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직면한 내 애상의 거울이다. 기가 소진돼 심신이 불안한 것일까? 내 꿈엔 늘 게걸스럽고 더럽고 불결한 공포의 좀비가 등장해 밤잠 편치 않은 구속적 내 영혼을 밤마다 갉아먹고 있다. 나는 비실대고 초점 잃은 허탈로 밤마다 삐질삐질 진땀을 흘려야 했다. 엊그제 오랜 병마로 백 년 친구인 아내를 잃어 화장시키고 혼자가 되어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맞는다. 내 생에 처음 닥친 운명적 허무다. 밤마다 헛것이 씌인 듯 동에 닿지도 않는 별천지의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미로 속 꿈 때문에 시달려 정신과 병동에라도 가야 할 판이다. 낮잠에도 밤잠에도 꾸어지는 환상에 깨어지는 머리와 심약함이 날로 늘어가 사지 멀쩡한 환자 아닌 환자가 되어 피를 말리고 있다.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나잇살로 불쑥 나온 뱃살도 꺼져갈 만큼 수척해간다.
눈은 하가마가 되어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쑥 들어가 초췌하고, 본래의 인상을 지워가는 반송장의 몰골이 되어간다. 밤마다 잠이 들면 외까의 비명을 지를 만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해 불가의 별천지의 꿈 때문에 이제 밤은 나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다. 실제 존재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상상 이상의 발칙하고 엉망진창 두서없는 개갈치 않는 꿈속 몽혼은 이제 내 단골 메뉴다. 숨 가쁘게 기어오르고 채이고 몰리고 다치며 허우적거리는 내 침상의 몸부림은 어떤 모습들일까? 내가 나를 알 수 없는 아이러니로 만들어낼 테다. 시달림으로 경직된 목과 자고 나도 개운치 않은 무언가 꽉 채워진 듯한 무거운 머리, 그 얼얼함! 참 못 말리는 고질병이다. 이 계기를 들어 나는 내 영적 자원이라는 미명하에 방증에 가까운 허무맹랑한 꿈을 하나하나 글로 치부하고자 했고, 많은 이들과 함께 산발적 꿈 이야길 공유하고자 고민하기로 했다. 이야기 속에는 괴기스러운 인간말종 좀비가 등장하게 되는데 등장 괴벽의 무리인 좀비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를 알 필요가 있고, 알고 난다면 받아들이는 그 공포의 혐오스러움은 하나의 해프닝 같은 모델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무슨 이야기든 이야기 속에는 오묘함과 희열이 있기 마련이다. 알고 보면 시시껄렁한 별것도 아닌 것이 되지만 모르는 상황일 땐 흥분과 열정, 몰입이 되므로 편향적 사고가 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상징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변화와 불안을 반영하는 영상문화 속에 등장하는 사회적 거울인 좀비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시적 상징의 표현이다. 20세기 속 서구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드라큘라나 좀비, 일그러진 삶 속에 두드러진 그 모습은 변모해가면서 21세기 한국 영상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쳐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스크린 속 영상물이 오늘날 좀비라 보면 될 듯하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괴물 좀비! 우리는 영화 속 좀비를 보면서 징그럽고 무섭다는 편견 하나로 그칠 뿐 그 좀비에 대한 비밀은 알려고 들지 않는다. 단지 제작자들의 지능적 아이디어로만 형상화한 하나의 피조물로, 흥분과 공포를 자아내기 위한 매개체로 흥행을 위주로 한 계략적 의도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좀비라는 대상이 비록 서양에서 시작되었지만 동양 특히, 한국 영상물에서 좀비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 좀비라는 상상의 존재가 내포하고 있는 데에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 외에는 별 신경 쓸 일이 아님을 일축한다. 좀비는 더럽고 추하고 징그럽고 무서운 살아있는 괴물로 피를 부르는 괴기스런 상징이며, 늘 배고픔을 드러내며 먹자고 달려드는 걸신의 행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좀비의 핵심은 배고픔이라는 단순한 욕망으로 해석하는 현대인의 복잡한 현실을 반추하는 의미 깊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작가소개>
