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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오악(五岳) 이야기
오악(五岳)은 중국의 다섯 이름난 산을 말한다.
동쪽 — 동악태산(東岳泰山, 산둥 성)
중국 오악 중 최고로 꼽히는 동악, 세계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동시에 등재된 세계복합유산, 진시황부터 중국 12황제가 다녀간 제왕의 산, 도교 최고의 신인 옥황상제가 머물고 있는 정상(玉皇頂), 중국 4대 사찰 중 하나인 영암사가 있는 곳 등,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산이 태산(泰山․1545m)이다. 태산을 설명하기에는 끝이 없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꼽은 것이다. 중국 4대 사찰 중 하나인 영암사는 태산의 서북쪽 끝자락 영암산(灵岩山․683m)에 자리 잡고 있다. 영암산은 태산의 위성산인 셈이다.
중국 관음산은 중절모 같은 봉우리가 계속 반복되면서 리지와 초원 평원지대를 번갈아 타야 한다.
그 영암산 남쪽 바로 맞은편에 관음산(觀音山․645m)이 있다. 관음도량의 터전이며, 하나의 산 봉우리 전체에 와불(臥佛)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기묘한 봉우리 일색이다. 그 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넌(Grand Canyou)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동양의 그랜드 캐넌은 중국의 태항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관음산의 형세에 비하면 비할 바가 못 된다. 관음산이 바로 중국판 그랜드 캐넌이고, 미국의 그랜드 캐넌을 축소해서 옮겨놓은 듯했다.
그 관음산을 개척한 중국태산트레킹의 황동호 사장의 초청과 안내로 관음 2봉부터 관음12봉까지 짜릿한 스릴을 만끽하며 종주했다. ‘
봉우리 능선에서 내려올 때는 아슬아슬한 릿지코스가 반복된다.
영암사로 가는 길목에서 영암사 조금 못 미쳐 차에서 내렸다. 앞(북쪽)에는 영암산 능선들이 길게 뻗어 있다. 능선은 뻗어 있지만 봉우리들은 마치 중절모를 쓴 듯 암벽이 직각을 이루며 끝 봉우리들을 형성하고 있다. 모자 같은 봉우리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이 정도면 천연 요새와도 같다.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는 오른(동)쪽 산으로 접어들었다. 태산 방향이다. 이쪽으로 약 30~40㎞ 곧장 가면 태산이 나온다. 황동호 사장은 “관음산에서 태산까지 2박3일 종주도 가능하다”며 “지금 약 10여 차례 다녀와 개발이 거의 완료된 상태며, 종주를 원하는 사람만 있다면 언제든 안내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종주할 때는 중간 기점에서 텐트를 치고 자고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한다고 했다.
관음산 등산로는 풀숲 사이로 잘 정비돼 있다. 길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갈수록 가팔라진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중국 산동성의 태산 부근은 한국과 위도가 비슷하기 때문에 서울 기후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중절모 같은 능선 위에서는 전혀 의외의 초원 평원지대가 펼쳐진다.
숲을 이룬 나무와 풀들도 한국의 숲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상큼한 냄새와 열매를 맺은 나무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사철나무 잎보다 조금 작고, 싸리나무 잎보다는 조금 큰 잎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대추나무다. 대추나무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드넓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사모 회원들이 지나면서 하나씩 따서 맛을 본다. 다들 “우리 대추 맛과 별로 다르지 않다”며 입맛을 다신다.
관음산~태산까지 2박3일 종주도 가능
가파른 등산로는 계속 이어진다. 모자 같은 능선 위로 올라가는 급경사는 사람들의 호흡을 더욱 거칠게 했다.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할 정도가 됐다.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어느 정도 올라서자 고사리 이파리 비슷한 관목들이 우거져 있다. 이것도 군락을 이뤄 햇빛을 가려준다. 이 숲을 벗어나자 사방이 확 펼쳐진다. 태산에서 뻗어 나온 능선은 영암산과 관음산 자락으로 이어져, 마치 하나의 요새 같이 모자를 수십 개 벗어놓은 듯 오르내리며 병풍을 치고 있다. 정말 아무리 둘러봐도 천연 요새와 꼭 닮았다. 그 요새를 활용이나 한 듯 맞은편에는 요새의 한쪽 부분을 성벽으로 둘러싼 군부대가 있다.
