:개역)’ 로데는 음성만 듣고서도 베드로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른들이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보고, 어린 로데도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어른들을 따라서 기도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시키지 않아도 따라서 하며 배웁니다. 성경에는 로데가 기도했다는 말씀이 없다고 해서 로데는 기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그 집에 자주 드나들어서 음성만 듣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알았으며, 어른들이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고 로데도 기도했을 것이라고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로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영접하려고 나왔다가 음성을 듣고 베드로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들을 비롯한 어른들의 ‘불신적인 기도’와 어린 로데의 ‘긍정적인 기도’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옥에 갇힌 베드로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쇠사슬을 풀어주고 옥문을 열어주고 베드로를 탈옥하게 해 주셨는가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해도 안되는 줄 알고 기도하는 ‘불신적인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가 부모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배워서 하는 순진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을 비롯한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도 베드로가 돌아왔음에도 믿지 않았던 그들과 같은 ‘불신적인 기도’를 하지 맙시다.
어린 로데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의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입시다. 우리 모두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합시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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