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역이 재생산되려면. 역사를 이어가라 1 -메콩강소년(정도연)-
2. 역사를 이어가며 성장해 가는 과정이 있다. 역사를 이어가는 사역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선배 선교사와 약 1년 정도 동역했다. 그분은 나에게 생명, 철학, 사역의 기틀이 되는 공간을 위임해 주었다. 그분은 성숙하지 못한 나에게 사람도, 현장도, 중요한 선교의 가치관도 위임해 주었다. 나는 선배 선교사의 유산을 발판 삼아 거룩한 영적 공동체의 가문을 세워가야 했다.
메짠 학숙소의 15명의 아이들과 전도사 부부, 신학생 한 명, 5개의 개척 교회, 옴꺼이 전도인 훈련생 6명과 5개의 개척 교회를 위임받았다. 태국 총회(EFT) 관계자와 선교사 비자를 빌려준 단체(SEACS), 여러 한국 선배 선교사님들, 심지어 태국의 중요 한인들과의 만남까지 위임받았다.
나는 어쩌다 나에게 선교사 비자를 빌려준 미국 선교부(SEACS)의 책임자가 되어 선교사 비자 15개를 관리하며 낯선 나라 선교사들까지 섬기는 일을 16년째 하고 있다. 심한 곤경에 처했던 이 선교부 산하에 있는 ‘몽족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 이어가려고 한다.
선배님이 미국으로 가기 전, 태국에 온 지 1주일 된 나를 두고 말했다. “정선교사, 팀 선교가 제대로 되려면 제정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정이 다르면 마음도 달라집니다. 모금은 각자 하지만 태국에서의 통장은 하나로 통합해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위임받은 선교 철학을 35년째 지켜오고 있다. 이 철학을 지키려다 공동체가 5차례 분열하는 아픔을 겪었다.
3. 역사를 위임받아서 해야 할 일 가운데는 내가 창의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도 있었다. 나는 물려받은 믿음의 유산을 발판삼아 남의 터가 아닌 곳에서 교회 개척을 이어갔고, 지금도 제자들과 함께 무교회 지역에 직간접적으로 교회 개척을 해가고 있다. 무지의 벽을 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시도했다. 메짠, 옴꺼이, 미얀마 동북부를 비롯 8개의 교육 공동체로 확장했고, 도시교회 5개와 부족 마을 40여 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문명의 이기에 맞서는 정신 건강을 위해 시작한 음악 교실이 치앙마이에 음악학교(SAS)가 되어 한국 선교사에게 자립의 기회를 주고, 현지인 고용 창출도 이루었다. 여러 나라의 아이들에게 음악교육의 기회를 주고 있다.
언어와 문화의 벽을 극복하기 위한 선교사 양성을 위해 한국 젊은이들을 현지 대학에 보내는 사역도 했다. 계획한 결과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아니면 맛보지 못할 은혜도 경험했다. 고용 창출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반복되는 실수에도 농업, 축산, 보석 컷팅, 식당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다. 우연한 기회를 살려 시작한 미용 교육을 통해 현지인 세 가정과 도시교회 두 곳이 자립하는 은혜를 맛보았다.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으나 한인들을 위한 사역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치앙마이 음악학교에 한국 아이들이 나오면서 한국어 예배를 드리고, 한인 2세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시작한 것은 선교의 큰 전환점이 되어, 거시적 선교를 위한 배경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있다.
물려받은 사역의 현장이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국경이라는 배경을 살려 미얀마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70년이 넘게 민족 자주독립 투쟁을 해온 여러 소수민족 자녀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워, 저들의 생명을 보호해 온 것은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 연장선에 2021년 현지 목회자의 통 큰 결단과 헌신으로 카렌족 접경 지역인 ‘메썻’에 헤브론 공동체를 개척하게 되었다. 시내 중심이지만 풀만 무성한 늪지대를 다듬어 교육 공동체의 기초를 닦은 후, 올해부터 선교부 최고 베테랑 선교사에게 위임하게 되었다.
메싸이 국경에서 일하는 미얀마 근로자 자녀들을 위한 ‘유아원’은 은혜와 은혜가 쌓인 곳이다. 그 은혜의 구슬들을 꿰매 보석으로 다듬기 위해 40년 이민 목회 경험에, 유아교육 전문 교육자를 절친으로 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성장과 성숙을 향해 분주한 모습을 보고 있다.
첫댓글 하나님나라의 역사의 한 부분을 이어가도록 은혜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