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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인산 가는 길
花開昨日雨 어제 비에는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 오늘 아침 바람에는 꽃이 지는구나
可憐一春事 가련도 해라, 한낱 봄날의 일이여
往來風雨中 바람과 빗속에서 왔다가 가는구나
―― 운곡 송한필(雲谷 宋翰弼, 1539 ~ ?),「우연히 읊다(偶吟詩)」
▶ 산행일시 : 2023년 4월 15일(토), 비, 안개
▶ 산행인원 : 5명(악수,자연,메아리,하운,도자)
▶ 산행코스 : 국수당,전패고개(우정고개),우정봉,연인산,장수봉,송악산,장수고개,깊은돌,제2주차장,연인산 입구
버스승강장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3.0km
▶ 산행시간 : 7시간 50분
▶ 갈 때 :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청평으로 가서, 청평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현리로 가서, 택시 타고 국수당으로 감
▶ 갈 때 : 연인산 입구 버스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가평터미널로 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가평역으로 와서,
전철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25 - 상봉역
08 : 08 - 청평역
09 : 05 - 현리
09 : 25 - 국수당, 산행시작(09 : 35)
10 : 07 - 전패고개(우정고개), 휴식( ~ 10 : 30)
11 : 41 - 우정봉(916.4m)
12 : 00 - 우정봉 아래 안부, 점심( ~ 12 : 40)
13 : 30 - 1,055.1m봉, 헬기장
14 : 05 - 연인산(戀人山, △1,076.8m), 휴식( ~ 14 : 20)
14 : 46 - 장수봉(943.5m)
16 : 03 - 송악산(△706.6m)
16 : 35 - 장수고개
17 : 07 - 깊은돌 마을, ┳자 삼거리, 제2주차장(연인산 입구 버스승강장) 0.7km
17 : 25 - 제2주차장, 연인산 입구 버스승강장, 산행종료(17 : 48 - 가평행 버스 출발)
18 : 15 - 가평터미널, 저녁( ~ 20 : 18)
21 : 15 - 상봉역
2-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일동 1/25,000)
서울과 현리의 날씨는 다르다. 서울은 오후 2, 3시쯤에 비가 올 거라고 했는데, 현리에서 택시 타고 연인산 들머리인
국수당 마을을 가는 길에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택시기사님 말씀으로는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했다며 그 양을
적을 거라고 한다. 산에 가는 사람이 비를 탓할까마는 여정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짐은 어쩔 수 없다.
국수당 마을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택시에 내려 배낭에 커버를 씌우는 등 우장 갖춘다.
우리가 타고 온 택시가 산모퉁이를 돌아 내려가기 직전에 갑자기 멈추더니 휴대전화를 두고 내렸다고 소리쳐 부른
다. 내 휴대전화다. 호주머니에서 흘린 줄을 모르고 내렸다. 아찔하게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택시기사님이 어떻게
발견했을까? 운전 중에 새삼스레 뒷좌석을 살펴볼 이유도 여유도 없었을 텐데. 그 시각에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었
다. 카톡 울리는 소리에 기사님이 알아챘던 것이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지만 운이 썩 좋은 날이다.
국수당 마을. 예전에 국수당(서낭당의 방언이다)이라고 불리던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우정고개 1.7km. 숲속 얕은 골짜기로 너른 길이 났다. 산비탈이며 골짜기 주변에는 노란 산괴불주머
니가 한창이다. 부슬비가 내리는 음울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꽃으로 환하다. 예전에는 너덜 섞인 돌투성이 길이었
는데 지금은 임도로 다듬었다. 그때 이 길을 오르다가 혼자서 오프로드 카를 몰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길이 바위에 막혀 긴 철장으로 바위를 치우는 중이었다. 나로서는 걱정이 앞섰다. 나더러 도와달라고 사
정하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고, 저 큰 바위를 함께 치우느라 힘쓰다 보면 체력과 시간을 적잖이 소모하게 될 것이고,
산행하는 데도 지장이 있을 것만 같았다. 머뭇거리며 비켜 지나가는데 나를 보는 척도 안 했다. 살았다! 안도하며 잰
걸음 하여 지나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험지에서 오프로드 카를 모는 사람은 그런 바위를 치우는 일이
남에게 양보하거나 남과 나눌 수 없는 재미라고 한다. 내가 괜히 겁을 먹었었다.
