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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물상과 천불동계곡 주변
드맑은 물 쏟아내려 흐르는
병풍처럼 깎아지른 바위 절벽
그 아득한 절벽 바위 꼭대기에
늘어서 있는 기기 묘묘한 바위 군상들.
기도하는 예수님
염불하는 스님
어흥! 어흥! 호랑이
산등성이에 나란히 가네.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온갖 짐승 형상들이 모여서
모두가 정답게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네.
물소리 노래삼아
바람소리 친구삼아
그 높은 능선 위를
쉬임없이 걸어가네.
―― 구경분(1950 ~ ), 「천불동계곡」
▶ 산행일시 : 2022년 10월 8일(토), 무박산행, 맑음
▶ 산행코스 : 한계령,한계삼거리,끝청봉,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대피소,소청봉,희운각대피소,공룡능선,마등령,
비선대,소공원주차장,설악동 C지구 상가
▶ 산행시간 : 13시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23km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23 : 50 - 잠실역 9번 출구, 버스 출발
02 : 35 - 한계령
03 : 00 - 한계령 출입구 개방, 산행시작
03 : 40 - 1,306.3m봉
04 : 13 - 한계삼거리(1,353m)
05 : 10 - 1,450m봉
06 : 15 - 끝청봉(1,609.6m)
07 : 44 - 중청대피소
07 : 21 - 대청봉(大靑峰, △1,708.1m)
08 : 03 - 소청봉(1,581.0m)
08 : 40 - 희운각대피소
09 : 13 - 신선대(1,233.1m)
11 : 00 - 1,275m봉
12 : 15 - 나한봉 직전 1,233m봉, 점심( ~ 12 : 45)
13 : 16 - 마등령
14 : 20 - 마등봉 능선
15 : 15 - 비선대
16 : 00 - 설악동 소공원주차장, 산행종료(16 : 15 - 시내버스 탐)
16 : 30 - 설악동 C지구 상가(17 : 00 - 버스출발)
20 : 37 - 강변역
2. 범봉
3. 공룡능선 1,275m봉
▶ 대청봉(大靑峰, △1,708.1m)
바야흐로 단풍시즌이다. 너도나도 설악산을 가고 설악산 가는 산악회 버스마다 만석이다. 오밤중인 한계령은
등산객들로 북새통이다. 철문은 3시 정각에 연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 철문이 열리자 봇물 터지듯 한
다. 108계단을 인파에 떼밀려 오른다. 언뜻 우러르는 하늘은 우중충하다. 운무에 가렸는지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다. 열사흘 둥근달이 서쪽 하늘 먹구름 사이로 밝은 얼굴을 내밀고 오늘은 쾌청할 것이라 속삭인다. 설악루에
올라서는 한 줄로 길게 줄 서서 간다.
간밤에 이곳에는 많은 비가 내렸나 보다. 골마다 물소리가 요란하다. 땅은 질척이고(맨땅 흙 밟기가 드물지만),
돌도 젖었고, 낙엽도 젖었고, 풀숲도 젖었다. 오늘 산행준비가 부실했음을 깨닫는다. 옷가지는 좀 두툼한 것으
로 입어서 추위를 느끼지 않는데, 손이 되게 시리다. 목장갑은 물기 흥건한 데크계단 난간을 잡자마자 젖어버린
다. 목장갑을 벗는 게 낫다. 보온 털장갑을 가져오던지 핫팩을 가져왔어야 했다. 시린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녹
이느라 종종걸음이 엇박자다.
서북주릉 한계삼거리 가는 길. 한계령에서 1km 거리인 1,306.3m봉까지가 매우 가파른 돌길 오르막이다. 날이
훤할 때는 이 근방에서 바라보는 귀때기청봉과 가리봉, 점봉산, 망대암산 등이 가경인데 아직 캄캄하니 전망바
위를 들를 필요 없이 곧장 내린다. 바위 슬랩이 뭇 발길에 닳기도 했지만 비에 젖어 미끄럽다. 안개지대에 들어
섰다. 헤드램프가 돌길 뚫느라 버거워한다. 헤드램프 불빛이 닿은 데마다 길로 보여 엉뚱한 너덜을 더듬기도
한다.
