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회사에서 퇴근하고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를 무엇으로 할지 생각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먹거리는 많았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뭘 먹지? 고민했다. 냉장고 안쪽을 샅샅이 뒤졌더니 콩나물을 담은 비닐봉지가 보였다. 1주일 전에 사놓은 것이다. 오늘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 그래! 콩나물을 쪄서 무쳐볼까. 봉지엔 반쯤 정도 남아있어 한 번 먹기에는 꽤 많은 편이지만 모두 삶기로 하였다. 아무리 냉장고라지만 일주일 이상 넣어두면 식재료가 상할 수 있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콩나물을 깨끗하게 씻어서 냄비에 넣고 물을 반쯤 부은 후 가스 불을 붙였다. 양이 많지 않아 이내 ‘쉬∼’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뚜껑 틈으로 ‘피시 쉬∼’ 김이 빠져나온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구수한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했다. 펄펄 끓는 콩나물을 싱크대로 옮겨 찬물로 샤워를 시켜 헹구었다. 뜨거운 물에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웬걸,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맛보기 위해 몇 가닥을 입에 넣고 씹었더니 사각사각하는 식감이 살아있다. 일단 성공이다.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털어냈다. 잘 익은 콩나물을 맛있게 먹으려면 양념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해본다. 통마늘을 으깨고 대파를 송송 썰어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함께 버무린다. 참깨를 뿌리고 맛을 보았더니 살짝 싱겁고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뭔가 빠진 것 같다. “뭐지? 그렇지! 멸치 액젓이 빠졌구나.” 그런데 그게 없으니 어떻게 한담? 가게에 가서 사기도 그렇고…. 대체품으로 뭐 없나 살폈더니 새우젓이 떠오른다. 맞아! 냉동고에 있는 새우젓과 젖 국물을 반 숟갈 정도 떠서 콩나물무침에 투입했다. 그리고 맛을 보았다. 와! 의외로 맛있다! 어! 새우젓도 괜찮네. 스스로 감탄했다. 내가 이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아! 이래서 요리하는 분들이 “요리는 창작(創作)”이라고 하는구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게 너무나 대견스럽다. 과연 일품이었다. 저녁 식사는 대성공이었다.
콩나물은 우리가 모두 좋아하는 요리 재료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콩나물을 키워 식재료로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어릴 때부터 밥상에는 늘 콩나물 반찬이 빠지지 않았다. 김치만큼이나 비중 있는 요리였다. 콩나물국, 콩나물무침, 콩나물밥, 생선찜 등등. 지금은 일정한 양이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것을 시장에서 구매하고 있지만, 어머니 시대엔 집에서 콩나물시루를 이용하여 직접 재배하여 먹거나, 동네 구멍가게나 길 한 모퉁이에서 시골 아낙네가 머리에 이고 온 콩나물을 사 먹었다. 나의 어머니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 무렵부터 이듬해 겨울이 끝나는 시점까지 거의 매일 손수 콩나물을 길렀다. 콩나물시루는 언제나 방 윗목에 우리 집의 주인처럼 턱 버티고 자리 잡았다. 그것은 가장 소중한 보물 상자였다. 흙으로 빚은 큰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 위에 ‘Y’ 자형 나뭇가지를 거치한 다음, 시루를 얹어 그 안에 짚을 깔고 싹을 틔운 콩을 편편하게 깔아 하루에 몇 번씩 항아리에 있는 물을 바가지로 퍼서 시루를 덮고 있는 까만 보자기 위에 골고루 뿌렸다. 그러기를 한 일주일 하고 나면 노란 콩 대가리와 날씬하면서도 통통하게 뻗은 하얀 줄기, 그리고 붓끝처럼 날씬한 뿌리가 보였다. 뽑아도 뽑아도 줄지 않는 마술 항아리 같았다. 까만 보자기를 열면 노란 콩이 빽빽하게 알알이 들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백만 송이 황금 장미처럼 보여, 부자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찬 기운이 감도는 겨울철, 따뜻하고 시원한 콩나물국에 밥 한 덩이를 말아 김장 김치와 함께 먹으면 더 이상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이런 맛에 콩나물 요리를 좋아하는 게 아닌지. 제사상에 빠질 수 없어 명절이나 기제사가 다가오면 더 많은 콩나물을 만들었다. 한여름에도 기제사가 있는 날이면 콩나물시루를 마련하였다. 이를 보고 조상님 기일(忌日)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기도 했다.
