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통제사)303년을 소재로 쓰인
한국문학사상
최초의 서사 시조집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화도)부문 당선하고 1983년 전국만해백일장에서 시조 단수로
제5회 만해대상을 받은 이국민시인의 제 2 시조시집
“통일의 바다”(세종출판사,240페이지 4*6판. 정가: 만원)가 출간되었다.
통제사303년 서사 시조집[통일의 바다]은 통제영(통제사)303년을
소재로 쓰인 한국문학사상 최초의 서사 시조집이다.
이詩人은 분단된 현실을 제1대 통제사 이순신장군~제209대 통제사 홍남주 장군의
일생을 재조명하고 그들이 바다를 지킨 것은 우리민족과 통일된 바다를 견지하고자 하는
약속으로 우리에게 통일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209수에 달하는 보기 드문 현대시조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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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책의 서평을 맡은 이연지 교수의 글이다.
시조시집“ 통일의 바다” 서평
이연지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현재 중국 호북사범대학교재직)
“통일의 바다”는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조선수군 제1대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장군부터 조선수군통제영이 폐영된 1895년
마지막 통제사 홍남주 장군까지 303년의 역사를 한편의
대 서사시로 쓴 이국민(李國旼)의 시조(時調)시집(詩集)의 제목이다.
작가 이국민(이하 李詩人)은 이 시집을 통하여 한반도의 통일의 중요성을
바다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사무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통일된 조국의 통일된 바다야말로 우리 민족의 살길이며 우리들이 실현시켜야 할
이순신과의 언약임을 누누이 역설하며 긴 서사시의 맥을 끝까지 이어 나간다.
~중략~ 내가 죽은 곳은 노량바다가 아니다
차라리 숨기고자 살아서 욕될 목숨
동짓달 지킨 새벽바다 하나뿐인 이 약속(約束). <1. 이순신>
즉 말해서 통일의 바다는 순국한 이순신과 우리 민족과 무언의 약속이 되는 셈이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순신(李舜臣)은 424년전 한국 남해노량 앞바다에서
왜적을 쳐부수다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약속의 날(통일된 바다)을 기다리며 살아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시인은 통치권자의 잘못된 명령이 많은 국민을 주검으로 몰아넣어
시대적 군주의 착오를 특별히 경계했다. 아직도 지휘자의 잘못이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는 사고에 대한 고찰을 제2대 통제사 원균에 대한 시조에서도 역력히 볼 수 있다.
~ 중략 ~ 오판한 명령이 죽인 삼만(三萬)명(名)의 젊음~
~ 중략~ 듣지 않은 수부(水夫)의 외침. <제2대 원균>
그렇게 산화한 젊은 백성들의 죽음을 기억하거나 추모하거나 하는 일도 적어 애닮파하고
죽음에 대한 보상 또한 없음을 이시인은 시로써 나타내고 있다.
이 시집은 바다에 대한 염원이므로 특히 태풍에 대한 싯구가 많다.
그러나 이 태풍은 기상의 태풍이기도 하고 특히 정치 당쟁의 소용돌이에 많이 비유하였다. .
사화(士禍)는 “사림(士林)의 화(禍)”의 준말이다. 이시인은 이 사화를 지키고자 하는
바다의 태풍에 많이 비유하였다. 유명한 한국의 사라호(Sarah태풍(颱風)1959년)태풍을 연상시킨다.
이 당쟁에 의해 잡혀가서 옥사한 통제사도 적지 않다. 통일 바다를 지키는 통제사들의 한스러운 역사를
이시인은 시조로 읖고 있다. 오직하였으면 돌이 되어 바다를 지킨다 라고 할 정도였다.
사화(士禍) 태풍 때마다 죽어나간 통제사
파도는 아랑곳 없이 방파제를 부순다
차라리 돌벅수로 남아 동남 바다 지키네. <제77대 류성추>
~ 전략~ 첫눈 맞으며 부임 얼음 녹기 전에 떠나네
돌벅수 앞에 술잔 따르고 봄꽃 따라 훌훌 떠나네.
<제78대 원덕휘>
한 겨울에 부임하여 정변(政變)에 따라 봄도 오기 전에 이임해야 하는
통제사들이 차고 찬 바다를 지켜내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이시인은 일제(日帝)가 다시 한반도를 넘어다 볼 계기를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이제는 하나의 바다도 아닌 분단된 바다를 가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왜란(倭亂)보다 더 험한 남북의 내란(內亂)속에
칼끝은 동족(同族) 향해 내려치고 있다
한바다 지키려 해도 밀려드는 일만 파도(波濤). <제20대 이수일>
통일의 바다는 내분이나 내란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임을 이시인은 시조로 말한다.
또한 조선 역사가 바다로 향한 전진이 아닌 후퇴였음을 80대 통제사의 시조 종장에서 여실히 보여 준다.
~ 중략 ~ 판옥선(板屋船) 방향키를 거꾸로 돌려 놓은 역사(歷史)의 누명(陋名).
또한 이시인은 36대 변사기(邊士紀)통제사의 명단(名單) 삽입(揷入)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더하거나 감하지 않고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에 남기기를 원했다.
~ 중략 ~ 역사는 내 몸과 이름 돌에 묶어 수장(水葬)시켜 버렸네. <제36대 변사기>
조선삼도수군통제사는 209대까지 197명의 통제사가 부임하였다.
12명은 재(再)부임(赴任)받았고 13명의 통제사가 순직하였다.
이시인은 부임하자마자 순직한 통제사의 운명도 애닮파하였다.
~ 중략 ~ 춘삼월(春三月) 도착한 세병관(洗兵館) 다시 못 보는 잔인한 4월.
<제96대 신익하>
303년 동안(제1대 이순신통제사~ 제209대 홍남주통제사) 197명의
통제사들이 통제한 한반도의 바다는 정변의 태풍 속에서도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물 건너 일본의 재침략 전쟁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 중략~ 물 건너 왜적은 선박(船舶)가득 무기 사들이고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다 떠나보낸 세월 바다. <제97대 남태징>
이시인은 조선이 사색당파의 분쟁을 일삼을 때 물 건너 왜구는
치밀한 전쟁준비와 국방에 심혈을 기우렸다는 것이며 왜적이 철선(鐵船)을
조선(造船)할 때 우리의 현실은 어떠했는지 아래 시조가 보여준다.
~ 중략~ 판옥선(板屋船)만들 나무 조차 없는 민둥산~
텅텅빈 해방(海防) 어구(漁區)에 빈 배 한척 두둥실.
<135대 이창운>
우리의 현실은 민둥산에 군함 하나 제대로 만들 목재 구하기도 힘들었고 그에 대한 대책 또한 가지지 못했다.
즉 준비 없고 발전 없는 해양 국가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한 현실을 맞는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울삼아 철저히 준비하고 철저히 대비하여야만
통일된 조국 통일된 바다를 가질 수 있는 민족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반적으로 이시인의 시는 바다수호와 해양국가로서의 발전을 노래했다.
그렇지 못했다면 그 한과 아쉬움을 시에 담았다.
303년간 해양수호의 일익을 담당했던 통제사의 한을 빌어 통일된 바다와 미래를 부르짖고 있다.
자유시가 아닌 민족 정형시(定型詩)인 시조를 빌어 서사적으로 이 시집을 완성하였다.
이 글에 나타난 통제사의 명단이나 업적 또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규장각의 자료와 부합되며
이를 고증하는 작업도 진행되었다는 사실도 밝혀 둔다.
역사와 후세 통일교육에 덕이 되는 한국초유의 바다 서사시조시집의 탄생은
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특별히 기뻐할 만한 일임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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