나물꾼들을 만난다. 골짜기 가까이서 찔레 새순을 따는 여자 분들에 이어 두릅을 따려고 풀숲을 둘러보는 남자 분을
만난다. 비옷을 입지 않은 나를 보고 이 비를 맞으며 가느냐고 말을 건넨다. 어차피 젖을 것,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
나 마찬가지라서 그냥 간다고 하자 웃는다. 오를 때는 제법 땀난다. 고도를 높일수록 비는 점점 굵어진다. 언뜻언뜻
나뭇가지사이로 보이는 먼 데 산은 안개에 휩싸였다. 이래서는 조망하기가 글렀다.
우정고개. 단숨에 올랐다. 고갯마루에 예전에 없던 정자가 있다. 우정고개는 트레킹 또는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오
른쪽 매봉(2.2km)을 오르면, 칼봉이나 송이봉, 깃대봉, 대금산, 청우산 등지로 갈 수 있고, 직진하여 임도 따라 계속
가면 꽤 먼 용추계곡으로 가게 된다. 왼쪽은 연인산 정상 3.7km다. 우정고개의 옛 이름은 전패고개다. 전패고개는
6.25 때 아군이 이 근처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 끝에 전패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자에 앉아 입산주 탁주 나눈다. 도자 님이 가져온 오디로 담갔다는 막걸리가 빛깔이 예쁘고 맛도 좋다. 우리를 뒤
따라온 일단의 등산객들에게도 한 잔 권한다. 그들은 용추계곡 쪽으로 가다가 엄나무 순이나 따겠다고 한다. 연인산
산릉을 가는 등산객은 우리뿐이다. 한적한 산길이다. 안개 속에 든다. 불과 몇 미터 앞을 가린 짙은 안개다. 비는 모
양 갖춰 내리기 시작한다. 손이 시리고 춥다. 나 혼자 이 길을 오갈 때는 덕순이 찾을 생각도 겨를도 없었는데, 여럿
이 가는 오늘은 여유롭다.
3. 국수당 마을 계곡
4. 우정고개 가는 길. 흰제비꽃. 큰괭이밥은 꽃이 지고 잎이 올라왔다.
5. 연인산 가는 길. 금붓꽃
7. 연인산 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했다
9. 얼레지, 비에 함빡 젖었다
넙데데한 사면 잡목 숲 헤친다. 여린 풀꽃들은 비 맞아 고개를 푹 숙였다. 피나물, 얼레지 등등. 간절한 소망은 간혹
이루어지기도 한다. 덕순이를 보고자 함도 그렇다. 세상에 기적은 없다. 기적 같은 일이 있을 뿐이다. 간절한 소망은
매우 드물지만 기적 같은 일을 일구어내기도 한다. 나는 여자프로당구에서 그런 경우를 목도했다. 다른 스프츠에서
도 이러한 극적인 승부가 과연 있을까 싶었다. 당구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지난 3월 11일에 열린 ‘SK 렌터카 LPBA 월드챔피언십’ 결승전이었다. 2022-23 시즌의 마지막 경기였다. 김가영과
스롱 피아비의 대결이었다. 7전 4선승제. 각 세트마다 11점을 먼저 내는 사람이 이긴다. 우승상금은 남자들의 경기
에 비해 턱없이 낮지만(남자들의 경우 우승상금이 2억원이다), 다른 경기는 2천만원인데 이 경기는 7천만원이다.
준우승은 2천만원이다. 희비가 엇갈렸던 마지막 7세트 마지막 10이닝만 간략하게 소개한다.
4세트까지는 스롱 피아비가 3 대 1로 절대 우세하였으나, 김가영에게 5,6세트를 내리 패해 3 대 3 동점이 되었다.
제7세트 경기는 김가영이 종반까지 우세하게 진행되었다. 스코어가 10 대 7이 되었다. 김가영이 월드챔피언십 포인
트 1점만 더 내면 우승이다. 누구라도 김가영이 우승한다는 데 의심하지 않았다. 설령 이번 10이닝에서 점수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제7세트의 경기진행내용을 보면 스롱 피아비가 한 번의 기회로 연속 4점을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 보기에 충분했다.
