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 정완영 집사 부음을 듣고
어제 오후 친구가
편안히 평안히 잠들었다고 소식이 왔다.
우리 둘은 몇 시간 차이로 이 땅에 태어났단다.
그는 저녁에,
난 다음 날 새벽에...
지금은 봉황교회 예배당 자리에 우리들의 집이 있었다.
아랫집 윗집에서 형제처럼 자랐다.
어릴 적부터 그는 일을 잘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든지,
들에 가서 풀을 베든지....
늘 어설프게 일하는 내게 우리 아부지는
늘 완영이 하는 만큼하라고 그 친구를 칭찬했다.
그는 노래도 잘해 주일학교에서
자주 앞에 나가 노래했다.
각자 살기 바빠서 무얼 하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다시 만난 건 아마 40대쯤,
그는 서울 어느 교회버스를 운전하고 있었다.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 하나님이 참 좋다'고 했다
교회버스를 운전하면서 저렇게 좋아하다니
당시에는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정년퇴직 후
노후를 보내려고 태안으로 내려갔다.
어느 날 저녁 운동하려고 자전거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천안 단국대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병하러 가서 만난 것이
이 땅에서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그러고는 세월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건강하게 회복이 되지 않아
어제 오후에 하나님이 불러가셨다.
어제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운전하던
예전의 그 교회 식구들이 다수 문상하러 내려갔다.
그중에는 지금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여집사가 있다
그 여집사가 젊었을 때 뇌에 이상이 와서
생사고비를 오고 갈 때
우리 친구가 기도를 많이 해주었다고.
믿음과 사랑의 빚이 많아 <아부지>라 불렀다.
그 여집사를 통해
친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는 봉황교회 유년주일학교 다닐 때
배운 대로 순수한 믿음으로 살고 있었다.
보통 생각하는 단순 운전기사가 아니라
그렇게 깊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주일에는 외식 등으로 돈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또 삼성전자에 다니던 아들이 주일에 출근한다고
퇴사시켜 개인사업을 하게 했다고 한다.
요즘도 이런 믿음이 있는가 싶었다.
세상적으로는 결코 여유롭게 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순결한 믿음으로 살다가 갔으니
지금 하나님의 품 안에서 얼마나 기뻐하며
즐거운 찬송을 부르고 있을지 그려본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 받을 때
찬송하며 감사하며 이사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첫댓글 세상에 그런 벗 있음도 축복이라고 여깁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럼습니다
귀한 믿음의 친구였지요
하늘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사는 친구였습니다
믿음이 좋은 친구가 있어 위로가 되었겠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친구
남은 삶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