산행 시작한 지 50분쯤이 지나고 사람들 긴 줄이 많이 흐트러졌다. 삼삼오오 몰려서 간다. 헤드램프가 사람들
마다 여러 가지다. 가로등(?)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 곁불로 걷기도 한다. 지능선 마루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멀리 앞뒤로 일렁이는 불빛이 장관이다. 마치 긴 띠를 이룬 거대한 산불처럼 보인다. 오르막 가쁜 숨
을 내리막에서 고르곤 한다. 또한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볼 일이 없으니 막 간다. 가파른 오르막을 세 차례
극복하면 서북주릉 ┳자 갈림길 한계삼거리다.
오늘은 한계삼거리까지(2.3km) 1시간 13분이 걸렸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체로 1시간 10분 안팎인데,
어두운 밤중에 미끄러운 돌길과 줄 이은 사람들을 감안할 때 양호한 성적이다. 싸늘한 산기운은 땀 흘릴 틈을
주지 않는다. 곧장 끝청봉을 향한다. 암릉 같은 너덜 길이다. 짙은 안개 속이라 걸음걸음이 무척 조심스럽다.
여기 지날 때면 설악산이 이름 그대로 겨울 산인 줄 안다. 겨울이면 너덜 깊은 틈을 눈으로 메워 매끈하게 포장
하니 얼마나 내닫기 좋던가.
야광 등이 길 안내한다. 귀때기청봉이나 황철봉 너덜지대에는 야광 폴이 길 안내하는데 여기는 야광 등이다.
야광 등이 등대다. 능선에 서면 찬바람이 불어 안개를 걷어낸다. 서리인가. 헤드램프 비추는 주목 잎사귀가
하얗게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 곳곳의 ‘추락주의’ 표지판은 경사 급한 슬랩이거나 굵은 너덜지대라는 안내
다. 날 훤할 때는 암봉에 올라 주변 경치를 살피곤 했지만 밤중이라 잘난 등로를 따를 수밖에 없다. 긴 바윗길
더듬어 올라 1,450m봉이다. 여기서 지난여름 너덜지대를 내려 석고당골을 갔다.
이 다음 이정표 1,472m봉은 오른쪽이 독주폭포로 간다. 가만히 귀 기우리면 그 우렁찬 물소리가 들린다. 어둠
속 사납던 등로는 △1,460.7m봉을 넘으면 부드러워진다. 어느덧 헤드램프 불빛이 사위고 날이 밝아온다. 잰걸
음 하는 건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끝청봉 정상이 멀었지만 앞사람들의 탄성소리가 들린다. 전망
트인 바위에 올라 펼쳐지는 가경을 바라보고서다. 끝청봉 뒤가 붉다. 일출인가. 내 걸음이 바빠진다. 가리봉은
운무에 가렸고 그 옆의 주걱봉이 조금 보인다. 영실천은 운해에 잠겼다.
억센 관목 붙들며 산허리 길게 돌아 끝청봉이다. 먼저 대청봉을 감싼 무시무시한 뭉게구름 떼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화산이 폭발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발아래 용아능선이 보인 건 아주 잠깐이다. 고개 돌리면 이미
다른 경치다. 운무로 주변경치가 순식만변한다. 몇 사람이 나더러 사진 찍어달라고 휴대폰을 내민다. 귀찮은 일
이다. 휴대폰 셔터를 누르자면 목장갑을 벗은 맨 손가락이어야 하니 무엇보다 손이 시리다. 이쪽저쪽으로 여러
포즈를 취하며 찍어달라고 주문한다. 이 또한 고역이다.
중청봉 가는 길. 줄 서서 간다. 몇 번이나 대청봉을 오를까 말까 망설인다. 검은 운무에 가리면 오르지 말자고
했다가, 금세 운무가 걷히면 저기에서는 또 다른 비경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오르자고 한다. 중청대피소는
시장터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대개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는 중이다. 나는 끝청봉에서 샌드위치로 아침
을 때웠다. 그때 따끈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대청봉을 향한다. 아침 햇살은 신선대 만물상, 범봉, 울산바위에
쏟아진다. 눈부시다.
데크로드는 살얼음이 살짝 덮었다. 약간 경사진 데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한계령에서
끝청봉까지는 가는 사람들 일색이라 느릴망정 일방통행이었는데,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 가는 길은 오색에서
대청봉을 넘어오는 사람들 일색이라 역방향인 그들을 헤치며 오르려니 발걸음이 여간 더디지 않다. 어렵게
대청봉을 오른다. 사방 운무에 가려 아무 볼 것이 없다. 대청봉 표지석과 함께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 섰다. 볼거리는 사람들이다.
