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70년 다시 꿈꾸는 미래 '''
6 . 25의 운명을 바꾼 춘천대첩과 강릉전투◁
격전 중심 강원, 북한군 발 묶은 육탄방어 전쟁 명운 갈랐다
북한 작전 무력화 남하 지연 '춘천대첩' 6사단 치열한 전투 병력 증원 . 퇴로 차단
평화문화기념관 건립 추진위 이달 출범
북한군 수륙양면 협공 막은 '강릉 전투' 8사단 남침 방해 . 병력 분산투입 유도
밀고 내려오고 치고 올라가기를 수차례, 6 . 25 전쟁은 뺏고 빼앗기는 일의 연속이었다.
한반도의 허리, 강원도는 언제나 그 격렬하고 치열했던 전투의 중심이었다. 개전 초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한 춘천지구전투와 강릉전투는 전쟁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전투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춘천지구전투
6 . 25전쟁에는 '3대 대첩'이 있다. 북한군의남침 초기, 치열한 전투를 벌여 북한의 남하를 지연시킨 '춘천 지구전투' 춘천 대첩이 그 중 하나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5시, 북한군은 춘천 일대의 국군 6사단 전방 경계진지를 향해 30분간 공격준비사격을 감행했다.
6 . 25 전쟁의 시작이다. 국군 6사단 예하 7연대는 춘천, 2연대는 홍천에 배치된 상태였다.
북한군 2사단 6연대는 당시 6사단에 없던 '자주포' 등 화력에서 국군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태였다.
당시 국군은 소총과 105mm 견인포만이 유일한 장비였다. 북한군은 자주포를 앞세워 국군 7연대 1대대가 지키고 있던 옥산포를 공격했다. 우리 군의 위기였다.
서울이 공격에 대비할 시간을 벌어줘야 했다. 6사단은 백병전까지 불사하며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장비의 열세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이에 당시 열세의 화력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육탄 방어'를 펼친 특공대가 만들어졌다.
춘천대첩의 영웅으로 손꼽히는 심일 소령(당시 소위), 특공조 김기만 중사, 박태갑 . 홍일열 . 조군칠 . 하사, 심규호 일병은 수류탄과 화영병을 들고 육탄으로 북한군 전차를 격파, 일부 자주포를 노획하는 성과까지 거둔다.
전세가 불리해진 북한은 26일 국군에 저지돼 소양강을 건너지 못했다.
27일에서야 북한군은 화력을 집중해 간신히 소양강을 넘었다.
국군 7연대는 원창고개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수차례 막은 뒤 29일 홍천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12사단은 홍천으로 향했으나 역습과 후퇴를 반복하는 전술로 맞선 국군 2연대에 막혀 약 5일이 지난 30일이 돼서야 홍천을 점령할 수 있었다.
국군 6사단이 6일 동안 춘천지구 일대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결과 북한군은 춘천-홍천-이천-수원 우회 기동시켜 국군의 병력 증원과 퇴로를 차단한다는 작전계획에 큰 차질을 빚었다.
이에 북한군은 국군 포위 계획이 어긋나자 2군단장과 제2사단장, 제7사단장을 해임하기도 했다.
춘천지구 전투는 전쟁 초기 국군이 유일하게 대승을 거둔 전투다.
북의 공격을 3일간 지연시켜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참전용사들은 "춘천 지구 전투가 3대 대첩'으로 불리고 있지만 다른 전투(인천상륙작전, 낙동강지구 전투)와 다르게 기념관 하나 없는 상태"라며 '춘천대첩 기념 평화문화기념관'건립 추진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위원회는 이달말 공식 출범식을 가지고 본격 활동에 돌입한다.
■ 강릉전투
강릉전투는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강릉에서 국군 제8사단이 38선을 넘어 남침한 북한군 제5사단 등과 벌인 전투로 우수한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의 수륙 양면에 걸친 협공을 당해내며 3일 동안 강릉을 지킨 전투다.
6월 25일 해가 뜨기 약 1시간 전인 이른 새벽 강릉 남쪽 정동진리의 해변마을인 동명동에 갑자기 수많은 북한군이 나타났다.
북한군은 마을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마을 옆 해안에 접안한 수송선에서 하역한 탄약과 보급품을 뒷산으로 운반시켰다.
이날 오전 7시. 북한군의 제766부대가 삼척 남쪽의 임원진리에 상륙해 태백산맥으로 침투, 이에 국군은 강릉으로 향한 북한군을 3일동안 저지하던 중 원주로 철수하려다 원주를 빼앗기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판단에 평창으로 철수로를 변경했다.
이로 인해 북한군은 1950년 6월 27일 오후 9시 50분쯤 강릉에 진입하게 됐다.
강릉전투는 국군이 북한군에 밀려 철수했지만 북한군 제5사단의 신속한 남침을 방해하고 평창~영월선으로 병력을 분산 투입하게 되면서 북한군의 포항 진출 시일을 다소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출처-2023년6월26일 강원도민일보- 저작권자/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