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는 환한 낮이었다. 책상의 시계로 고개를 돌리자 시침이 9를 가리켰다. 엄마는 내가 나갔는지 집에 있는지도 모르겠지. 나는 이제야 혼자 일어났으니까. 많은 것을 바라는게 아닌데. 그냥 관심 좀 가져주면 안 되나. 조금 씁쓸하다. 한편으로는 짜증도 피어오른다. 왜지? 알람이 울렸을텐데. 이걸로 개근은 물 건너갔다. 절로 인상이 찌뿌려졌다. 어제 비를 잔뜩 맞고 집으로 돌아오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공기가 차갑게 느껴져서 그대로 씻고 잠들었었다. 혹시 모르니 몸살약 하나 먹고.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려 했는데 너무 자버렸다. 몸이 마구 떨려오는게 너무 춥고 힘이 없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이불로 몸을 감싸는데 목이 까끌거렸다. 손에 닿는 피부가 뜨겁다. 기침이 나오려는 것을 가슴을 부여잡고 이를 악물어 참았다. 나는 기침을 시작하면 열이 오르는 체질이었으니까.
충전기에 연결되어 있던 핸드폰을 잡아들자 부재중 통화와 문자 그리고 카카오톡이 장난아니게 와 있다. 전부 학교와 친구들, 반장이었다. 나는 바로 담임의 번호를 찾았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어 그래, 아야.]
몇 번의 신호음 후에 담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쌤."
인사하는데 목소리가 다 쉬었다. 더 말하려다가 기침이 튀어나오려 해 입을 닫았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프니?]
걱정하는듯한 목소리. 남인 선생님이 이정도 반응인데 엄마는 어쩌려나.
"네. 감기가, 좀 심한가 봐, 요. 오늘 학, 교 못 갈것 같아요. 죄, 송해요."
중간중간 기침을 참느라고 말이 끊겼지만 해야 할 말은 할 수 있었다.
[그래, 그래라. 푹 쉬고.]
"네. 안녕히계세요."
선생님들께 살갑게 붙어 떠드는 모습을 만들지는 않은지라 아찔하게 아파오는 머리에 눈을 감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 봐야겠다. 집 주위의 꽤 큰 종합병원이 떠올랐다. 감기쯤이야 매년 꼬박꼬박 걸려왔지만 이번은 뭔가 조금 다르다. 잠시 침대에 엎드려있다 기침이 더이상 참아지지 않자 나른한 몸에 억지로 힘을 줘 일어나 잠옷을 갈아입었다. 아직 반팔을 입어도 될 날씨이지만 몸이 떨릴만큼 추워서 하얀 후드티를 입었다. 어제 책상에 올려둔 지갑을 잡았다가 뻑뻑한 촉감에 물에 흠뻑 젖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지갑 안의 지폐들과 동전, 카드 몇 개를 빼서 작년 생일에 아빠가 국제소포로 보냈던 지갑을 찾아 끼워넣었다. 새 지갑에 가죽이라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가방 같은것은 귀찮아서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나라 주머니가 항상 묵직했다.
한 번 나오니 계속 터지는 기침에 마스크를 한 나는 오빠 방 문 앞에 서 습관적으로 노크를 하려다 멈칫했다. 살며시 귀를 가져다대니 조용하다. 잠시 망설이다가 문고리를 잡아당긴채 돌렸다. 어디선가 이렇게 하면 문을 열깨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들었었다.
여느때와 같이 깔끔하게 정리된 방은 옅은 술냄새가 떠돌아 다녔다. 엄마는 내 것과 디자인은 같지만 색은 다른 침대에 누워 자고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엄마는 알까. 내가 항상 아침마다 당신을 이렇게 본다는 것을.
현관문에 달린 도어락의 스피커 부분을 손으로 막아 소리를 죽이고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힐때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아 손을 댈 필요가 없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것인지 계단의 창문이 열려있어 복도는 꽤 추웠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얇은 바람막이라도 입고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히 들어갔다가 엄마를 깨울까봐 빈 앞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
평일, 그것도 오전의 종합병원은 꽤 한산했다. 여기저기 링거를 꼽고 다니는 환자들과 차트를 들고 조금 급한듯 걸어다니는 간호사 몇 명이 끝이었기에 문에 쓰여진 진료 시간을 다시 보고 와야 할 만큼. 로비의 엘리베이터 두 대 사이에는 각 층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이비인후과는 몇 개의 병실과 한방 치료실과 함께 3층이었다.
"콜록-"
[2층.]
3층 버튼을 누르려는데 기침 때문에 손이 흔들려 2층을 눌렀다. 한 번 더 눌러 취소하고 3층을 누르고 한 손을 목에 가져다댔다. 기침을 참기 위해 내가 쓰는 방법중 하나인 기도를 누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면 숨이 잠깐씩 막히기는 했지만 확실히 기침이 나오지 않아 어릴때 최대한 아픈티를 내지 않기 위해 자주 사용했었다.
"저기...처음 왔는데,"
병원에 혼자 오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혼자 참거나 약만 사먹었던터라 3층에 도착해 접수대에서 주저하며 말하자 간호사가 내게 하얀 작은 종이를 건냈다.
"혼자 오셨나봐요? 이거 작성해주세요."
종이에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키, 몸무게, 전화번호, 주소를 쓰는 칸이 있었다. 나는 간간히 올라오는 기침에 손에 잠깐씩 힘을 주며 간호사가 같이 준 펜으로 칸을 매웠다.
"어- 이름이 '아'에요? 성이 '솔'이고?"
내거 돌려준 종이를 보던 간호사가 자판에 손을 올리다가 멈칫하더니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신기하다는듯 쳐다봤다.
"네."
이런 류의 시선은 조금 불쾌하지만 익숙한 것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이신것 같은데 보호자는 안 오셨나봐요?"
원래 접수할때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었나.
"꼭 있어야 돼요?"
"꼭-은 아니구요, 네. 저기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단순히 오지랖이 넓은 간호사였는지 옆쪽의 '이비인후과'라고 쓰여진 곳을 가리키며 살짝 웃었다. 간섭이 심한것은 알고 있나보다.
------------------------- 이 글은 단순히 소설입니다. 실제가 아닌 허상속의 사건 말입니다. 실제가 될 수 없다는건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냥 단순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첫댓글 혹 의사쌤이.
운명? ㅎ 잘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다리고 있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