4. 가리봉은 운무에 가렸다. 그 오른쪽은 주걱봉이다.
5. 끝청봉에서 바라본 대청봉 주변
6. 영실천은 운해에 잠겼다
7. 대청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천화대 범봉과 울산바위
8. 만물상과 천불동계곡 주변, 순식만변으로 경치가 변한다.
9. 대청봉, 정상표지석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10. 가리봉은 운무에 가렸고 주걱봉이 살짝 보인다. 오른쪽은 귀때기청봉
11. 만물상(부분)
12. 소청봉에서 희운각대피소로 내리는 길에 바라본 범봉
13. 만물상(부분)
14. 가운데가 죽음의 계곡, 오랜만에 흰 물줄기를 본다. 신선대에서
15. 공룡능선 1,275m봉과 그 주변
▶ 소청봉(1,581.0m), 공룡능선
대청봉에서 더 머무르자 해도 운무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내린다. 살얼음 코팅한 바위들이라 미끄럽다.
떼 지어 내려간다. 추월하려고 섣불리 갓길로 가다가는 넘어지기 십상이다. 운무 걷히면 드러나는 가경에 떼로
환호한다. 중청봉을 오른쪽 산허리 데크계단으로 돌아 넘는다. 뒤돌아보는 대청봉은 먹구름에 가렸다. 소청봉
가는 길은 걸음걸음이 전후좌우 경점이다. 사람들이 밀려 느린 걸음 하지만 줄 벗어나 걸음 멈추고 둘러본다.
소청봉. 왼쪽의 봉정암보다는 오른쪽의 희운각대피소로 가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도 가파르고 울퉁
불퉁한 돌길이라 내리기가 매우 사납다. 많은 부분을 데크계단으로 덮어 좀 낫다. 겨울이면 눈 지치며 신나게
내리는 봅슬레이 코스다. 대부분 경향각지에서 찾아온 산악회 단체등산객들이다. 시종 웃으면서 한담하는 그들
뒤를 느릿느릿 쫓아가자니 내걸음이 아니다. 바짝 붙어 뒤쫓다가 널찍한 데 나오면 추월한다. 그렇게 아무리
추월해도 끝이 없다. 괜히 나만 숨차다.
다리 건너 희운각대피소다. 다리 아래 계곡에는 모처럼 큰물이 흐른다. 대피소 주변에는 물 묻은 손에 깨가
달라붙듯(김주영 작가의 버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어느 한적한 여름날 내가 던져주는 라면이며 밥을
먹던 다람쥐가 생각난다. 저들이 일어나기 전에 어서 가야지 하고 서둔다. 산자락 길게 돌아올라 데크전망대다.
들른다. 대청봉을 내릴 때부터 발로 줌인한 만물상이다. 만물상이 병풍으로 둘렀다. 굳이 구경분 시인의 눈을
빌리지 않아도 기기묘묘한 바위 군상들이다.
무너미고개로 내리고 주저 없이 공룡능선 신선대를 향한다. 딴은 이곳의 단풍이 궁금하기도 하다. 두목(杜牧,
803~852, 당나라 시인)의 「산행(山行)」과 같은 산행이고 싶어서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설익은 단풍이라
영 볼품이 없다. 색조는 바랬고 나뭇잎은 오그라들었다.
遠上寒山石逕斜 멀리 차가운 산 비스듬한 돌길을 오르니
白雲深處有人家 흰 구름 깊은 곳에 사람의 집이 있네
停車坐愛楓林晩 수레 멈추고 앉아 늦가을 단풍 완상하노라니
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잎이 이월 꽃보다 더 붉구나
지계곡 건너고 길고 가파른 바위 슬랩을 핸드레일 붙들고 오르고 산허리 돌아 완만한 슬랩 잠깐 오르면 신선대
다. 대청봉은 구름에 가렸고 공룡능선은 트였다. 침봉의 제국이다. 빛난다. 뭇 준봉을 거느린 1,275m봉과 쌍벽
을 이루는 천화대(天花臺) 범봉은 공룡능선의 꽃이다. 그에 다가간다. 멀리서 바라볼 때 1,275m봉 가는 암릉 길
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이 보이기에 비경이 있어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인 줄로 잘못 알았다.
