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목요일>(2023. 4. 27. 목)(요한 6,44-51)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47-51).”
여기서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라는 말씀은,
“나를 믿는 사람에게 내가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표현만 보고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자동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어떤 권한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자비’이고 ‘은총’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권한이 없습니다.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겸손하게 주님께 간청할 뿐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라는 말씀은, “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라는 뜻입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라는 말씀은, “너희 조상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양식을 받아먹었으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았다.” 라는 뜻입니다.
‘만나’는 분명히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어죽지 않게 하려고 하신 일이지만,
사람들이 ‘만나’가 나타내는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그리고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만 집중했다면,
‘만나’를 통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하루치 식사로만 생각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는 말도 없고, 하느님을 찬양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들이 원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것은
아니고, 자기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것은 하느님 쪽의
의무이고, ‘만나’를 받아먹는 것은 자기들 쪽의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은 지극히 오만한 생각이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생각입니다.
‘만나’가 내리기 전에 그들은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탈출 16,2-3)”
이 말은, 이집트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는데, 왜 먹을 것 없는
광야로 데리고 와서 굶어죽게 하느냐는 불평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먼저 하느님께 노예생활에서 구해 달라고
간청했던 사실을(탈출 2,23)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그들은 ‘만나’ 자체에 대해서도 불평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
보이는 것은 이 만나뿐, 아무것도 없구나(민수 11,4-6).”
(이 말은 날마다 ‘만나’만 먹으니까 지겹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주셨는데도
감사드리지는 않고 그런 불평만 했으니,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얻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50절).” 라는 말씀은, “나는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라는 뜻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51절).” 라는 말씀은, 앞의 50절과
‘뜻이 같은 말씀’인데, 같은 말씀을 반복하신 것입니다.
‘살아 있는’이라는 말은, 물질로서의 빵과는 다르게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주는 빵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분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력도 영원히 살아 있는 힘입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라는 말씀은,
“나 자신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나의 살이다.”는, 뜻으로는 “나 자신이다.”입니다.
<이 말씀은 ‘성체성사’를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 빵은 바로 나 자신이다.” 라고
표현하시지 않고 “나의 살이다.” 라고 표현하셨을까?
‘살’은 ‘몸’을 더욱 강하게 표현한 말이고, ‘몸’은 여기서는
성체성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당신의 ‘생명력’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님의 몸을(생명력을)
받아먹게 되고, 그 힘으로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성체는 받아먹기만 하면 누구나 무조건 자동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마법의 음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체를 제대로 받아먹으려면, 우선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려고,
즉 하나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고,
예수님 안에서, 또 예수님과 함께 살아 있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 없이 수동적으로 성체를 받아먹기만 한다면,
‘만나를 먹고도 죽은’ 구약시대 백성들처럼 되어버릴 것입니다.
[출처] 부활 제3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