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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산에 닻꽃 보러 가다 – 실운현,북봉,중봉,조무락골
닻꽃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花の陰赤の他人はなかりけり)
――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
▶ 산행일시 : 2023년 8월 20일(일), 흐림, 비, 오후에 갬
▶ 산행코스 : 사창리 쪽 화악터널 입구,실운현,북봉,중봉,조무락골,쌍룡폭포,복호동폭포,삼팔교,용수동 종점
▶ 산행거리 : 도상 11.0km
▶ 산행시간 : 6시간 33분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사창리 가는 시외버스 타고(요금 14,000원), 사창리에서 택시 타고 화악터널 입구
로 감(요금 17,000원)
▶ 올 때 : 용수동 종점에서 군내버스 타고 목동터미널로 와서, 군내버스로 환승하여 가평역에 와서, 전철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50 – 동서울터미널
08 : 33 – 사창리터미널
08 : 50 – 화악터널 입구, 산행시작
09 : 12 – 실운현(實雲峴, 1,046m)
10 : 34 – 1,406m봉
11 : 08 – 북봉(1,440m)
12 : 05 – 중봉(0.2km) 갈림길
12 : 15 – 중봉(1,446m), 점심( ~ 12 : 35)
13 : 18 – 조무락골
13 : 45 – 석룡산 갈림길
13 : 56 – 쌍룡폭포
14 : 07 – 복호동폭포
15 : 16 – 삼팔교
15 : 23 – 용수동 종점, 산행종료
16 : 20 – 군내버스 출발
17 : 20 – 가평역
18 : 28 - 상봉역
2. 산행지도
3. 실운현 가는 길
5. 흰진범
6. 실운현 가는 길
▶ 실운현(實雲峴, 1,046m), 북봉(1,440m)
광덕고개 오르면서 차창 밖으로 가리산을 사진 찍으려고 벼렸는데 안개가 자욱하여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지난주처럼 햇살에 스러질 안개가 아니다. 오히려 햇살이 안개에 묻히고 만다. 광덕고개 고갯마루에 일행인 듯한
5명의 등산객을 내려주고 나니 승객은 나 혼자다. 백운계곡도 광덕고개 넘은 광덕계곡도 여름 피서가 한풀 꺾였나
보다. 암반 훑는 계류가 홀로 한적하다.
사창리. 27사단이 떠난 자리가 쓸쓸하다. 면회객은 물론 거리에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작년에 보지 못했던 ‘15사단
2km’라는 교통 표지판이 보이기에 택시기사님에게 15사단사령부가 여기서 15km쯤 더 간 명월리에 있지 않나요
하고 묻자, 27사단사령부 자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곳 상권은 50% 정도 죽었다고 한다. 어차피 명월리
15사단도 사창리 손님이었는데 그나마 병력이 줄었으니 상권이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내가 명월리 15사단사령부에서 군대생활한 지가 어언 49년 전이다. 그때는 제대하면 이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곳이 그리워졌다. 복고개(실내고개), 복주산, 수피령, 복계산, 대성산, 말고개,
적근산 등에서 내 한때 젊은 피와 땀을 무던히 흘렸다. 화악터널은 이전한 15사단사령부 앞을 지난다. 화악터널
입구. 너른 데크전망대가 있다. 창안산, 두류산 등이 가깝게 보일 텐데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조차 가렸다.
곧장 화악터널 왼쪽의 잘난 등로 따라 실운현을 오른다. 도랑 건너고 잔 너덜지대 잠깐 올라 묵은 교통호 따르다
가파른 사면을 갈지(之)자 연속해서 그리며 오른다. 가도 가도 안개 속 풍경이 아늑하다. 등로 주변에는 흰진범
(-秦范, Aconitum longecassidatum Nakai)이 줄을 이었다. 영락없이 흰 새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구수회의하
는 모습이다. 한번 그렇게 보고 나니 다른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흰진범은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맹독성 식물이다.