1,275m봉 가는 길에 교행이 어려운 좁은 바위 턱이 있어 거기를 통과하려고 줄을 선 것이다. 마등령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보다 마등령 쪽에서 무너미고개 쪽으로 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서로 먼저 가려고 한바탕
다투고 나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쌍방이 합의하여 서로 20명씩 통과하기로 하였다. 질서정연하게 가고 온다.
내 수없이 이곳을 왔지만 이렇듯 사람들이 몰린 경우는 처음이다. 그렇지만 차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다. 주변의 침봉들을 자세히 살필 수 있으므로.
마등령을 가기까지 세 번은 더 이런 정체를 겪어야 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1,275m봉 오르기가 도리
어 수월하다. 1,275m봉 고갯마루에도 휴식하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1,275m봉 정상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렇다면 나도 올라야지, 배낭 벗어놓고 냉큼 덤빈다. 비스듬히 난 바위틈과 바위 모서리 움켜쥐고
슬랩을 트래버스 하여 오른다. 내 혼자라면 겁이 나서 오르지 못하겠는데 여럿이 가는 게 용기다. 제법 오래도
록 짜릿한 손맛 본다.
어렵사리 오른 1,275m봉 정상이 변덕스런 날씨로 그만 구름이 휩싸이고 만다. 아무 경치 없다. 빈 눈이다.
나한봉 가는 길이 멀다. 이제는 뒤돌아 가기도 어렵다. 차례 오기를 기다리는 긴 줄이 생면부지인 사람들인데도
동병상련이라 서로 얘기하고 금방 친해진다. 나한봉 직전의 1,233m봉 공터에서 한쪽 구석을 차지하여 점심밥
먹는다. 앞으로는 노란 양재기를 술잔으로 쓰지 않아야겠다. 탁주를 몰래 마신다. 그러니 더 맛있기는 하다.
나한봉을 지나고부터 가는 사람들 일방통행이다. 수시로 지체하지만 줄 서서 간다.
16. 울산바위, 그 뒤 오른쪽은 운봉산
17. 1,275m봉
18. 범봉
19. 범봉
20. 범봉
21. 범봉, 그 오른쪽 뒤는 울산바위
22. 1,275m봉 가는 등로 주변
23. 1,275m봉 가는 등로 주변
24. 1,275m봉, 오른쪽 하단에 줄 선 등산객들이 보인다
25. 1,275m봉 가는 등로 주변
26. 1,275m봉 가는 등로 주변
27-1. 1,275m봉 전경
▶ 비선대, 설악동 소공원주차장
마등령. 어려운 구간은 다 지났다. 설악동 C지구 상가에 17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주어진 산행시간 14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비선대 3.5km, 거기서 소공원 주차장까지가 3.0km다. 줄달음한다. 비선대 가는 길도 가다 서다
를 반복한다. 조금 비켜주시라 양해를 구하고 추월한다. 양해를 하도 자주 구하다 보니(모두 흔쾌히 비켜준다)
입안에 침이 다 마를 지경이다. 마등봉 사면을 돌고 돌아 능선에 이르고 나서 자갈길을 내리 쏟는다.
장군봉 직전 안부에서 오른쪽 가파른 돌길을 내릴 때는 스틱이 휘청하고 무릎은 화끈하다 못해 시큰거린다. 땀
난다. 가파름이 수그러들고 금강굴(0.2km) 갈림길이다. 금강굴은 들르지 않는다. 비선대 0.4km. 물 흐르는 지계
곡 건너고 산자락 돌아내려 비선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비선대 반석에 옥계가 와폭으로 흐른다. 오늘에야
비선대를 비선대라 할만하다. 그런데 비선대는 대체 어디를 말하는지 궁금하다. 대(臺)는 ‘평지보다 높직하게
두드러진 평평한 곳’을 말하니 반석은 아닐 것이다. 최정희(崔貞熙, 1912~1990)가 1964.11.12.자 동아일보에 쓴
「雪嶽紀行」을 보고 나니 문득 그런 궁금증이 더욱 강하게 든다.
