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유학에 대한 나의 로망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유학비자가 나오기 쉽지 않을 거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히즈 대학이 워낙 작은데다 한국어로 수업한다고 하면 더욱 어려울 것이고, 엄마가 공부하러 간다는 핑계로 자녀를 동반해서 무료로 미국 공교육을 시키려는 걸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당시엔 엄마가 본인 유학을 핑계로 자녀를 교육하러 미국에 가는 일이 많았고, 미 대사관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가려내 비자 발급을 거절한다는 뉴스가 종종 보도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자 취득을 도와주는 법무법인이나 유학원에서는 더 안전하게(?)유학비자를 취득할 방법, 예를 들면 먼저 엄마가 가고 나중에 아이들의 동반 비자를 신청하는 것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비자를 받을 자신이 있거나 뭘 알아서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봤을 땐 무모할지라도 믿는 구석은 단 하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내게 다가설 용기를 심어주신 하나님이셨다. 나는 남편에게 당당히 말했다.
“자기야,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비자가 나올 거고, 안 나오면 가지 말란 뜻일 거야!”
단순했다. 하나님이 가라시면 열릴 것이고, 닫으시면 안 가면 그만이었다. 마침내 비자 심사 인터뷰가 있는 날, 서류를 챙겨 대사관에 갔다. 필리핀 여자 부영사가 나를 인터뷰했는데, 준비한 수많은 서류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질문했다.
“유학 가면 공부할 돈이 있나?”
나는 “Yes”라고 말한 뒤 남편은 한국에서 일하고 나만 미국에 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우려했던 질문이 날아왔다.
“당신 혼자 가는가?”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아니, 아이들 셋을 데리고 간다.”
순간 ‘비자를 못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몇 초 뒤 그녀가 경쾌하게 외쳤다.
“오케이~ 굳 럭!”
그걸로 끝이었다. 유학 비자가 바로 나왔다.
대사관에서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받자마자 대뜸 말했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떨어진 거 아냐?”
“아니, 비자 나왔는데?”
“와! 당신 믿음을 내가 인정할게!”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감탄을 연발했다.
그는 당연히 떨어질 거로 생각했단다. 주변에 물어보니 하나같이 “비자 절대 안 나올 거예요”, “세 아이를 동반하는 건 불가능해요. 누구도 떨어졌고, 누구도 떨어졌어요”라는 말만 돌아왔고, 변호사마저 애 셋 딸린 주부가 학생 비자를 받기는 어렵다고 했다는 거다. 기적적으로 비자가 나온 것도 기뻤지만, 더 큰 기쁨은 남편의 말이었다.
“와! 당신 믿음을 내가 인정할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무식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전진했다. 그랬더니 세상 판단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 이 일을 통해 삶의 사소한 부분까지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걸 항상 잊지 않길 기도했다. 그리고 선장이신 하나님께 인생의 방향키를 ‘온전히’ 내어드리자, 다짐했다.
이런 일을 경험할 때마다 나의 믿음은 조금 더 자란다. 일이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면 그게 가장 선한 길이라는 걸 더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내가 계획하지 않았거나, 원치 않는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내가 잘못을 회개해야 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그 일이 생긴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난 원래 ‘어떡하지?’를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다.
매사에 안달복달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하곤 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놀랍도록 대범해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믿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문제가 닥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신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물론 힘들 때도 있다. 말씀대로 살고 싶어서 세상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택할 때 스스로가 바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무얼 원하시는지 알기에 타협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여지없이 평안해진다. 그럴 때 세상은 나를 보며 의아할 것이다.
‘어떻게 저 사람은 저런 상황에 웃을 수 있지? 어떻게 마음을 지키지? 어떻게 저렇게 편안하지?’
세상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평안, 세상은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평안을 나는 하나님 안에서 누린다. 그게 바로 ‘진짜 축복’이리라.
낯선 타지에서 나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그리고 매 순간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했다. 물론 모든 삶이 그렇듯, 안 좋은 일, 슬프고 화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지나가는 순간일 뿐, 배움과 깨달음이 남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중고교 시절, 공부와 가깝지 않던 내가 공부하고픈 열정이 생기다니. 특히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상담과 심리학을 공부하다니. 이는 결코 내가 계획한 게 아니다. 그저 알 수 없는 상황의 이끌림에 따라갔을 뿐이다.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유학이 하나님의 큰 그림이었다는 게 깨달아졌다.
‘지금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구나’
살면서 이토록 나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는 시간은 없었다.
‘난 문제가 많은 사람이구나.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하셨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로 인해 힘들었겠다.’
공부하는 시간은 회개와 기도의 시간이었다. 깨지고 모난 나의 내면을 어루만지고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앞으로 만나게 될 상처 난 마음을 보듬는 자로 빚으시려, 주님은 나를 먼저 치유하고 어루만져 주셨다. 그걸 위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학교로 부르신 거였다. 삶을 돌아보니, 내가 계획한 일은 잘못되거나 안 좋게 끝난 경우가 많았다.
내 뜻대로 됐으면 진짜 큰일 날 뻔한 일도 있었다. 반면에, 주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간 일은 결국엔 나를 굳게 세우고 성장시켰다. 백 가지 의문이 들더라도 그저 순종하며 따라갈 때, 그 길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었다.
훗날 재미있는 여담을 들었다.
내가 히즈 대학에 첫 방문을 하기도 전의 일이다. 이전부터 총장님과 교수님들은 학교가 더 알려져 많은 학생이 이 유익한 공부를 하길 원했다고 한다. 홍보 방법을 생각하던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단다.
“한국에 ‘신애라’라는 크리스천 배우가 있는데, 그런 배우가 오면 학교가 알려지는 데 도움이 될 텐데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여배우가 왜 느닷없이 배우 일을 접고, 미국에 와서 상담을 배우겠어?’
그런데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 ‘배우 신애라’가 제 발로 히즈 대학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처럼 내가 히즈 대학에서 공부하게 된 건, 그 누구의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다. 이십오 년이 넘는 연예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의 알지도 못하던 학교에서 기독교 상담학을 공부하게 된 것, 그건 당연히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 하나님, 그래서 그러셨군요!, 신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