능선 위에는 펼쳐진 초원 평원지대엔 서양측백나무가 마치 누군가가 심은 듯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다.
벗어놓은 모자 같은 능선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랜드캐넌의 모습을 축소해서 옮겨 놓은 듯하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깎아지른 듯한 주상절리, 그 위로 모자 윗부분 같은 널찍한 봉우리, 그리고 그런 봉우리와 주상절리들이 연이어 만든 절경은 예사롭지 않은 장관을 뽐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중국태산트레킹 황동호 사장은 “관음산은 모두 12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며 “1봉은 너무 위험해서 옆으로 빠져서 가고, 2봉부터 11봉까지 모자 위로 올라가 능선을 탄다”고 말했다. 마지막 12봉도 그냥 내려간다.
산사모 회원들이 올라온 관음봉들을 차례로 뒤돌아보고 있다.
능선 위로 올라서자 앞뒤로 정말 모자 같이 생긴 봉우리가 길게 늘어서 있다. 한쪽은 관음봉으로 이어져 있고, 북쪽엔 영암산 능선으로 뻗어 있다. 봉우리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수직벽 사이로 난 길을 찾아 아슬아슬하게 올라가야 한다. 위로 쳐다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관음 2봉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북한산의 칼바위보다 훨씬 더 뾰쪽하고 길다. 양쪽으로는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쳐다만 봐도 아찔하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나야 한다. 가장 길게 늘어선 봉우리를 오금 저리는 다리와 발을 한 발자국씩 옮겼다.
아슬아슬한 릿지코스로 내려올 때는 때때로 밧줄을 잡고 암벽 탈 때와 같이 내려오기도 한다.
그 좁은 칼바위 능선에서도 대추나무들은 여기저기 자라고 있다. 신기한 자연의 모습이다. 아마 새들이 산 사면에서 자라는 대추 열매를 먹고 봉우리에 배설한 결과, 그 씨들이 자라서 다시 열매를 맺고 있는 듯했다. 도저히 사람이 심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봉우리를 오르내렸다. 오를 때는 그나마 아슬아슬했지만 위를 쳐다보면서 손에 잡을 것을 잡고 올라가니, 그나마 겁이 좀 덜했다. 그러나 수직벽 봉우리를 내려갈 때는 한 발자국을 옮기기조차 쉽지 않았다.
정말 중절모 같이 생긴 관음봉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황동호 사장은 이를 대비, 암벽 로프를 준비해와 한 사람씩 묶어 아래로 내려 보냈다. 올라가는 시간보다 내려가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마침 산사모 회원 중에 대학산악부 출신이 한 명 있어 더욱 능숙한 솜씨로 하산을 도왔다.
봉우리 하나를 내려올 때마다 아찔했지만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찔함과 스릴감, 전혀 상반되는 듯한 단어지만 똑 같은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오히려 나중에는 조금 즐기는 분위기로 변했다. 대학산악부 출신인 산사모 회원은 “중국의 웬만한 산들은 한국의 산 분위기와 비슷한데, 관음산은 독특한 구조에 다양한 길을 만끽할 수 있어 매우 감동적인 산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회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처음엔 초조해 하더니 갈수록 시끌벅적해지며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봉우리 위에는 초원지대 온 듯 평원 펼쳐져
관음 7봉쯤에 이르러, 올라선 능선은 완전히 어느 초원지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넓은 평원이 펼쳐졌다. 그 평원 위에는 마치 누군가 심은 듯 서양측백나무가 대형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감동이 절로 다가왔다. 짜릿한 스릴을 만끽하며 로프를 잡고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능선 위로는 드넓은 평원에서 자라는 서양측백나무가 있고, 그 사이로 걷고 있노라면 냉온탕을 오가며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보는 듯하게 했다. 산수화를 감상하다 정밀화에 빠지게 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 뾰쪽한 능선 위에 이렇게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질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줌마 회원들은 처음엔 조금 긴장하는 듯 하더니 이내 릿지조차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다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코스여서 정말 마음에 든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황 사장은 한 마디 덧붙였다. “관음산에서는 사계절 내내 대추를 맛볼 수 있고, 가을이면 잘 익은 홍시를 등산하면서 맛볼 수 있습니다”고.
