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무덤을 떠나는 여자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강조된 주제는 ‘두려움’과 ‘기쁨’인데, 이 주제는 이후에도 되풀이됩니다.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급히 가던 여자들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평안하냐?”라는 인사를 받게 됩니다. 이 인사를 그리스 말에서 직역하면 “기뻐하여라!”이며 명사 기쁨(‘카라’)의 동사형(‘카이로’)이 쓰였습니다. 이 동사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드린 인사말에도 쓰인 바 있습니다(“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이어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이 단어도 오늘 복음의 시작(8절)에서 쓰인 명사 두려움(‘포보스’)의 동사 형태가 쓰인 경우입니다. 곧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무덤을 떠난 여자들은, 이제 예수님께 “기뻐하여라.”(9절, 우리말 번역으로는 “평안하냐?”)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는 부활의 시간을 걷게 된 우리에게 두려움과 기쁨은 수없이 다가오는 감정이고, 그렇게 꾸준히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예수님을 만나게 됨을 알려 줍니다.
그런데 복음의 후반부에는 예수님을 만나 “기뻐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인사 말씀을 들은 여자들과 달리 두려워하고 근심에 빠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등장합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인간적 술수, 곧 담합하고 매수하는 것으로 부활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증인들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독서에서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인 대중 앞에서 과감하게 선포합니다. “그분을, 여러분은 ……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두려움 없는 기쁨은 감출 수도 묶어 둘 수도 없는 힘이며 빛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