나는 콩나물 요리를 좋아한다. 술 먹고 난 다음 날 아침의 콩나물국은 필수다. 콩나물 외에 다른 식재료를 넣지 않고 끓여도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나의 내장(內臟)을 푸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또 적당한 반찬거리가 없거나 입맛이 없을 땐 콩나물밥을 해 먹는다. 일반적인 밥을 할 때보다 밥솥에 반가량 물을 적게 붓고 쌀을 앉힌 다음 콩나물을 얹어 열을 가하면 맛있고 구수한 콩나물밥이 탄생한다. 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입맛이 확 돌아온다. 잘 익은 김장 김치와 먹으면 그 맛은 배(倍)가 된다. 김장 김치와 콩나물을 함께 넣고 끓인 김치 콩나물국은 얼큰하고 시원하다. 전주 콩나물국밥은 김 가루와 달걀까지 넣어주지만, 나에게는 사치다. 나는 그저 콩나물과 김치만 있어도 족하다. 비빔밥을 만드는데 콩나물이 빠지면 안 된다. 콩나물 없는 비빔밥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전통적인 먹거리로서 자리매김한 콩나물을 조금 비하하는 듯한 비유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콩나물 머리를 콩나물 대가리로 표현한다든지, 아침 출근 시 지하철과 버스에 빽빽하게 사람들이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콩나물시루 같다든지 하는 표현들. 나도 가끔 콩나물 대가리라고 사용하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대가리’라는 표현이 ‘머리’라는 표현보다 좀 더 맛깔스럽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음치(音癡)나 음악에 자신이 없을 때 음표라는 용어 대신 콩나물 대가리라고 말한다. 나쁜 감정이 있어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콩나물을 먹을 때마다 조금 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콩나물을 나물로 분류하는 이유는 곡식인 ‘콩’에 물을 주어 하얀 줄기와 잔뿌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금치나 무, 배추 같은 채소는 자기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콩나물은 ‘콩’에 보통명사 ‘나물’을 붙여 나물의 자격을 득한 게 좀 특이하다. 그리고 어두운 음지에서 자랐지만, 사람들에게 인기가 너무 좋아 다양하게 쓰이기에 과히 마당발인 것 같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다른 나물들은 머리가 없는 데 비해, 콩나물은 머리가 있다는 점이다.
오늘 저녁 1인용 혼밥을 준비하려고 분주히 주방에서 움직이는 나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어이, 친구야! 너 혼자 저녁밥 먹으려고 그렇게 부산을 뜨니? 귀찮지 않아? 웬만하면 그냥 식당에 가셔 시켜 먹어. 아니면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사 먹든지.” 그래 네 말도 맞아. 그렇게 하면 시간도, 노력도 절약할 수 있지. 그런데 내 성격이 그런 걸 어떻게 해. 이 나이에 있는 것이라곤 시간밖에 없으니 말일세. 요리하면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괜찮아. 그래서 난 오늘 대단히 기뻤다. 콩나물무침에 멸치 액젓이 없으면 새우젓이라도 사용하면 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으니, 말이야. 콩나물무침의 맛도 좋았고 창작(創作)의 즐거움도 누렸으니! 나 하기 나름이 아닐까.
(2024. 5)
첫댓글 콩나물 ㅡ 귀중한 레시피네요. 부엌을 점령하고 즐기는 월몽의 모습이 유달리 부럽고 또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ㅡ멋진 수필입니다.
월몽의 성실함은 반찬만드는 법에서
도 역역합니다.
문우회 모든 회원들이 문우회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가 좀더 애정을 갖고
성실했으면 합니다.
갈헌이 우리곁을 떠난후 문우회 결
속력이 느슨해진것같아 안타깝고
나의 총무직책 수행여부는 좀더
시간을 갖고 고민하고자 합니다.
콩나물국, 콩나물밥, 콩나물무침.
두부, 청국장과 함께 어린시절이나 지금이나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닌가 싶어요.
어린시절 안방 윗목에 자리하던 콩나물시루에는 언제나 콩나물이 자라고 있었지요.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콩나물국. 그런데 아내와 나의 요리레시피가 달라 문제입니다. 난 기름을 넣고 폭 삶아서 물렁해진 콩나물로 끓인 건데, 아내는 콩나물을 넣고 바로 끓여서 아삭아삭하는 걸 좋아해서, 한번은 물렁 꽁나물국, 한번은 바삭 콩나물국을 번갈아 끓여 먹는답니다ㅎㅎ~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