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중국전세10대명화의 한 작품(원작)인 오대(五代) 고굉중(顧宏中, 910~980)의 <한희재야연도韩熙载夜宴图>(한글과 한자 병서, 150페이지, 정가 15만원, 예술인마을)를 내가 어제 출간했다.
<한희재야연도>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물화 걸작 중의 한 작품으로 중국 오대 시기에 남당 중서시랑 한희재(902~970)의 집안에서 거행된 밤 연회의 정경을 고굉중이 종이에 그려 남당(南唐) 후주(后主) 이욱(李煜) 황제(재위 961~975)에게 바친 그림이다.
한희재야연도를 출간한 박찬선생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림의 성격으로 보면 화가 고굉중은 스파이인 셈이고 한희재는 첩보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면마다의 사실 묘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야연도는 뛰어난 품격으로 인해 그 후 수 없이 임모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번에 박찬선생님이 책을 통해 진적을 발표함으로서 역사 예술계에 어떤 파문이 일어날 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인민해방군이 1949년 북경을 점령했을 때 자금성은 텅 비어 있었다. 보물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신중국 성립 이후 주은래의 지시로 자금성의 고궁박물원을 채울 수 많은 도자기, 청동기, 옥기, 서화 등 유물들을 해외에서 사들이고, 또 중국 본토의 민간인들한테 기증받았는데, 청나라 황실이 보호했던 고대 명가들의 서화 작품들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서화 작품들은 마지막 황제 부의가 원본을 베낀 뒤 다시 이를 칼라 복제한 모조품들이다. 이 모조품들이 북경고궁박물원 뿐만 아니라, 해외로 흩어져 대만고궁박물원, 미국, 영국, 일본에서 수 십년 동안 국보 대접을 받고 있다. 8여 년전 중국 남방 모처 두 곳에서 원본 서화들이 대량 발견되었으나 중국국가문물국을 비롯해 아무도 진적이라고 믿지를 않아 불행하게도 최근 1여년 동안 중국에서 빠져나와 해외로 흩어지고 말았다.
첫댓글 중국전세10대명화의 한 작품(원작)인
오대(五代) 고굉중(顧宏中, 910~980)의 <한희재야연도韩熙载夜宴图>(한글과 한자 병서, 150페이지, 정가 15만원, 예술인마을)를
내가 어제 출간했다.
<한희재야연도>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물화 걸작 중의 한 작품으로 중국 오대 시기에 남당 중서시랑 한희재(902~970)의 집안에서 거행된 밤 연회의 정경을 고굉중이 종이에 그려 남당(南唐) 후주(后主) 이욱(李煜) 황제(재위 961~975)에게 바친 그림이다.
세로 길이 76.5센티, 가로 길이 8미터에 근접한 대작이라서
출판 제작 과정에서 몇 번 실패를 거듭한 끝에
6개월 만에 책이 나왔다.
10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의 책을 통해 원본이 세상에 공개된 것.
이제껏 우리가 보아 온 북경 고궁 박물원의 <한희재야연도>는 송나라 모본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나라 황실에서 진적(원작)을 배낀 후에 이를 다시 인쇄한 모조품으로 추정된다.
한희재야연도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모두의 발이 묶여 있는 기간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귀한 책이 발간 됨을 축하드립니다💜
기도와 성원 덕택입니다. 고맙습니다.
중국인들이 보면 기절 초풍하겠네요.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드리며 큰 결실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한희재야연도를 출간한 박찬선생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림의 성격으로 보면 화가 고굉중은 스파이인 셈이고 한희재는 첩보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면마다의 사실 묘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야연도는 뛰어난 품격으로 인해 그 후 수 없이 임모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번에 박찬선생님이 책을 통해 진적을 발표함으로서 역사 예술계에 어떤 파문이 일어날 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인민해방군이 1949년 북경을 점령했을 때 자금성은 텅 비어 있었다. 보물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신중국 성립 이후 주은래의 지시로 자금성의 고궁박물원을 채울 수 많은 도자기, 청동기, 옥기, 서화 등 유물들을 해외에서 사들이고, 또 중국 본토의 민간인들한테 기증받았는데, 청나라 황실이 보호했던 고대 명가들의 서화 작품들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서화 작품들은 마지막 황제 부의가 원본을 베낀 뒤 다시 이를 칼라 복제한 모조품들이다. 이 모조품들이 북경고궁박물원 뿐만 아니라, 해외로 흩어져 대만고궁박물원, 미국, 영국, 일본에서 수 십년 동안 국보 대접을 받고 있다. 8여 년전 중국 남방 모처 두 곳에서 원본 서화들이 대량 발견되었으나 중국국가문물국을 비롯해 아무도 진적이라고 믿지를 않아 불행하게도 최근 1여년 동안 중국에서 빠져나와 해외로 흩어지고 말았다.
그수고로움과 끝없는 열정앞에 존경과 경의로 인사드립니다. 중국은 문물에 대한 자세와 연구노력은 언제쯤이나 진지해지려는지~~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