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훈타원 양도신 종사ㅡ
주야 24시간을 끊임없이 숨을 쉬듯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 공부하는 시간이 짧고, 공부를 하다 말다 하니 마음에 힘이 쌓여지지 않습니다. 대종사님께서 "공부하는 사람은 항상 북풍이 불어야 한다. 북풍이 불다가 남풍이 불면 얼음이 다 녹아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같이 공부를 하다가 말다가 하면 공부에 진취도 없고 힘이 쌓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종사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삼학 병진하는 공부를 동정간에 간단없이 잘 해야 하겠습니다. 정할 때에는 연구 취사를 떠나지 아니하고 수양을 주로 해서 내 마음이 저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적적성성한 우리의 자성본체에 합치는 공부를 하고, 또는 수양 취사를 떠나지 아니하고 연구를 주로 해서 화두를 들고 우리의 자성 본체를 깨쳐 나가는 공부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삼독오욕이 뿌리채 다 녹아 버려야 자성 본체에 합칠 수도 있고 깨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한 가지라도 남아 있으면 합칠 수도 없고 깨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공이 되어야 합니다. 진공이 되어야 묘유가 나오게 됩니다. 진공이 되도록까지 공부를 해야 합니다. 비었으되 비지 않은 것이 진공(空而不空曰眞空)이라고 했습니다. 진공 가운데는 없는 것이 없이 다 있습니다.(無一物中無盡藏) 마음이 비어야 자성 본체에 합칠 수 있고 그 자리를 깨칠 수도 있으며, 나쁜 습관과 모든 착심이 다 떨어져서 육근동작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라도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동할 때에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동할 때에는 수양 연구를 떠나지 아니하고 취사가 주가 되어 가지고 육근을 동작할 때에 우리의 자성 본체에 비추고 맞추어서 가장 맑고 밝고 바르게 나타내는 공부를 해야 하겠습니다. 천만경계를 당해서 내 마음이 요란하고 어리석고 그름이 일어날 때 잘못을 함부로 범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성 본체에도 이러한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잘 비추어 보고 맞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자성 본체는 원래 청정무애해서 요란할 것도 없고 고요할 것도 없으며 밝을 것도 없고 어두울 것도 없으며, 그를 것도 없고 바를 것도 없으며 없다는 것도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저 허공에서 홀연히 검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스스로 요란하고 어리석고 그름이 일어나기도 하고 경계를 따라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시각각으로 모든 죄악을 많이 범하게 됩니다. 그러니 경계를 당할 때마다 늘 자성 본체에 비추어 보고 맞추어 보는 공부로써 몹쓸 습관을 고치고 천만 경계를 다 이겨야 하겠습니다.
정할 때 자성 본체에 합치고 깨치는 공부도 어렵지만 동할 때 비추고 맞추어서 맑고 밝고 바르게 하는 공부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자성 본체에 합치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는 오래오래 두텁게 쌓인 업장이 녹아지지 아니했기 때문이고, 또는 깜짝놀라는 각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라야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또는 참고 견디는 공부를 오래오래 해서 기질변화가 완전히 되기까지 계속 공부를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일념만년一念萬年이면 성불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정할 때 합일하는 공부와 동할 때 비추고 맞추는 공부를 오래오래 게속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곧 자기가 자기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훈련시키지 아니하면 남이 나를 훈련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공부를 한다고 해도 별 진전이 없는 것은 진실로 자기 훈련에 힘쓰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밥도 먹지 아니하면 죽습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실지로 공부를 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대종사님의 회상을 만난 보람도 없습니다. 천불만성千佛萬聖이 출세하셔도 공부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ㅡ출처 : 양도신 著 「대종사님 은혜 속에」 '대보은자가 되는 길' 중에서 발췌 요약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