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475)/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과 붉은 광장
(Kremlin and Red Square, Moscow; 1990)
모스크바 시[City of Moscow]에 위치한 크렘린(Kremlin) 궁전은 14~17세기 러시아와 외국의 뛰어난 건축가들이 건설한 궁전으로 대공이 거주한 왕실이자 종교적 중심지였다. 크렘린 궁전은 13세기 이래로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크렘린 궁전 성벽 아래 붉은 광장[Red Square]에 있는 상트 바실리 대성당[Saint Basil’s Basilica]은 러시아 정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이다.
13세기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를 건설할 때까지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은 러시아 역사의 주요한 사건들과 직접적이고 분명한 연관이 있는 장소였다. 크렘린 궁전 성벽 안에는 다수의 독특한 건축물과 조형 예술의 걸작이 있다. 이를테면 수태고지 교회[Church of the Annunciation], 성모 승천 대성당[Cathedral of the Dormition], 천사장 교회[Church of the Archangel], 이반 벨리키(Ivan Veliki) 대제의 종탑같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종교 기념물이 있다. 크렘린 대궁전과 성벽 안에는 성모 마리아 탄생 교회[Church of the Nativity of the Virgin; 1393]와 테렘 궁전[Teremnoi Palace] 같은 기념물이 있다. 붉은 광장에 있는 상트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 정교회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 기념물이다. 러시아 건축물은 크렘린 궁전 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은 1156년에 건설되었고, 다른 기념물들과 뛰어난 조화를 이루었다. 1263년에 모스크바 공국이 설립되고, 1328년에 블라디미르(Vladimir) 공국이 모스크바로 이전한 이래로 이곳은 정치, 종교 권력의 중심지였다. 원래 건물 몇 채는 대성당 광장 경계에 있었으나 성모 마리아 탄생 교회 같은 다른 건물은 재건할 때 대궁전 안으로 편입되었다. 총대주교 사원, 17세기에 세운 12사도 교회[Church of the Twelve Apostles] 그리고 특히 성곽 북서 모퉁이에 있는 표트르 대제의 무기고를 재건하면서 궁전은 북쪽으로 확장되었다. 카자코프(Matvey Fyodorovich Kazakov)는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II)를 위해 상원의 삼각 궁전[The triangular palace of the Senate; 구소련(舊蘇聯)의 각료 회의실]을 건축하였다. 상원의 삼각 궁전은 예수 승천 수도원[Monasteries of the Miracle and of the Ascension]과 무기고 사이 북동쪽에 들어섰다. 그러나 예수 승천 수도원과 무기고는 1932년에 철거되었다. 카자코프는 남동쪽에 예카테리나 여제를 위해 소규모의 니콜라이(Nicholas) 궁전을 지었으나 역시 1932년에 파괴되었다. 크렘린 궁전 동쪽 성벽 아래 있는 붉은 광장은 크렘린 궁전과 연결되어 있다. 광장 남쪽에 있는 상트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 정교회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로 유명하다. 상트 바실리 대성당은 원래 카잔(Kazan) 성당과 짝을 이루는 교회였다. 카잔 성당은 포자르스키(Pozarsky) 대공이 폴란드를 상대로 거둔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633년에 ‘고움(Goum)’과 인접한 넓은 지역에 건축하였다. 그러나 카잔 성당은 1930년대 초반에 주변에 있던 수녀원 몇 채와 함께 사라졌다. 크렘린 궁전은 삼각형 모양의 성곽에 둘러싸여 있으며, 성벽에 5개의 문과 29개의 탑을 증축하였다. 1156년에 유리 돌고루키(Yuri Dolgoruki)는 크렘린을 보호하기 위해 모스크바(Moskova) 강과 니에글린나야(Nieglinnaya) 강이 만나는 지점 언덕 위에 목조 요새를 축조하였다. 오늘날 이 요새가 있던 지역은 알렉산드로프스키[Alexander]정원으로 뒤덮여 있다. 14세기에 드미트리 돈스코이(Dimitri Donskoi)가 통나무 성곽을 쌓았고 나중에 처음으로 석조 성곽을 건설하였다. 역사와 배치가 변화함에 따라 프스코프(Pskov), 툴라(Tula), 카잔, 스몰렌스크(Smolensk) 같은 러시아의 옛 성채들이 크렘린을 모델로 하여 건축되었다. 루돌포 피오라반티(Rudolfo Fioravanti)가 1475년과 1479년 사이에 건축한 성모 승천 대성당은 크렘린 궁전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마르코 루포(Marco Ruffo)와 피에트로 안토니오 솔라리오(Pietro Antonio Solario)가 1487년과 1491년 사이에 건축한 그라노비타야 궁전[Granovitaya Palata] 또한 크렘린 궁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같은 시기에 솔라리오는 밀라노(Milano) 기술자들이 세운 원리에 따라 요새화된 성곽의 탑을 쌓았다. 니콜스카야(Nikolskaya) 탑과 스파스카야(Spasskaya) 탑은 모두 솔라리오가 1491년에 건설하였다. 르네상스 건축 양식은 1505년과 1509년 사이에 알레비지오 노비(Alevisio Novi)가 재건한 천사장 교회의 고풍스런 기둥머리와 골격에 뚜렷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