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예레미야 17장 9 - 13절
9 그 어느 것보다도 비뚤어진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심히 악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속을 알 수 없다.
10 그러나 나 여호와는 사람의 속을 살필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시험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각 사람이 일하고 행동한 대로 갚을 수 있다."
11 남을 속여서 부자가 된 사람은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알을 품고 있는 자고새와 같아서 인생의 중반에 이르면 그 재산을 잃어버릴 것이요. 늙으면 그의 어리석음이 밝히 드러날 것이다.
12 예레미야가 여호와께 찬양드렸다. 오, 옛적부터 높이 들림 받은 영광의 보좌시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여!
13 여호와여, 주님은 이스라엘의 희망이십니다. 주님을 버리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따르지 않고 떠나간 사람은 흙 위에 쓴 이름과 같습니다. 이는 생명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묵 상>
예레미야 17장은 인간이 행하는 죄의 심각성과 마음의 부패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은 풍요와 안정으로 이어지지만, 세상을 의지하는 삶은 궁극적으로 황폐함을 초래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각자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과 치유를 베푸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3. 인간 마음의 부패와 하나님의 심판(9-11절)
"그 어느 것보다도 비뚤어진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심히 악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속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사람의 속을 살필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시험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각 사람이 일하고 행동한 대로 갚을 수 있다."(9-10절)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짓되고 부패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모든 피조물보다 비뚤어지고, 심히 악하다고 밝히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 수도, 바르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감찰하시고, 그 행위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심판자이십니다. 이는 사람의 외적인 모습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내면의 동기를 심판하십니다. 여기서 '사람의 속을 살핀다'에서 '속'은 '폐부'인 허파를 말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심장만큼이나 중요한 장기가 허파입니다. 허파가 규칙적으로 호흡을 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세포가 산소를 공급받아 영양분을 태워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허파를 살펴보고 계십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신적인 삶을 위하여 공기만 호흡하고 있는지 아니면 영적인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호흡하고 있는지를 알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마음을 시험한다'는 흔히 사람의 마음을 상징하는 '심장'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심장으로 상징하고 있는 이유는 심장이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심장을 시험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심장의 근육은 자율신경에 의하여 조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를 넘어서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사람의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를 점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심장이 규칙적으로 뜀으로써 사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장을 관찰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관심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계속 뛰고 있는가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살아갈 때에 구원 얻을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남을 속여서 부자가 된 사람은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알을 품고 있는 자고새와 같아서 인생의 중반에 이르면 그 재산을 잃어버릴 것이요. 늙으면 그의 어리석음이 밝히 드러날 것이다."(11절) 불의하게 남을 속여서 번영한 자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공허한 삶의 결과를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고새'는 알을 품는데 욕심이 많아서 남의 알도 함께 품습니다. 사해 근처에 자고새가 많이 서식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실을 예레미야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산에 욕심이 많아 남의 재물을 착취하여 불의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자고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고새가 품었던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나중에 어미 자고새를 버리고 떠나갑니다. 그렇게 되면 어리석게도 남의 알만 탐낸 자고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의 재물에 욕심을 내어 그것을 착복하여 자신의 재산으로 운영 한 불의한 사람에 대하여 자연의 이치 곧 자고새의 경우와 같이 인생의 역사도 그렇게 섭리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중년이 되었을 때 남에게서 착취한 재산을 잃어버리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불행한 노년을 보내는 것으로 어리석음이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
4. 예레미야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의뢰(12-14절)
"예레미야가 여호와께 찬양드렸다. 오, 옛적부터 높이 들림 받은 영광의 보좌시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여! 여호와여, 주님은 이스라엘의 희망이십니다. 주님을 버리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따르지 않고 떠나간 사람은 흙 위에 쓴 이름과 같습니다. 이는 생명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12-13절)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능력과 영원한 주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성소에서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아 계시며, 모든 소망의 근원이 되십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되심을 나타냅니다.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당면할 미래를 바라보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의 보좌가 태초부터 피조세계의 바깥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높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세상을 비추고 있어 피조세계가 온전히 운영이 되고 있음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땅에 있는 성전과 지성소가 불에 타고 파괴될 수 있지만 하늘 위에 있는 영광스러운 여호와의 보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선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에 있는 그 지성소를 생각하지 말고, 하늘 위에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성소를 바라보고 여호와께 나아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희망'이라고 하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현재적인 것이 아니고 미래의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미래에 속한 것이므로 그것이 미래에 이루어질지 아닐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미래의 실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성취를 믿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희망'은 그 뿌리를 '믿음'에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정의하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현세적인 축복을 누리고자 현실에 안주하면서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국이 망하는 것보다 더욱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결말이 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생명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린 자로 간주되며, 그들의 이름은 땅에 기록될 뿐,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수'는 사람의 갈증을 영원히 해소할 수 있는 생명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하늘 보좌 앞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생명수입니다(계 22:1). 그러므로 그 생수는 사람의 갈증을 영원히 해소할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새 언약의 시대를 소망하라고 은근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동족들이 여호와를 떠남으로써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다가 영생의 구원을 주는 생수도 얻지를 못한 채 마침내 이름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흙 위에 새긴 이름'과 같은 덧없는 인생들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영생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구원의 생명수를 달라고 간구를 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기도>
구원과 치유를 베푸시는 자비의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불의한 욕심을 내며 살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유가 아무리 늘어나도 그것으로 결코, 내게 영원한 생명을 안겨 주지 못하고, 더욱 갈증만 나게 됨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나에게 그것이 결코 불행의 조건일 수 없음을 알게 하옵소서. 세상의 궁핍함이 절대로 나를 영원히 죽일 수 없기에, 오늘 그리스도인으로 호흡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오히려 물질적 궁핍함으로 인하여 그동안 외면해 왔던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 속에서 성령님을 향해 나의 심령을 활짝 열게 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더 큰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고 살아가는 나의 삶이 언제 어느 곳,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어둔 세상을 밝히는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