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일
점심 식사 후 전찬균 형님과 전찬흥 회장님과 함께 爲先사업 선진지를 견학해 보게 되었습니다.
점심시간 전 간식시간에 찬균 형님이 설명하기를 전주이씨들이 종인(宗人)들을 잘 설득하여서 종중 봉안묘를 설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소요 예산은 약 2억 5,000만 원이 들었다고 하고, 저명(著名)한 지관(地官)을 초청하여 강릉지방 사천부터 옥계까지 조사하여 소점(所占)한 곳이 성산면 보광리였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오늘 답사해 보고 싶었습니다.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산 219-1( 모란반개형 )
찬흥 회장님은 오후에 바쁜 일이 있어서 지번을 알려주면 찾아가겠다고 하였으나, 함께 하게 되었다.
차를 타고 대관령 옛길과 보광리 갈림길에서 건너다보이는 묘소를 보고 모란반개(牡丹半開)형이라고 설명하였다. 좋은 자리이고 초계정씨 묘소라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모란반개(牡丹半開)형 명당을 이야기하면서 화제(話題)가 강릉지방의 풍수로 바뀌었습니다.
강릉지방에 오랫동안 세거(世居)해온 집안들은 대개 강릉시 성산면 성산과 금산에 묘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찬흥회장님의 증조부도 오늘 답사가는 성산면 보광리 사동에 묘소가 있다고 하였으며 저의 5대조도 이웃인 성산면 관음리에 묘소가 있습니다.
마치 용인에도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으로 살아서는 진천 땅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 땅에 묻힌다는 것처럼 강릉지방에 사람이 살기에는 모산(茅山)과 강릉시 구정면 학산(鶴山)이 제일 좋고 죽어 묻히는 땅은 강릉시 성산면 성산(城山)주령(主嶺)이 제일 좋다.라는 “生居茅鶴山 死居城山地”라는 입소문이 전해옵니다.
모란반개(牡丹半開)형 명당을 지나서 성산면 보광리 옛 보광초등학교 부근을 지나 ‘연곡’쪽으로 약 200m 지점에서 차 한 대만 다닐 정도의 농로에 들어섰었습니다. 표지석에 ‘뱀골’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일명 ‘巳洞’이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교행이 거의 불가능한 도로를 약 800m 지점을 지나 차를 세웠습니다. 꼬불꼬불한 도로를 오는 동안 차를 만날까도 걱정이 되었지만, 내비게이션에 지번을 치고 찾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꼭 안내자가 있어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를 세운 곳에서 한 300m 지점에 뚜렷이 보이는 묘소가 있었는데 묘소 밑 둑에 영산홍과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저 묘소가 오늘 가는 목표인가? 궁금하였는데 정선전씨 석릉군파 정랑공 집안 묘소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210-1 (천마승천형)
차에서 내려 약 100m를 올라가면서 올라가는 길이 마치 오대산 염불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연상되었다. 첫눈에 거의 왕릉 규모의 웅장(雄壯)한 묘소가 나타났다.
따뜻한 남향이고 묘소2기와 옛날 비석들은 모아놓은 장소와 산신제를 올릴 수 있는 공간과 재실 역할을 하는 컨테이너 등도 배치되어있었다. 후손들의 정성이 제삼자인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약 216기를 안치할 수 있는 규모이며 지금은 약 100여 기가 안치되었다고 설명 들었습니다.
시향을 올릴 대상은 17위인데, 옛날에는 1년에 17번 모시던 시향을 1년에 1번을 모시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제 온 비가 미세먼지를 청소하였는지 깨끗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이 장소를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지관(地官)이 강릉지방을 많이 다녀보고 최종 소점(所占)한 곳이라는데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묘소 뒤편은 소나무가 둘러싸였고, 측백나무를 촘촘히 심어서 산짐승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측백나무는벌레를 죽이는 특이한 향이 있기 때문이며, 무병장수와 행복, 번영을 기원하는 나무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묘소 주위에 많이 심고 있다.
후일담으로 들은 바로는 2011년부터 영동지방에 묘지로 공인중개사에 나와 있는 모든 물건을 파악한 후, 이건호씨가 집안의 지관(地官)1명을 대동하고 일일히 후보지 여러 곳을 눈을 헤치면서 비를 피하며 모두 답사하였다고 합니다. 구묘가 있던 곳 등은 제외하고 후보지를 몇몇 곳으로 압축한 후, 다른 저명한 지관(地官)을 모시고 간산하여 최종 후보지를 선정하였다고 들었습니다.(20,000’㎡ 구입하여 1,000㎡에 묘지 조성)
묘소를 선정하는데 1년 정도 소요되었고, 공사기간도 1년 정도 소요되어서 2013년에 완공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지관(地官)이 "이 곳은 날개 달린 말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명당 즉 天馬昇天 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장지비(天藏地秘) 즉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겨주었다가, 후손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 비로소 세상에 드러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설득하고 추진한 사람은 중학교 교장을 역임한 ‘이건호’ 氏라고 하였다. 찬균 형님은 그분이 사심 없이 공심(公心)을 가지고 추진했기에 여러 사람의 이견(異見)을 통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분은 거의 매일 빠짐없이 출근하여 묘소를 살펴보신다고 들었습니다.
돈도 문제지만, 정성과 공심(公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 묘지에 심으면 안 되는 나무
https://blog.naver.com/abirra26/22164478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