저자 허신
인천 서구 가좌동 출생
토박이 작가
[작가연보]
2013년 「꿈이 머문 슬픈 인형」
2014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24년 「이 시대의 자화상」, 「잊혀진 주소 168번지」, 「문학을 흉내내었읍니다」
<이 책의 목차>
밤마다 내 영혼을 잡아먹는 심령의 마구간
소나기 내리던 날 밤의 망령
잠행의 나라
비사몽 월광의 밤
마달로의 타이밍
좀비의 도시 바시리
영혼을 훔치는 희대의 사기꾼 바빌루니아
두 번을 태어나도 똑같은 놈
혐오의 골짜기
저주의 두 어금니
활난의 별천지
애장
구척장신
허수아비의 망령
풍수지리
우연한 눈길
설잠
야리야리의 꿈
몬태 왕국의 나발리 임금님
생사의 수단
능멸의 시간
혼령의 방문
헛것
망자를 불러내는 신의 딸들
헛것들의 반란
한밤의 길손
창가의 귀신
광란의 질주
제물
잡년
진눈깨비의 허상
패륜
탐욕의 말로
졸부의 조건
화냥기
죽음의 그늘 폐가
발작
형벌
애난의 알츠하이머
가상의 세계 행성을 가다
위정자들
귀접
섬광
악신의 영역
납골당의 원귀들
짚시의 남자
도박의 그늘
객사
우중의 곡소리
보이지 않는 궁전
자살
<이 책 본문 中에서>
“관 속은 물이 벙벙했다. 송장 썩은 냄새는 골이 뽀개진 듯 독하고 매웠다. 몸통이 반만 썩은 시신은 이를 응! 물고 숨이 넘어간 중년의 부인 같았다. 시신은 물에 둥둥 떠 종이배 신세가 되어 관 속의 썩은 물에 공포스럽게 제멋대로 흐느적대며 일렁이고, 수분이 미치지 못한 썩은 나무 관짝엔 여인의 머리카락이 들러붙어 바람에 흐트러지며 제멋대로 너풀거렸다. 얼굴이 없는 하반신만으로 관 주위에 빙 둘러선 허상들은 슬픈 연가라도 부르는가 합창하듯 잉잉거렸고, 일부는 뭔가를 개걸스럽게 먹어대는 배고픈 원귀도 있었다.”
“순간 도깨비 생각이 문득 났다. 혹여 이놈이 도깨비가 아닐까? 도깨비와의 씨름에서는 왼쪽으로 씰어 뉘어야 넘어간다는 소리를 어려서 할머니로부터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머리카락이 바싹 섰다. 온몸이 경직되며 소름이 끼쳐왔다. 이제 이판사판 물러날 수 없는 현실에 그놈이 그냥 선선히 나를 놔줄 것도 아니고 그여나 내가 이겨야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는 걸 생각했다. 놈은 도깨비가 분명했다.”
“담배를 피우려고 창문을 반쯤 열었다. 열린 틈 사이로 밤바람이 급하게 들어왔다. 커튼이 펄럭거렸다. 커튼 사이로 하얀 물체가 어른거렸다. 머리를 풀어 헤친 소복을 입은 하얀 얼굴의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의 얼굴은 입, 코, 눈이 없었다. 그야말로 달걀귀신이었다. 나는 기겁을 하며 놀라 억 소리를 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달걀귀신이 불쑥 고개를 안으로 디밀었다.”
“엄마가 아기를 토닥이며 자장가를 부르듯 그는 입속말을 하고 있었다. 겨우 잠든 그가 움찔움찔 몸을 비틀고 있었다. 여자 귀신이 그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여자는 극도의 흥분으로 눈알마저 충혈되어 붉었다. 귀신이 사내의 두 발을 벌려놓았다. 사내의 남근이 말뚝처럼 곤두서 있었다. 귀신이 사내를 겁탈하기 위한 유리한 자세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기겁을 하며 누운 채 몸을 오그리고 뒤척거렸다.”
<서평>
삶의 여정은 긴 잠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생의 절반은 잠으로 일관한다는 말이 낭설이 아니다. 사람이면 행하는 일상이다. 낮과 밤을 상관치 않고 빠져드는 게 잠이다. 아련한 잠에 도취되어 반송장이 된 무아지경 속에서도 사람은 꿈을 꾼다. 젖먹이 어린아이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본 모든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잠든 아이가 잠결에 방실대며 웃는 모습을 목격했으리라. 젖먹이조차도 꿈을 꾼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꾸는 꿈은 단순하다. 모태에서 세상 밖을 내다볼 수 없어 아무것도 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의 꿈일 뿐이라 이르고, 그 꿈은 아름다운 개꿈이라고 일축해도 좋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린 것이 몸으로 말하는 무언의 성장통임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세상에 나 같은 아이가 또 있을까 싶게 내 성장의 기간은 꿈을 꾸기 위해 태어난 특별한 혼돈의 아이 같았다. 성인이 되어 머리 허연 지금의 이 나이에도 꿈은 계속된다. 산꼭대기에서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환상적 허울이 묻어나는 단맥상의 꿈을 꾼다. 하늘을 나는 꿈은 성장기 때만 꿀 수 있는 꿈이다.
