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제1독서
<그들의 이마에는 그리스도와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4,1-3.4ㄴ-5
나 요한이 1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2 그리고 큰 물 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3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4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
5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봉헌에 대해 들려줍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루카 21,3)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습니다. 당시에는 통 속에 돈이 떨어지는 소리로 봉헌의 수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앞서 부자들이 냈던 소리와 그 과부의 소리는 사뭇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의 봉헌을 크게 치하하십니다.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4)
그녀는 가진 것이 별로 없이 빈곤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데다, 과부였으니 약자 중의 약자인 셈입니다. 생활비를 주님께 다 드릴 수 있는 건, 그녀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의탁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봉헌을 다른 부자들의 그것보다 더 귀하게 보시는 이유는, 예물을 받으시는 주님이 숫자가 아니라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 과부는 전 재산인 동전 두 닢과 함께, 주님께 자신의 생사를 던진 것입니다. 자기 살림을 주님 손에 오롯이 되돌려 드린 것이지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고, 저도 당신의 것이니 죽이든 살리든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저를 당신께 맡겨 드립니다.' 하는 온전한 의탁과 신뢰의 마음이 읽힙니다. 이 온전한 의탁을 보시고 하느님은 가만히 계실 수는 없으시지요. 그분께서 친히 나서실 겁니다.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어린양을 모시고 선 십사만 사천 명의 거룩한 영혼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묵시 14,1)
그들은 주님만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오매불망 하느님과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그래서 정결한 이들이지요. 그들은 마음에 다른 우상을 품지 않습니다. 모든 사물과 사람에 앞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묵시 14,3)
그들은 언제나 주님을 찬양하는 이들입니다. 찬양이 그들이 일상으로 올려 드리는 목소리이고, 감사와 찬미는 그 내용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묵시 14,4)
그들은 주님만을 따릅니다. 세속의 화려한 명예와 재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그곳이 어디이든 주님이 가시는 것이면 어디라도 그분 뒤를 따라 걸어온 이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묵시 14,5)
그들은 말씀을 품고 진리를 말하는 이들입니다. 말씀이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배하는 유일한 원리입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말씀은 그들 입을 맴돌고 적시다가 세상으로 흘러나와 어둠과 더러움, 탐욕과 증오를 정화합니다. 진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듭니다.
이들이 세상에서 잘나고 부유한 권세가들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오늘 복음 속 과부처럼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친 이들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주님과 사이에 지상 삶에서부터 차곡차곡 사연과 추억을 쌓아온 이들일 것이고, 세상 풍파에 휘청이다 쓰러지면서도 세상 힘이 아닌, 그분 가슴에 기대어 신뢰를 쏟아내던 이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묵시 14,5)
한갓 피조물인 사람에게 흠이 없을 수 없지만, 이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들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보시고 그들의 영혼을 사랑의 불로 말끔히 태워 흠 없게 해 주셨습니다. 삶의 파도가 묻힌 때와 오염과 얼룩은 어린양의 피와 뜨거운 사랑의 불로 희어집니다. 온전히 바친 이는 온전히 거룩합니다.
오늘 복음 속 과부에게서 예수님의 온전한 봉헌을 마주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종의 모습을 취하심으로써 가난하게 되셨고, 사형수가 되어 생명마저 아버지께 올려드리셨으니까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아버지 향한 온전한 의탁과 신뢰가 그 어느 누구의 예물보다 귀한 건 믿음과 사랑으로, 전부를, 온전히 다 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육적 영적 자원은 다 다릅니다. 재산이나 지식, 신분과 권력의 정도도 다 다르지요. 그러니 우리가 주님께 바치는 영육의 예물을 외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만, 더 드릴 수 없는 안타까움에 동동거리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니 위로가 됩니다. 주님은 수량이 아니라 마음을 보시니까요. 순수한 의탁과 신뢰로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사랑을 그분은 아십니다.
부족한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며 주님께 한걸음 더 나아가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이어가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첫댓글 주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은 수량이 아니라 마음을 보시니까요.
순수한 의탁과 신뢰로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사랑을 그분은 아십니다.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