북한산의 칼바위 능선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능선길 위에서 산사모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정상 바위 위에 간혹 커다란 구멍 같은 홈들이 눈에 띄었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흔적이 수천 년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일제시대 중국 저항군이 요새로 활용하면서 사용한 흔적이 아닌가 싶었다. 봉우리마다 한두 개씩은 보였다.
이젠 봉우리가 몇 개 남지 않았다. 마지막 봉우리가 직인 같이 오뚝하게 솟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릿지와 능선 초원을 거쳐 관음 11봉 막바지에 다다랐다. 릿지 코스와 우회 코스, 두 개가 있었지만 몇 사람 빼고는 전부 아슬아슬한 릿지코스를 선택해 올라갔다. 암벽 위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큼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중국태산트레킹 황동호 사장이 회원들을 모두 밧줄을 내려보내고 자신은 밧줄을 수거하면서 내려오고 있다.
그 순간 갑자기 바위가 떨어지며 누군가 “악!”하고 외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일순 ‘누가 다쳤나’ 싶어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산사모 회원 중 한 명이 릿지로 내려오면서 미끄러졌는데, 다행히 가랭이 사이에 잘려진 나무밑동이 끼어 멈췄다. 하지만 가랑이 앞뒤를 잡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고통이었다. 만져줄 수도 없는 부위라 그냥 쳐다볼 뿐이었다.
마지막 관음 12봉이 눈앞에 있다. “올라갈 사람은 올라갔다 오고, 하산길은 그 앞에서 북동쪽으로 틀어서 갑니다”라고 황사장이 안내했다. 산사모의 아줌마 회원들은 “여기까지 왔는데, 올라갔다 와야지”하면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릿지가 두려운 사람은 이내 방향을 틀어 하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산길도 애초 올라온 길만큼 가파르다. 600m 남짓 되는 산에 모자 같은 능선 위로 올라서고 내려가려면 가파른 산사면은 피할 수 없었다.
관음 2봉에서 각 봉우리를 거쳐 12봉 바로 앞을 지나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총 14.5㎞, 즉 15㎞가 채 안되는 거리지만 등산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 관음산이었다. 가파른 산길로 치고 오른 뒤 모자 위에 형성된 초원 같은 능선을 걷고, 이어 짜릿한 릿지로 오르내리는 코스는 그리 길지는 않지만 등산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서쪽 — 서악화산(西岳華山, 산시 성)
서악 화산(西岳华山) 에서 비교적 유명한 고적들로는 옥천원(玉泉院)과 진무궁(眞武宮), 금천궁(金天宮/백제사) 등이 있다. 섬서성은 유명한 중국의 5악중 하나인 서악 화산(華山)이 위치한 곳이다. 중국의 저명한 5대 명산 (동악 태산, 북악 항산, 남악 형산, 서악 화산, 중악 숭산) 중의 하나인 서악 화산 (西岳华山) 은 산세가 가파르고 험한 산으로 이름이 나있으며, 해발 2154.9 메터이고 중국 사안시 (陕西) 성 시안시 (西安市) 에서 120 km 거리이다. 화산에서 북쪽으로 7km떨어져 있는 서악묘(西岳廟)는 옛날 서악화산(西岳華山)의 신에게 제사지내던 사당이다. 서악묘라는 사찰이였다. 기원전 134년 2100년이 넘은 목조건물이 원형그대로 일부 남아있었다. 서악묘는 중국 화산에 관련된 신화속 신들을 모셔두고 중국에 왕들이 제를 올렸던 사찰이다.
화산은 중원오악(中原五嶽)의 하나이고 그 중 서악(西嶽)에 해당되며 진령 산맥(秦嶺山脈)의 북쪽지맥으로서 동서(東西)로 달린다. 이 화산의 서쪽에는 소화산(小華山)이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여 태화산(太華山)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옛 사람들은 또한 오악을 오경(五經)에 비유하여 화산을 춘추(春秋)라고 부르기도 했다. 산손정(山蓀亭), 도림평(桃林坪), 희이갑(希夷匣), 사몽평(莎夢萍), 회심석(回心石), 선인봉(仙人峰), 낙안봉(落雁峰), 연화봉(蓮花峰) 등이 있다. 연화궁의 정상에 무림의 정통일파(正統一派)인 화산파의 근원지 상궁(上宮)과 옥녀지(玉女池)라는 한담(寒潭)이 있다.