임도에 올라서고 얼마 안 가 실운현(實雲峴, 1,046m)이다. 실운현은 화천군 사내면의 옛 이름인 실운현(實雲縣)에
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도 안개가 잔뜩 끼었다. 부부 등산객을 만난다. 수인사 겸해 닻꽃 보러 가시나요
하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임도 따라 중봉 오르고 조무락골로 갈 거라고 한다. 나와 행로가 같다. 그러시다면 북봉
동릉 타고 오르면 좀 좋지 않겠습니까 하고 은근히 동행하기를 권유하자, 아내가 무릎이 좋지 않아 그러기가 어렵다
고 한다.
곧바로 능선에 붙는다. 마타리 꽃들이 서로 키 자랑하는 헬기장 지나고 풀숲 헤쳐 숲속 길에 든다. 안개로 사방 어둑
하다. 그러니 더욱 적막하고 한갓진 산길이다. 능선에는 시원한 바람이 인다. 흰진범, 이질풀, 송이풀, 단풍취 등과
눈 맞춤하며 동행한다. 실운현에서 20분쯤 올랐을까. 고목 옆에 핀 금강초롱꽃(Hanabusaya asiatica (Nakai)
Nakai)을 찍고 있는 사진가 한 분을 만난다. 앉은뱅이 삼각대를 설치하고 묵직한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금강
초롱꽃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조광으로 후레시 불빛을 동원하였다.
꽃그늘 아래에서는 생판 남인 사람이 없다. 금세 친해진다. 나도 엎드려 그 금강초롱꽃을 카메라에 담는다. 통성명
은 하지 않았으나(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자기는 수년 이래 해마다 이때쯤이면 여기 이 금강초롱꽃을
찍으려고 온다고 한다. 하긴 금강초롱꽃이 여러해살이풀이다. 그는 이 근방 금강초롱꽃을 일일이 꿰고 있다. 어디쯤
가면 바위틈에 몇 송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임도 주변에도 금강초롱꽃이 있지만 이처럼 고고한 품위
있는 모습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며 여간 흐뭇해하지 않는다. 방금 찍은 사진을 카메라 모니터에 확대하여 보여주기
도 한다.
8. 북봉 가는 능선 길
9. 이질풀
10. 금강초롱꽃, 자욱한 안개로 어둑한 등로를 금강초롱으로 밝혀 갔다.
14.2. 단풍취
15. 북봉 가는 길
16. 흰진범, 새들이 모여 구수회의하는 모습이다.
나는 닻꽃을 보러 왔다며 나와 함께 북봉을 갈 의향은 없으시냐고 묻자, 자기는 등산에는 서툴다며 손사래 친다.
자기는 이 근처에서 두어 군데 더 들렀다가 실운현으로 내려갈 거라고 한다. 그렇게 헤어진다. 어둑한 산길을 금강
초롱이 밝혀 준다. 동행이 늘었다. 과남풀도 합세한다. 오르막 가파름이 잠시 멈칫한 좁다란 공터에서 그들과 탁주
대작한다.
안개비가 내린다. 풀숲 헤쳐 시원하게 젖는다. 닻꽃은 어디쯤 가야 만날 수 있을까? 걸음걸음 등로 주변을 예의 살피
며 간다. 북봉이 멀지 않았다. 조바심이 난다. 하늘 가린 숲속 벗어나 시야가 트이고(안개에 가려 아무 볼 것이 없지
만) 교통호 주변이다. 북봉의 전위봉인 1,406m봉이다. 풀숲이 특히 여러 사람 발길로 다져진 데가 보였다. 아, 한
무리 우아한 닻꽃을 엎드려 관상하는 자리였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런 느낌이 든다. 닻꽃들이 서로 자기도 보아달
라고 아우성이다.
닻꽃은 용담과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며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로 멸종위기 2급이다.