김가영이 회심의 챔피언십 포인트 샷을 날렸다. 옆 돌리기로 짧게 쳤다. 순간 장내는 정적이 흘렀다. 공은 맞지 않고
약간 빗나갔다. 아쉬워 탄식하는 한숨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스롱 피아비에게 뱅크 샷의 기회를 제
공했다. 스롱 피아비의 차례다. 호흡을 가다듬고 뱅크 샷 포 쿠션을 겨냥하고 공을 쳤다. 공은 쿠션4곳을 거쳐 산뜻
하게 적중했다. 일거에 2점을 더했다. 10 대 9. 장내는 환호성이 터졌다. 그렇지만 갈 길이 멀다. 아직 2점이 남았다.
스롱 피아비는 공 배치를 잠깐 살피더니 빗겨치기를 길게 날렸다. 코너를 돈 공은 키스를 0.001mm 차이로 간신히
피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몸을 비틀게 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적중했다. 10 대 10. 역대 최초
의 더블 챔피언십 포인트였다. 스롱 피아비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마지막 1구. 바깥 돌리기로 끌어당기는 샷을 날렸
다. 공은 느릿느릿 코너를 돌고 길게 목적구를 향해 갔다.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공은 쿠션을 살짝 대고는 바
로 그 옆의 목적구를 가볍게 터치하였다. 굴러가는 공을 가까이서 엎드려 살피던 주심의 ‘맞았다!’는 제스처가 힘찼
다. 10 대 11. 순간 장내는 와! 하는 함성 소리가 가득했다. 스롱 피아비가 극적으로 우승했다.
장내 아나운서의 “스롱 피아비가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냈습니다.” 하는 마이크 소리도 목이 메었다. 이어지는 시상
식에서 스롱 피아비는 울먹이며 우승 소감을 말했다. “엄마, 아빠 이제 우리 새집 짓자!” 장내 카메라가 비추는 사람
마다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캄보디아 시골에서 감자 캐던 처녀가 한국에 시집 와서 우연히 남편을 따라 당구장에
갔다가 당구와 인연을 맺었고, 마침내 왕 중 왕의 자리에 오른 순간이었다. 해설위원도 그렇게 말했다. 집념과 간절
함이 마침내 우승을 일구어냈다고.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난다고 했다. 만리발청향을 풍기며 봉봉을 오르내린다. 능선에 서면 비바람이 몰아친다.
안개는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한다. 안개 속 풍경이 가경이다. 우정봉 오르기 직전에 비바람 피해 오른쪽 사면으
로 벗어나서 잠시 가쁜 숨을 고른다. 우정봉은 가파른 바윗길을 이슥하니 오른다. 다른 때는 등로를 약간 벗어난
절벽 위에 서면 깃대봉, 청우산으로 이어지는 연릉은 물론 운악산이 절경으로 보이는데 오늘은 안개에 가려 지척도
캄캄하다.
11. 연인산 전위봉인 1,055.1m봉 헬기장에서 바라본 귀목봉(앞 왼쪽)
12. 연인산 가는 길
14. 연인산 정상에서
15. 장수능선 장수봉 가는 길에서
18. 장수능선
19. 흰제비꽃. 874.4m봉에서
20. 얼레지. 874.4m봉에서
이정표의 연인산 가는 거리가 들쭉날쭉하다. 2.4km 남았다고 했는데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2.7km가 남았다
고 한다. 우정봉 내린 안부 오른쪽 넙데데한 사면으로 가서 점심자리 편다. 메아리 대장님이 날씨가 이럴 것이라고
예상했는지 비닐쉘터를 가져왔다.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바람은 비닐쉘터까지 찾아와 뒤흔든다. 그
래도 비닐쉘터 안은 안온한 봄날이다. 더욱 운치 있다. 오늘만큼은 라면이 맛 나는 계절이다. 탁주와 마가목주 곁들
이고 식후 커피를 더하니 산상 진수성찬이다.
우정봉을 넘으면 등로는 다시 완만한 오르내리막이 이어진다. 943.5m봉을 올랐다가 잠깐 내리고 길게 오른다.
