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설 게시가 너무 늦었습니다. 전날 저녁에 올리던 것을 이 날 점심 때가 쫓길만해서 올리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어제는 제가 온종일 좀 쫓겼습니다. 문단의 큰 선배 작가님인 이영호 선생의 부음을 듣고 문상 갔다가 오전부터 오후까지 빈소에서 뭉기적거렸고, 거기서 이 선생님의 짝꿍으로 소문난 또 선배 시인 한 분이 문상에 나타나지 않아서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코로나 양성 확진으로 자택에 격리된 채 진료 중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들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문병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격리되신 분이니 문병이 가능하지 못하니까요.
수목 소설이 어제에 이어 계속됩니다. "전설3 [일루전ILLUSION]제3부 건국과 단정 반대 ]"는 당원들을 달성군 구지 아지트에 소집해서 교육하는데 아지트 집 주인인 전국표가 나타나 용철과 양수와 함께 세 사람이 아지트 사용에 대한 의논을 했습니다. 국표가 국회의원 입후보 등록을 해서 선거 운동본부로 사용해야 할 판이라 도당에서 이용하기 어렵게 된 탓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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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고요 최지훈 작
왜옥동네의 전설•3
일루전ILLUSION
제3부 건국과 단정 반대 (제45회)
3. 총선이냐, 아니냐-⑩
이튿날은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당원들을 깨워서, 밤중에 양수와 몇 사람이 잠을 줄이고 준비한 주먹밥을 한 덩이씩 들게 하여 서둘러 탈출하듯이 아지트를 벗어났다.
정류장에서 새벽 첫 차를 전세 낸 듯이 우루루 타고 통째 점령해서 곧장 출발하게 했다. 버스 운전수는 무슨 일인가 어디서 이렇게 새벽부터 한 떼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타는가 이상하게 여겼다. 남산국민학교 옆 정류장에 닿았을 때는 아침 햇살이 완전히 퍼져서 거리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다니고 있었다. 짐을 가득 실은 말달구지가 줄을 지어 시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짐은 갑바 같은 것으로 덮어놓아 무슨 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버스에서 내린 당원들은 거기서 그냥 해산했다. 서로 악수로 인사하고 헤어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아마도 바로 직장으로 출근할 것이다.
양수와 용철이는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최근 새로 옮긴 도당 아지트가 있는 계산동 쪽으로 향했다. 계산동 성당 부근에서 내려 5분 가량 걸어서 아지트를 찾아갔다. 그곳은 사공영춘이 경영하는 인쇄소였다. 그것은 표면상 모습이고, 실제는 사공영춘이 이끌던 테러 조직의 활동 기지였다. 지난 해 여름 아이 하나를 잘못 납치했다가 일을 크게 그러쳐서 이 기지가 당국에 들통나버린 곳이어서 된통 혼이 난 사공은 이래로 이곳을 버려놓고 지냈었다. 그런데 지난해 십일월인가 겨울이 채 되기 전인 늦은 가을에 도당 아지트를 삼은 것이다.
벌집처럼 작은 칸으로 이루어진 활자 꽂이 판이 벽을 이루고 있고, 작은 명함이나 낱장의 시험지 같은 작은 종이의 인쇄물을 인쇄하는 활판이 먼지를 쓰고 한쪽으로 밀려나 있는 방을 사무실 구조로 책상과 의자를 두서너 개를 둘러놓은 곳이었다. 책상에는 전화기도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난로에 나무토막을 쑤셔 넣고 신문지 따위를 불쏘시개로 구겨 넣어서 불부터 피웠다.
그리고는 의자에 마주 앉아 담배를 꺼내어 피워 물고 연기를 내뿜었다. 난로가 달아오를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용철이가 먼저 구지에서 의논들 중에서 미진하게 미루고 있는 문제를 꺼냈다.
“나 지금 좀 혼란이 오오. 계속 당원 교육을 하고 있을 것인지, 바로 파업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 말이요. 비서 동지는 어떻게 생각하오.”-용
“저는 구지 아지트를 활용하기 어려워지면 죽도 밥도 못 끓이는 신세가 되는 거 아닌가 싶어 우울해지는데요.”-양
“그러게 말입니다. 힘든 문제가 갈수록 쌓이는 거 같소. 중앙에서는 임시위원단을 추방해야 한다고 당원들과 학생들을 동원해서 외무성 앞에서 시위 집회를 계속한다는군요. 그래서 지방에서도 호응하는 시위를 해주마 하는데 무슨 수가 있겠소?”-용
“우리는 시위를 한다카마 어데서 해야 되지요? 서울에서야 위원단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향해 시위를 벌이마 되지만도 우리는 그냥 아무데서나 할 수는 없지 않겠십니까?”
“도 군정청 앞마당에서 할 수는 있제.”-용
“거게는 도경도 있어갖고 경찰 동원이 간단할 긴데예?”-양
“어데는 경찰 동원이 안 되겠어요?”-용
“그래도 거기는 그 자리에 경찰 부대가 안 있십니꺼?”-양
“아이구, 도경이 자기 부대를 동원할 줄 압니까? 대구서를 동원시키지.”-용
“아, 그라고. ……저 사적인 이야깁니다만도, 입에 풀칠할 자리가 약속돼 있어서. 오늘.”
“무슨 직장이 생깄다는 뜻인가예?”
“직장은 아니고 밥 얻어묵을 데가…….”
“어뎁니까? 매리 동지 숙소도 아이고?”
“그렇심다. 권 변호사댁입니더.”
“권 변호사? 거기서 뭘하는데?”
“그 집 딸내미 피아노 교습 부탁을 받았는데 오늘 그 딸내미하고 맞선을 보기로 약속이 돼 있거든예.”
“그 딸내미가 몇 살이나 됐는데?”
“중학생이라 카네예. 아마도 하급생인갑심더. 일학년인지 이학년인지.”
“아주 어린아로구만. 그래 몇 시까지 가마 되오?”
“지금 딱 알맞은 시각인데요. 오전 아홉시까지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에.”
“여게서 공평동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이까?”
“택시를 불러 타고 갈랍니더. 택시값 정도는 제 호주무이에 있심더.”
“호강하실라꼬? 하하하.”
“난데없는 부루조아 흉내를 냅니더.”
-----03/03(목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