2019년에 이름이 ‘참닻꽃(Halenia coreana S.M.Han, H.Won & C.E.Lim)’으로 바뀌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에만 사는 새로운 종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속명 할레니아(Halenia)는 이명법을 창안한 린네(Carl con
Linnaeus, 1707~1778)의 제자인 할레니우스(J. P.Halenius, 1727~1810)의 이름에서 따왔다. 종소명 코레아나
(coreana)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임을 나타내고, 명명자 S.M.Han, H.Won & C.E.Lim은 우리나라 식물학자인
한수민, 원효식, 임채은 씨이다.
한편 한글명 닻꽃은 꽃 모양이 배가 정박할 때 내리는 닻을 닮은 데에서 유래한다. 일본명 하나이카리(ハナイカリ,
花碇)를 번역한 것이다. 1921년 첫 기재는 일본명으로만 이루어졌다. 첫 한글명은 1937년 일로 ‘닷꽃’으로 기재했
고, 뒤에 맞춤법에 따라 ‘닻꽃’으로 고쳤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 2』)
닻꽃은 풀숲에 묻혀 있지 않고 햇볕이 잘 드는 숲 가장자리인 등로 주변에 있어 눈에 잘 띈다. 배낭 벗어놓고 일일이
눈 맞춤 한다. 카메라가 묵직해진다. 북봉 가는 햇볕 드는 등로 주변에도 발걸음이 조심스럽도록 닻꽃이 줄섰다.
북봉에 오른다. 조망이 무척 좋은 암봉인데 오늘은 안개에 가렸다. 부슬비가 내린다. 시원하다. 탁주 독작한다. 올해
는 한창인 닻꽃을 충분히 보았다. 여러 해 묵은 닻꽃 갈증을 해소하였다. 탁주 맛이 더 난다.
▶ 중봉(1,446m), 조무락골
이제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북봉을 내려 숲속에 들고 ┫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임도로 내려가는
길이다. 직진은 경고판이 길을 막고 있다. 군사보호지역이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다. 경고판을 넘는다. 예전에는
뒤돌아가라는 경고방송이 요란하게 울렸는데 조용하다. 철조망 가까이 다가가 그 철조망 따라 왼쪽으로 돈다. 인적
은 풀숲에 묻혔다. 발로 더듬어 간다. 바위 잘못 디뎌 미끄러진다. 환형가시철조망에 걸려 바지가 찢기기도 한다.
아까 실운현에서 만난 부부 등산객과 함께 오지 않기 퍽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험로일진대 그들의 원망(?)
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한여름에 잡목과 풀숲이 우거진 이 숲길을 지나기는 대단한 고역이다. 그래도
여럿이라면 오지 뚫는 재미를 맛보기도 하는데, 나 혼자 가자니 따분하기만 하다. 더러 길을 잘못 들어 풀숲 헤치며
기어오르고, 가파른 사면은 철조망 붙들고 트래버스 한다. 기진맥진 할 무렵 철조망으로 각이 지게 쌓은 석축이
나오고 그 석축 끄트머리에서 오른쪽 비탈길 오르니 군부대 정문 앞 군사도로인 임도다.
17. 닻꽃,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살았다! 후줄근하여 임도에 올라선다. 임도를 내린다. 임도 주변에도 닻꽃이 보인다. 북봉 근처에서 보던 닻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여태 그 애쓴 터수로 약간 서운한 생각이 든다. 중봉 갈림길이다. 북봉에서 여기까지 1km이
다.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실운현에서 북봉을 경유하거나 임도로 오거나 거리는 똑같은 3km이지만, 북봉을 경유하
는 편이 시간은 훨씬 더 걸린다. 중봉을 향한다. 중봉까지 0.2km이지만 가파른 바윗길의 연속이니 결코 수월하지
않다.
중봉. 일단의 등산객들이 정상 표지석과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부슬비는 멎었지만 안개는 여전히 사방을 가렸다.
