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교적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쉬웠던 사람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누구보다 기본적인 신뢰 형성이 잘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 집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나는 아버지가 마흔여덟 살에 낳은 유일한 자식이었다. 더구나 집안에는 10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태어난 아이인지라 나는 온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자라났다.
그러면서 나는 가장 중요한 믿음과 신뢰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교회에서도 선생님을 잘 만났다. 초등학교 2학년, 청량리중앙교회에서 처음 만난 홍 선생님은 나를 참 사랑해주셨다. 성경암송대회가 있던 날, 일등을 하여 상을 받자 나를 꼭 안아주셨고 예배가 끝날 때까지 나를 당신 무릎에 앉혀주셨다.
내성적이고 조금은 열등의식이 있던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히 기억되는 일이다. 그날부터 교회에 가는 것이 나의 제일 큰 낙이 되었다.
나를 사랑하여 안아주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전부 믿어졌다. 조금의 의심도 생기지 않았다. 그 선생님이 나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믿었고 그 후로 한번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해본 일이 없었다.
나는 사랑에 관한 한 아주 특별한 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라면서 만났던 좋은 친구와 스승에게서 나는 정말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이 나를 참 건강하게 만들었다. 세상과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인 신뢰 형성이 잘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믿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형성된다. 청량리중앙교회에서 자라 신학대학에 갔고 다시 내가 자란 모교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전도사가 되었다.
청량리중앙교회는 가난한 산동네 중턱에 있는 교회였다. 그래서인지 세상적으로 볼 때 조금은 거칠고 말 안 듣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나도 그런 아이를 믿음으로 바로잡은 경험이 있다.
거칠고 말썽을 잘 부리던 그 아이를 보고 나는 ‘어떻게 그 아이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큰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마침 그때 내게 사촌동생에게 빌린 스미스 코로나라는 전동타자기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그것을 동생네 집에 가져다주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당시 스미스 코로나 전동타자기라고 하면 나에게는 한 몫의 재산이나 다름없는 비싼 물건이었다. 만일 그 아이가 그것을 가지고 도망이라도 가는 날에는 보통 큰 낭패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심부름해줄 것을 부탁하자 아이는 나보다 더 놀라는 눈치였다. 내심 나를 어떻게 믿고 이런 물건 심부름을 시키는가 하고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척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 조금은 두둑하다 싶게 교통비와 점심값까지 챙겨주었다.
아이는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그리 쉽게 배반하지 못한다. 특히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이는 심부름을 잘 마쳤다. 그 심부름 사건이 있은 후 아이는 내 생각대로 반듯해지기 시작했다. 교회 전도사님이 자기를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믿음을 불러온 것이었다.
미국 워싱턴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계신 목사님 한 분을 알고 있다. 그 목사님은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한 분인데 한때 염세주의에 빠져 히피생활까지 했던 아주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히피생활을 하던 사람이 변하여 목사가 된다는 것은 소설에나 있을 법한 일이며 생각처럼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자기의 삶을 밑바닥에서부터 돌이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두 번째는 아버지의 특별한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목사님의 아버지는 군장성 출신으로 전역 후에도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던 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아들이 히피가 되어 제멋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얼마나 낙심이 되고 절망했겠는가? 그러나 그 아버지는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끝까지 그를 믿고 신뢰해주셨다는 것이다. 너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고 너는 반드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셨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믿음과 신뢰 때문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그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나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그렇다. 믿음은 믿음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아이에게 기본적인 신뢰감을 형성하게 해주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인생의 성패가 여기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사랑으로 형성되고 또한 믿음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끝까지 믿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자라다보면 부모에게 실망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자식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말이라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충분히 사랑하고 끝까지 믿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과 믿음을 계속해서 표현해주어야 한다. 충분한 사랑과 끝없는 믿음을 주어 자녀들이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도록 돕는 부모들이 다 될 수 있기 바란다.
- 자식의 은혜를 아는 부모, 김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