구태여 내 눈으로 덕순이를 찾느라고 애쓸 필요가 없다. 자연 님의 뒤를 쫓다가 자연 님의 눈을 빌리는 편이 백번 낫
다. 그렇게 1,055.1m봉을 오른다. 너른 헬기장이다. 귀목봉이 잠깐 보이다 만다. 연인산 정상 0.6km. ┣자 갈림길
안부 지나고 전에 없던 데크계단을 길게 오르면 연인산 정상이다. 이곳 풍경도 달라졌다. 세 곳에 데크전망대를
설치했고 바닥도 데크를 깔았다. 사방 조망은 무망이다.
봄날에 읊은 마츠모토 고우니(松本古友尼)의 하이쿠가 절창이다. 여기에 빗대어 나는 조망이 없으니 마음이 오히려
차분하다.
꽃 지고 나니
다시 평화로워진
사람이 마음
(花ちりて靜かになりぬ人心)
아무래도 도자 님은 덕순이에게 홀렸다. 늦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장수능선 쪽에서 올라온다.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그들도 향내를 맡았다. 어디서 진한 덕순이 향내가 난다고 한다. 우리는 장수봉을 넘고, 송악산을 넘어 안부인
장수고개에서 제2주차장으로 갈 예정이다. 사방 둘러 아무 조망이 없으니 줄달음한다. 내리막 흙길은 진창이다.
장수능선 길섶에는 노랑제비꽃이 줄을 이었다. 경기도에서는 등로 옆에 ‘연인산의 야생화’라며 사진과 이름을 쓴
안내판을 설치해놓았다. 얼레지, 노란제비꽃(‘노랑제비꽃’이 정명이다), 박새, 피나물이다.
장수봉. ┫자 갈림길 왼쪽은 제1주차장으로 간다. 사방 키 큰 나무숲이 둘렀다. 우리는 직진한다. 길게 내렸다가
874.4m봉에서 멈칫한다.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오른쪽 인적 드문 길은 용추계곡 도토지로 간다. 우리는 잘난 길 따
라 왼쪽으로 간다. 도자 님이 지난겨울에 이 봉우리에서 덕순이를 두고 왔다고 하여 데리러 왔다. 봉우리 한 바퀴를
크게 돈다. 도자 님의 환호작약하는 소리는 온 산골을 울린다. 쭉쭉 내린다. 이 길이 철쭉 숲길로 2km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철쭉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다.
송악산. 국토정보지리원 지형도에는 노브랜드인 산이다. 삼각점은 ‘일동 429’이다. 내릴수록 산색이 곱다. 봄은
산골짜기에 몰려 있다. 바닥 친 안부는 장수고개다. 양쪽으로 임도가 났고 직진은 노적봉(구나무산, △867.4m)
3.1km로 간다. 오른쪽 임도는 용추계곡 도토지 또는 우정고개로 이어진다. 우리는 왼쪽 임도 따라 백둔시설지구
3.0km로 간다. 임도는 산굽이굽이 돌아내린다. 비는 아까 멎었다. 길섶 촉촉이 젖은 풀꽃 들여다보며 내리는 임도
가 산길 못지않게 오붓하다.
임도는 깊은돌 마을에서 연인산 제1주차장을 오가는 도로와 만난다. 깊은돌 계곡의 와폭과 그 주변의 산괴불주머니
가 한 경치한다. 양쪽 산릉의 춘색을 살피거나 밭일하는 동네 주민에게 말 걸다 보니 제2주차장 연인산 입구 버스승
강장이 금방이다. 뒤돌아보는 연인산 정상 부근은 여태 안개에 가렸다. 안개가 걷혔더라면 (거기서 멋진 조망을 즐
길 수도 있을 것이라) 조금은 아까울 뻔했는데 홀가분하다. 오늘도 무사한 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나눈다.
21. 송악산 가는 길에서. 멀리 흐릿한 산은 칼봉
22. 송악산 가는 길에서
23. 각시붓꽃
25. 백둔산
26. 깊은돌 계곡
29. 깊은돌 계곡 주변의 춘색
첫댓글 창암 이삼만선생 작품 "紅梅" 하나 올립니다. 선배님 글을 읽고 있는데. 畵商하는 지인이 이 작품 “紅梅” 보내와서
그냥 샀습니다.
귀품을 용케 사셨습니다.
나는 조선 후기의 명필이라는 창암 선생의 글씨를 진악산 아래 보석사의 대웅전 현판에서 보았습니다.
마음이 개운해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