나는 정상 한 구석에서 점심밥 먹는다. 이런 날 혼밥을 먹는 건 쓰디쓴 입맛이라 힘든 산행의 한 과정이다. 그 힘듦
을 한 숟가락이라도 줄이고자 먼저 밥 뭉텅 덜어내 고수레한다.
하산. 조무락골로 가는 1.5km가 줄곧 내리막이다. ┣ 자 애기봉 갈림길까지는 평탄하다가 오른쪽 조무락골로 가는
길은 엄청 가파른 내리막이다. 실운현에서 만났던 부부 등산객을 다시 만난다. 그새 반갑다. 자기들이 온 임도 주변
에도 닻꽃이 많더라고 한다.
내 그들 앞서 내린다. 그들도 용수동 종점에서 가평 가는 버스시간이 16시 20분과 18시 10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물 구경하려니 바쁘다. 뚝뚝 떨어진다. 어지럽게 갈지자 코너링하며 돌아내린다. 저절로 내리쏟는 발
걸음을 제동하려니 땀난다. 물소리가 골을 울리는 조무락골이다. 이정표에는 화악산 중봉을 오르는 외길이다. 삼팔
교 5.0km. 계류와 함께 내린다. 물소리 크게 들리는 곳이면 흐릿한 인적이 나 있다. 나도 들른다.
계류 건너 석룡산 갈림길을 지난다. 작년에는 여기에서 계류를 건너지 않고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갔다가 엉뚱한
산길을 오르기도 하였다. 유난히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들여다보니 쌍룡폭포가 틀림없다. 사진은
발로 찍는 것. 그러나 그 관폭대까지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미끄러운 바위절벽을 내려야 한다. 간신히 바위틈에
손가락을 끼고서 내린다. 쌍룡폭포가 마주보기가 어렵지만 미폭(美瀑)이다.
이다음에는 복호동폭포다. 잰걸음 한다. 등로 왼쪽으로 50m 벗어나 있다. 지계곡 옆의 데크로드를 오르면 그 끝이
관폭대다. 석룡산이나 중봉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복호동폭포를 보러 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긴 산행으로
지쳐서다. 오늘도 그렇다. 마지막 할 일로 알탕할 장소를 물색한다. 삼팔교가 너무 멀어서는 다시 땀을 흘릴 것이므
로 1.5km 정도 남겨둔 지점이 적당하다.
등로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명당이 있다. 지난주 도봉산 야유회 산행에서 재미 들렸던 물침대를 다시 맛본다. 그때
와 달리 혼자이니 심심하다. 삼팔교가 가까워지고 계류는 물놀이 즐기는 사람들이 ‘물 묻은 손에 참깨가 달라붙
듯’(소설가 김주영의 버전이다) 다닥다닥 들어찼다.
안개는 걷혔다. 뒤돌아보는 화악산 산릉도 맑다. 날씨가 이러다니 조금은 아쉽다. 땡볕이 가득한 대로다. 용수동
종점. 목동터미널 가는 버스시간이 1시간 가까이 남았다. 등산객들 배낭이 주인 대신 줄선다. 벌써부터 긴 줄이다.
28. 북봉 주변
29. 까실쑥부쟁이
30. 조무락골
32. 쌍룡폭포
33. 복호동폭포
34. 조무락골
첫댓글 처음보는 닻꽃을 보느라고 산행기를 숨가쁘게 읽어 내려 갑니다 아름답다는 말보다 신비로운 꽃이군요 선배님께 감사 드립니다 매번 산행기보면 글솜씨에 반하고 우리나라 산천에 또 감탄합니다
모쪼록 건강 하셔서 많은곳 보여주시고 덤으로 아름다운 꽃들도 볼수있게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화악산은 여름철 야생화의 천국입니다.
너른 풀숲을 수놓은 까실쑥부쟁이도 장관입니다.
그 화악산을 생각하면 기분이 상쾌합니다.
예쁘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