“언덕을 넘고 바위를 타고 妙한 돌들을 딛곤하면서 飛仙臺 앞에 이르렀다. 三十名 食口가 앉고도 아직 餘地가
있는 盤石 위에서 머루술을 마시며 혓바닥에 매끄러운 도토리묵을 넘기면서 하늘 위까지 치솟은 飛仙臺를
목을 제끼고 쳐다본다. 과연 神仙이나 날아들 만한 處所이지 우리 人間으로선 근접할 엄두조차 못 내겠다.
현기증이 인다. 盤石 아래로 물이 구름을 안고 씽씽 흘러내리는 탓일까. 거기 곁들여서 비선대가 함께 흘러내리
는 탓일까.”
최정희는 장군봉을 비선대로 본 건 아닐까. 자칭 인간국보 양주동(梁柱東, 1903~1977)은 넓으나 넓은 반석을
비선대로 보고 있다. 그의 「雪嶽山 飛仙臺의 靈境」(매일경제, 1967.7.12.) 일부다.
“가파른 비탈길을 더듬어 올라 대번에 臥仙臺를 지나 이윽고 雪嶽의 중턱 飛仙臺에 올랐것다. 그 넓으나 넓은
盤石에 앉아 冷막걸리를 여러 잔 거푸 들며 산허리로 뭉게뭉게 내려오는 구름장을 悠然히 바라보며 左右에
錦繡 같이 펼쳐진 雌黃 단풍을 흠뻑 觀賞하다가 어느덧 해가 기울기로 醉興이 도도한 중에 성큼성큼 飛仙臺를
내려오면서 浩然의 逸興을 발하여 詩 한 수를 낭음했것다.”
그들보다 훨씬 이전인 미호 김원행(渼湖 金元行, 1707~1772)도 위쪽의 반석을 비선대로 보았고, 그 아래 와폭
을 식당폭포라고 하였다. 그의 시 「식당폭포와 비선대. 삼가 종조 삼연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食堂飛仙臺 敬次
從祖三淵先生韻)」중 일부다.
石扇危欲墮 부챗살처럼 퍼진 바위 떨어질 듯 위태롭고
迭出多奇嶂 기이한 봉우리들 뒤질세라 솟아 있네
洒落數疊瀑 시원스레 떨어지는 수 갈래 폭포여
噴薄一何壯 쏟아지는 물줄기 얼마나 장관인지
선인들 흉내는 못 내지만 목책 넘어 와폭에 바짝 다가가 너른 반석에 엎드려 카메라 들이대고 나온다. 소공원
주차장 가는 대로 3.0km를 걷기가 퍽 따분하다. 산꾼들에게는 이 대로가 험로 다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간
다. 설악산 단풍을 산이 아니라 길에서 사람들 울긋불긋한 옷차림에서 본다. 소공원주차장 도착시간이 16시다.
13시간 산행한 셈이다. 다른 때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1시간 여유가 있지만 넉넉하지 않다. 주차장 버스
승강장에는 C지구 등지로 가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 섰다.
버스가 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버스 오는 차도가 몰려드는 차량들로 막혔다. 그렇다고 C지구 상가(3km)까지
걸어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택시 잡으려고 서성이다가는 버스마저 놓치고 만다. 버스배차를 지금 시각에는
다른 때보다 늘렸으리라. 15분 후에 온 두 번째 버스에 탈 수 있다. 16시 30분에 C지구 상가에 도착한다. 급히
화장실에 가서 낯 씻고 옷 갈아입는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에 소주 한 병 얼른 비운다.
버스는 17시 정각에 출발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유산행이라 설악동 C지구 상가 등 각각의 날머리에
누가, 몇 명이 내려올지 아무도 모른다. 산행대장님 전화번호도 버스기사님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았고 아무
도 묻지 않았다. 올 때는 모두 찼던 좌석이 갈 때는 여러 개 비었다.
27-2. 1,275m봉 전경
28. 나한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1,275m봉
29. 앞 왼쪽은 세존봉
30. 왼쪽 뒤가 1,275m봉
31. 나한봉 전위봉
32. 공룡능선의 동쪽 사면, 맨 왼쪽이 1,275m봉
33. 범봉과 1,275m봉
34. 1,275m봉
35. 황철봉 남동릉 너머 울산바위
36. 천불동계곡 주변
37. 가운데가 희야봉(?)
38. 비선대 와폭, 비선대 와폭이 이처럼 철철 흐르는 것은 내 처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