알라딘의 요술 담요처럼 창공을 휘저어 날았고, 묘기를 부리는 비행으로 협곡을 비집고 날았다. 이 같잖고 두려움 없는 꿈은 주책일까? 몽상일까? 누구나 잠이 들면 크고 작은 꿈을 꾼다. 꿈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일 수도 있고, 단지 몽상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불가능한 꿈과 희망을 신념으로 희망을 갖는 사람을 몽상가라 이르지만 그들에겐 무언가 구미 당기는 자기 위주의 꿈에 대한 선입견에 사활을 거는 걸 보면 꿈을 굳이 의기소침해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현실에서 강렬하게 바라던 희망이 꿈에서 실현되는 거꾸로의 현실처럼 와닿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면도 있다. 이는 절대 신뢰할 수 없는 감성적인 로망이 너무 깊은 나머지 꿈이 불러내는 투명적 환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꿈을 허투루 간구치 않고 소중히 다뤄 자기 안일의 흑백을 가리는 신 같은 존재로 꿈을 다루기도 하며, 꿈에 따라 그날의 일진을 점치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도 사고, 돼지꿈, 똥꿈에 길흉화복의 운세를 소원하기도 한다. 꿈의 기억은 하루가 생명이다. 짧게도 하루, 길면 이삼 일이면 잊혀지는 것이 꿈의 특징이다.
우리는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다. 꿈은 신으로부터 혹은 영혼으로부터 자신에게 오는 영혼의 메시지일 거라 생각된다. 나는 철학가이거나 역술인 또는 심령가가 아니다. 일반대중으로서 그럴 것이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두서없이 표현할 뿐 믿고, 안 믿고는 독자의 몫이다. 꿈속의 사위는 언제나 신비로 가득하다. 나 아닌 타인과의 어울림에서 나를 꼭 신뢰받는 인물로 승화시킨다. 꿈의 해몽은 믿을 만큼 제대로 해야 꿈 가치의 소중함에서 비롯된 값진 꿈값을 할 것인즉 좋은 꿈은 신처럼 소중히 다루어 나만이 간직한 그날 운세의 보물로 간직할 일이다. 이것을 행운의 꿈이라 이름한다. 좋은 꿈은 혼자 마음속에 숨겨 남에게 발설치 않는 꿈 나름의 원칙이 있다. 용꿈, 돼지꿈, 돈꿈을 꾼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다.
꿈은 크게 나누어 다섯 가지 종류로 따져 분리한다고 한다. 첫 번째 심몽(心蒙)이다. 평소 깊게 생각해 반복해서 꾸어지는 꿈을 말한다. 정몽(正夢), 평생에 볼일도 없고 느끼거나 생각조차 해본 일도 없는데 꿈에 또렷이 나타나 깨어나서도 꿈의 전후 현상이 두드러져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경우를 말한다. 허몽(虛夢), 심신이 나태하거나 쇠잔할 때 꾸어지는 기분 나쁜 꿈으로 몸이 허약한 이들이 꾸는 꿈을 말한다. 잡몽(雜夢), 꿈과 욕망이 두드러진 이들이 꾸는 꿈으로 별 의미가 없는 자신의 노이제로가 불러오는 심신 고단한 꿈이다. 영몽(靈夢), 신화적이며 영적인 꿈이다. 일대 선조가 꿈에 나타나 경고하는 중대 의미를 갖는 꿈으로 일생에 한 번 꿀까 말까 하는 귀하고 신비한 꿈을 말한다.
그대들이여, 꿈을 꾸어라! 정몽, 잡몽, 심몽, 허몽, 영몽보다 값지고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생각이 살아있는 절대적 희망의 꿈을 말이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했다. 꿈풀이의 해몽은 하나의 거품이다. 문명의 이기 핸드폰 속 게임이라 일축하며 꿈은 부득이 나만의 존재물이 아닌 누구나 꾸는 돌림병 같은 몽환적 질환임을 상기하고 기대 이상의 편애에서 자유로워질 일이다. 다만 좋은 꿈이라면 의미를 부여할 일이다. 멀리 옛 선조들은 꿈을 조상이나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 숭고함이 있었다. 그 편견에 치우쳐 그날 일진에 반영하고 행동 반경마저 자제하며 간밤의 꿈에 촉각을 세워 촌각을 다투는 하루를 살았으니 그 순수함이 곧 우리 백의민족 영혼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꿈은 꿈일 뿐이다.
(허신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320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