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요한복음 16 : 16 – 2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고 마지막 밤을 지내시며 많은 말씀을 하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20)고 말씀하시고 기도하시고 잡혀가서 죽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현세적인 현세 근심과 기쁨, 그리고 내세적인 영원한 기쁨으로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으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된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게 되시면 제자들은 슬퍼하고 근심하게 될 것이지만 조금 있으면 살아 돌아오심으로 기뻐하게 될 현세적인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져 아버지께로 가시면 제자들은 근심하게 되지만 재림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기뻐하게 될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성만찬에 참여한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실 때 가룟 유다는 이미 그 속에 사탄이 들어 갔음으로 예수님께서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시며 주시는 떡 조각을 받고 곧 나가 대제사장에게 돈을 받고 예수를 넘겨주기로 약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 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13:27,28)
그리고 ‘너희’는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오늘에 이르는 모든 성도입니다. 오늘의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셨음에도 사탄의 종이 되는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심이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영원한 기쁨이 있는 내세가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는 영원한 기쁨의 내세가 있기 때문에 현세에서는 근심하나 영원히 기뻐할 내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16)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하신 말씀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19)
제자들이 서로 무슨 말씀인지를 묻고자 하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20)고 말씀하셨습니다.
날이 새면 예수님께서 잡혀 끌려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됨으로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겠고’(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는 큰 슬픔이 되고 근심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는 큰 슬픔이 될 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사람까지도 크게 슬퍼하고 흩어질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근심이 도리어 기뻐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슬퍼하고 근심하는 것이 기쁨이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로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슬퍼하며 근심하며 슬퍼하고 애통하는 고통이 되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기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22)란 말씀은 죽어 장사 된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다시 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심으로 제자들은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셨던 것처럼 우리도 죽어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도 슬픔과 애통으로 근심하게 되지만, 우리도 죽음에서 살아나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7)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가심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며. 장차 우리도 부활해서 예수님처럼 그 나라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셔서 주의 백성을 위해서 세 가지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십니다.(14:2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
두 번 째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서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도록 하십니다.(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세 번 째는 예수님 계시는 곳에 ‘우리와 함께 항상 있게 하기 위해서’(14:3 “내가 다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여 함이라’(16:1)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제자들이 실족하며 근심하게 된다는 것을 아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셔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 강림하심으로 제자들은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었습니다. 근심하며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담대하게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행2:14)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 충만하여 날마다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행2:46,47) 모든 성도가 기뻐하였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는 성령이 함께하시고 도와주심으로 기쁨으로 어떤 고난도 이기며 믿음으로 살고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기쁨은 예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현세적인 기쁨입니다.
다음으로 내세적인 미래의 영원한 기쁨을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 충만한 현세적인 기쁨이지만 나아가서 미래적인 내세의 영원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 날’(23)은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은 세상 끝이 되는 날이며 최후의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에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대심판주가 되셔서 모든 민족을 모을 것이며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나누듯이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여 나누시는 최후의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의인들에게 의인들에게는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로 영접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성도는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서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시면 사탄 마귀들이 그들을 모조리 지옥불 속으로 던질 것입니다.
그들은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지옥 불 속으로 던져져 영원히 고통하며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마25:31-46)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에게는 현세에서 성령 충만한 기쁨으로 기뻐하며 세상을 이기며 살다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기뻐하며 영생하게 될 것입니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게 되는 기쁨을 바라보고 해산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처럼 우리도 영원한 내세의 기쁨을 믿고 바라보기 때문에 현세의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근심을 세상 근심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세상 근심은 죽음을 가져오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고후7:10)
‘근심’은 마음과 영혼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근심하는 제자들의 근심은 ‘곡하고 애통’(20)입니다. 근심은 슬픔이요 괴로운 고통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크고 작은 근심을 합니다. 근심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합니다.(잠15:13)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잠17:22) ‘밤에도 쉬지 못하고 일평생 근심하는 사람은 헛되도다’(전2:23)고 지혜의 왕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근심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돌아갔습니다.(막10:22) 많은 사람이 근심하며 불행하게 살다가 죽어서도 내세에서 기쁨이 없는 영원한 지옥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14:1)고 말씀하셨습니다. ‘근심하지 말라’는 근심은 해가 되는 근심이지만, 도리어 기쁨이 되는 근심도 있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근심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은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하지 않고 기뻐한다’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했습니다.(고후7:8,9)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며 하였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근심이 도리어 깨끗함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고후 7:11)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도리어 기쁨이 되는 근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금은 근심하나’라고 말씀하신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다시 보게 되는 기쁨은 근심이 되는 기쁨이지만, 그 날에 재림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영접을 받고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서 근심 없는 기쁨입니다.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22)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세의 기쁨은 빼앗을 악한 자가 있어서 근심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기쁨을 빼앗을 악한 자가 없기 때문에 영원한 기쁨이 됩니다.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근심이 없는 충만한 기쁨입니다.(24) 빼앗을 자가 없는 충만한 기쁨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진리를 아는 자는 세상 어떤 고난도 견디며 참고 이길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에게 잡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지만,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합니다.(행6:15)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주의 종들이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는 이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었으며, 죽는 것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세상이 주는 근심은 하지 맙시다. 회개하며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합시다.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영원히 삽시다. 아멘!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건강을 가져오고 행복을 안겨 줍니다.
사랑이 꽃피고 행복이 넘치는 웃음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