남쪽 — 남악형산(南岳衡山, 후난 성)
형산(衡山)은 중국 오악 중 남악(南岳)이며 준엄한 산세와 기이한 산봉 72봉으로 인해 오악 중 가장 빼어난 산으로 인정된다. 또한 역대로 많은 불교와 도교신자들이 형산에 유명한 절과 암자를 지어 형산은 장수의 산으로도 불리운다. 남악 형산의 수려함은 푸르지 않은 산이 없고 나무 없는 산이 없다는 말로 형용할수 있다. 저 멀리 뻗은 산발들에 숲이 빼곡해 일년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하는데 다양한 소나무와 삼나무, 박달나무, 녹나무, 단풍나무, 등나무 등이 수목의 낙원을 만든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남악 형산에는 1700여종의 수목이 있고 그 중 대부분은 귀중한 나무이다. 복엄사(福嚴寺)의 은행은 육조(六朝)시대의 선사(禪師)로부터 수계(受戒)를 받은 나무로 14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그밖에 복엄사 장경전(藏經殿)뒷쪽의 백목련은 5백년, 반산정(半山亭)의 소나무는 4백년의 수령을 자랑하며 상봉사(上封寺)뒤로 끝간데 없이 펼쳐진 원시림에는 세월에 등이 굽은 노인과 같은 고목들이 푸른 이끼를 뒤집어 쓰고 줄지어 있다
남악 형산의 수려함은 절묘한 특징을 자랑한다. 형산에는 축융봉(祝融峰)의 아아함과 장경전의 수려함, 방광사(方廣寺)의 심오함, 마경대(磨鏡台)의 아늑함, 수렴동(水簾洞)의 기이함, 대우비(大禹碑)의 웅장함, 회선교(會仙橋)의 험준함을 망라해 남악팔절(南岳八絶)이 인기이다.
형산에서는 축융봉과 천주(天柱)봉, 부용(芙蓉)봉, 자개(紫蓋)봉, 석품(石稟)봉 다섯 산봉이 가장 유명하다. 전설에 의하면 삼황(三皇)의 하나인 축용이 이 곳에 살면서 음악을 즐기다가 작고한 뒤에도 이 곳에 묻혔다고 한다.
형산 기슭을 흐르는 상수(湘水)의 물기가 바람의 힘으로 산발을 타고 솟아 산봉사이에 자욱한 운무를 만들어 더욱 비경이다. 축융봉에 올라 저 산아래를 내려다 보면 북쪽으로는 망망한 동정호(洞庭湖)가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뭇 산봉이 발아래 줄지어 있고 서쪽으로는 하얀 설산이 보일듯 말듯 하다. 수려한 산속 깊은 골에는 절도 많은데 방광사(方廣寺)가 최고로 아늑하고 고요해 "방광사를 보지 않으면 깊음의 뜻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회선교(會仙橋)에 올라서면 주변에 기화이초가 만발하고 금빛이 찬란한 곳에 푸르름이 설레어 눈을 어지럽힌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불교와 도교가 함께 하는 명산인 형산에서는 종교문화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200여곳의 절과 암자, 사당, 도관 중에서 남악대묘(南岳大廟)의 규모가 가장 커서 9800평방미터의 부지로 강남 최대의 고건물군락으로 인정된다. 베이징(北京, Beijing)의 자금성(紫禁城)을 모방해 지은 남악대전에는 동쪽에 자리잡은 8개의 도관과 대칭되게 서쪽에 자리잡은 8개의 절이 불교와 도교의 평등함을 보여준다.
그밖에도 형산에 터를 잡은 광류사(廣瀏寺), 상남사(湘南寺), 단하사(丹霞寺), 철불사(鐵佛寺), 방광사를 비롯한 절과 전법원(傳法院), 황정관(黃庭館) 등 암자는 모두 명(明)조 전에 신축한 건물로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먼 옛날부터 명산으로 인정된 형산은 베이징-광주(廣州, Guangzhou)철도가 경유해 교통이 편리하고 정상까지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유람이 용이하다. 또한 해마다 음력으로 7월 초하루부터 열닷새까지 2주동안 형산절간장이 개최되어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북쪽 — 북악항산(北岳恒山, 산시 성)
항산 또는 헝산 산(중국어: 恒山, 병음: Héng Shān)은 오악 중의 하나로, 북악이라고도 하며 그 높이가 최고봉이다. 산시 성 훈위안 현 남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산맥은 150여 km 이어져 있다. 주봉인 천봉령(天峰岺)은 해발 2017m 로 구름을 뚫고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은 하늘의 정상에 우뚝 서있는 느낌을 준다. 항산은 그 형세가 험악하여 예로부터 군사상 전략적 요지 였다. 북송의 명장이었던 양계업(楊繼業)은 일찍이 이곳에 군대를 집중 배치하여 암반 위에 보루와 진지를 구축해 놓고 잔도를 만들어 지금까지 그 유적이 남아있다.
북악 항산는 중국의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산인 오악(五岳)중의 하나다. 오악을 보면 이 세상의 모든산을 다 본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과거 황제들은 동서남북과 중앙 지역별로 다섯 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선정해 그 산에 올라 제사를 지냈는데 산서(山西, Shanxi)성에 위치한 해발 2,017m의 항산(恒山)이 북악으로 선정되었다.
항산에는 예로부터 18경이 있었고 최고의 험준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북악으로 선정되었으며 그에 앞서 진(秦)조에는 열두산 중 두번째 명산으로 꼽혔다. 기나긴 세월속에 각 조대의 황제들이 모두 항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보고 항산에 올랐으며 많은 문인들도 항산을 찾아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오악 중 최고 해발의 항산에는 많은 도교(道敎)의 암자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중국 민간에서 전해지는 여덟 신선의 한 사람인 장과로(張果老)가 바로 이 항산에서 득도했다고 한다.
항산에는 불교사찰도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절이 아찔한 절벽중앙에 세워진 현공사(懸空寺)이다. 이름처럼 공중에 매달린듯한 이 절은 기이함과 교묘함, 험준함으로 중국의 고건물에서 당연히 첫 자리를 차지한다. 1400여년전에 세워진 현공사는 아찔한 절벽중앙의 조금 튀어나온 곳에 지은 건물로 지상에서 30m 거리에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절벽의 중앙에 채색의 무지개가 걸린 듯 매달려 있는 듯한 감을 준다.
항산에는 명(明)조때에 세워진 암자 북악묘(北岳廟)가 또 장관이다. 뒤에 항산 정상 천봉령(天峰嶺)을 업은 북악묘의 앞쪽 뜰에는 항산의 전경이 새겨져 있고 대전(大殿)에는 북악진군(眞君)상이 모셔져 있다. 경치 수려한 항산은 산발이 서남쪽으로부터 시작해 동북향으로 달리는 듯하다. 해발 2,000m이상의 산봉들이 어깨에 어깨를 겯고 첩첩해 웅장하다. 그래서 한 문인은 "태산(泰山)은 앉은 듯, 화산(華山)은 서 있는 듯, 숭산(嵩山)은 누워있는 듯, 항산은 걷는 듯 하다"고 했다.
항산에 오르면 푸른 소나무와 암자, 절, 기화이초와 기이하고 아늑한 동굴들이 항산 18경을 이루는데 마치 열여덟폭의 아름다운 산수화가 눈앞에 펼쳐진 듯 하다. 항산의 18경에는 날아온 석굴인 비석굴(飛石窟), 선인의 산마루인 과로령(果老嶺), 달고 쓴 맛의 우물, 아찔한 벼랑에 들려오는 새소리, 협곡에 내리는 보슬비, 구름속에 보이는 봄 등 명소들이 망라된다. 항산에는 특히 소나무와 구름이 아름다운데 항산의 구름은 무궁한 변화를 보인다. 산 허리에 자리잡은 출운동(出云洞)은 맑은 날이면 조용하다가 비만 내리면 동굴에서 흰 구름이 뭉게뭉게 나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중앙 — 중악숭산(中岳嵩山, 허난 성)
숭산 또는 쑹산 산(중국어: 嵩山, 병음: Sōng Shān)은 중국 오악(五岳) 중 중악(中岳)이다.
옛 이름은 외방(外方), 숭고(嵩高), 숭고(崇高)라 하여 허난 성(河南省) 중부에 위치하여 푸유 산계(伏牛山系)에 속하며, 행정구역으로는 덩펑 시(登封市) 서북면(西北面)에 위치한다. 총면적 450㎢로 다시 서쪽의 소실산(少室山)과 동쪽의 태실산(太室山)으로 구분되며, 모두 72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태실산은 해발 1491.7m의 준겁봉(峻极峰), 소실산은 해발 1,512m의 연천봉이 주봉이다. 해발 최저 350m에 최고 높이는 1,512m로 연천봉이 더 높지만 주봉(主峰)은 태실산에 있는 높이 1491.7m의 준겁봉이다. 북쪽으로는 황하(黃河)와 낙수(洛水)를 끼고 남쪽으로는 영수(潁水)와 기산(箕山)에 닿으며, 동쪽으로는 중국 다섯 왕조의 도읍지였던 변량(汴梁), 서쪽으로는 아홉 왕조의 도읍지였던 뤄양(洛陽)이 있어, "판락양경, 기내명산(汴洛兩京, 畿內名山)"라 불린다.
1982년 중국 정부에 의해 처음으로 국가급 풍경명승구(国家级风景名胜区)로 지정되었다. 2004년 2월 13일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世界地质公园)이 되었으며, 2007년 5월 8일에는 다시 숭산소림경구(嵩山少林景区)가 중국의 국가여유국(国家旅游局)으로부터 국가5A급 여유경구(旅游景区)로 지정되었다. 숭산은 중국 도교(道教)의 성지이자 소림사(小林寺)가 위치한 불교(佛教)의 발상지이며, 또한 중국 신유교(新儒教)의 탄생지이다.
숭산 안에는 태고대(太古代)부터 원고대(原古代), 고생대부터 신생대에 이르기까지 다섯 시대의 지층을 한곳에서 완벽하게, 몹시 선명하게 보존된 상태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천연지질박물관과도 같은 곳으로 유명하다. 주봉인 준겁봉 지역은 대부분이 석영암으로 되어 있으며, 모든 봉우리가 표고 400m 이상으로 솟아나 있다. 중국 지질학계에서는 이를 오대동당이라고 부르고, 23억 년 전의 지각변화를 숭양 운동, 8억 년 전의 지각 변화는 중악 운동, 5~6억 년 전의 지각 변화의 흔적은 소림 운동이라고 명명하는 등 숭산의 중국 역사속 관련 명칭을 붙이고 있다.
산악신앙의 대상으로 고대로부터 30여 명의 황제와 150여 명의 저명한 문인들이 몸소 숭산에 올랐으며, 또한 신선(神仙)이 모여 산다는 신령한 땅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명승고적이 많이 퍼져 있으며, 오악(五嶽)의 하나로 꼽힌다. 《시경》(詩經)에는 숭산을 가리켜 노래한 "嵩高惟岳,峻极于天"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크게 동쪽의 태실산(太室山)과 서쪽의 소실산(小室山)으로 구분되는데, 이 이름은 황하의 치수(治水)를 성공시켰다는 고대의 전설적인 왕 우(禹)가 두 명의 부인을 거느렸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요순 시대에는 방산(方山), 하(夏), 상(商) 왕조 시대에는 숭고, 서주 때는 악산(岳山)으로 불렸다. 기원전 770년 주 평왕(平王)이 낙읍(뤄양)으로 옮긴 뒤, 이 산이 가운데 있으며 왼쪽에 대(岱), 오른쪽에 화(華)가 있어 천지의 중심이 된다 중악 숭산(中嶽嵩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가 처음으로 이곳에 중악묘(中嶽廟)를 지었는데, 이는 중국 고대 건축군의 하나이다. 한 무제가 태실산에 봉선(封禪)을 위해 올랐을 때 산에서 만세를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 태실산을 만세산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훗날 《시경》에 있는 숭산을 노래한 구절에 따라 숭산이라 고쳤다. 무측천이 숭산에서 봉선을 하면서 중악을 신악(神嶽)이라 부르기도 했다. 북송 이후 중악 숭산이라는 이름으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태실산(太室山)의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 숭양서원(嵩阳书院)은 중국 고대 4대 서원의 하나로 꼽히며, 법왕사(法王寺)는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진 사원 건축의 하나다. 숭산은 72개에 달하는 봉우리마다 하나씩 절이 있는데, 북위의 효문제가 495년에 천축의 승려 발타를 위해 지어주었다는 절로써 소림무술로 유명한 소림사도 그 중 하나이며, 여러 고승들이 이곳을 거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