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4)/ 한국
수원 화성(Hwaseong Fortress; 1997)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있는 길이 5.4km의 성곽이다. 1963년 사적 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원 화성은 한국 성의 구성 요소인 옹성, 성문, 암문, 산대, 체성, 치성, 적대, 포대, 봉수대 등을 모두 갖추어 한국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된다. 조선 후기 정조 때인 1794년(정조 18) 착공하여 1796년(정조 20) 9월 10일에 준공되었다. 기존에 화강암으로 쌓았던 방식을 버리고 벽돌로 쌓는 축성 공사에는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고안한 거중기가 사용되었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의 묘를 수원에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화성은 군사적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 받는다.
장안문(長安門)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지만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 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 개의 적대를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수(隋),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시안)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팔달문(八達門)은 화성의 남문으로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현재는 좌우의 성벽이 헐려 길이 생기고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번화가가 형성되었다. 축대 위로 누각이 서 있는데 2층으로 지어져 매우 높게 보인다. 돌로 쌓은 무지개 모양의 문은 왕의 행차 시에도 가마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널찍하게 내고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 주위 사방에는 낮은 담을 돌리고 바깥쪽으로는 반달형 옹성, 좌우에는 적대 등 성문 방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설을 두었다. 옹성은 우리나라 성곽에서 일찍부터 채용되었던 방어 시설로서 서울 성곽의 동대문, 전주성의 풍남문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팔달문의 옹성은 규모와 형태면에서 한층 돋보인다. 또한 팔달문은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춘 문루로서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창룡문(蒼龍門)은 성의 동문이다. 이름은 음양오행설에서 푸를 '창'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국 전쟁 당시 크게 소실된 것을 1978년 복원하였다. 홍예의 크기만을 놓고 볼 때는 장안문보다 더 크다. 서남으로 행궁과 1,040보 떨어져 있고,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척, 바깥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척,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각각 아래 너비가 30척, 높이 18척 5촌이며, 좌우의 와장대(臥長臺)는 길이가 각각 20척이고, 돌계단은 각각 14층이며, 너비는 9척이다. 바깥쪽 좌우 무사의 너비는 각각 25척, 높이는 18척이며, 안팎 홍예 사이의 좌우 무사는 높이가 각각 17척, 양쪽 선문 안은 쇠로써 빗장을 설치하였다. 화서문(華西門)은 성의 서문이다. 동남으로 행궁과 460보 떨어졌으며, 홍예와 문루의 제도는 모두 창룡문과 같다. 다만 좌우의 돌계단을 꺾이게 해서 층을 만들었다. 안쪽 좌우의 무사는 아래 너비가 각각 9척이고, 바깥쪽은 너비가 각각 22척 2촌이다. 홍예문 사이 좌우의 무사는 높이가 각각 18척이고, 수문청은 문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다. 서옹성의 제도는 동옹성과 같은데 높이는 11척, 안쪽 둘레는 76척, 정문에서 36척 떨어져 있으며, 바깥쪽 둘레는 110척이다. 안과 바깥면 모두에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고 외면에는 방안 총혈 19개의 구멍과 활 쏘는 구멍 6개를 뚫었다. 나머지는 모두 동옹성과 같다. 또 보물 403호이다.
수문으로 화홍문(華虹門)은 북수문이며 화성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홍수를 대비하여 수원천 북쪽에 세워진 수문이다. 7개의 수문이 있고, 남수문과 달리 누각이 있다. 또 수원팔경 중의 하나이다. 남수문(南水門)은 현 지동시장 근처 수원천에 있는데 수원천 남쪽에 있다. 2012년 6월 9일 복원되었다.
서장대(西將臺)는 팔달산의 정상에 선 망대로 사방 100리가 내려다보인다. 정조는 이곳에 올라 군사 훈련을 지켜보았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편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장대 바로 옆에는 서노대(西弩臺)가 서있다. 서노대는 성 한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곳으로 정팔각형꼴로 전벽돌을 쌓아놓았다. 동장대(東將臺)는 화성 창룡문 근처에 있는 장대로 장용영 군대의 훈련 장소로 쓰였다. 여기서 활쏘기를 할 수 있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은 화서문의 옆에 있는 공심돈으로 화살과 대포를 발사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대포를 쏠 때 어디서 총탄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은 창룡문의 근처에 있는 공심돈으로 서북공심돈과 달리 원형이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는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는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남공심돈(南空心墩)은 팔달문의 근처에 있는 공심돈으로 서북공심돈과 모습이 같으나 약간 더 작다. 현재 미복원이다.
동암문(東暗門)은 동장대의 근처에 있는 암문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안쪽 너비는 7척, 높이는 8척이고, 바깥은 너비가 6척, 높이가 7척 5촌이다. 북암문(北暗門)은 동암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방화수류정 근처에 있다. 안쪽은 너비가 4척 6촌, 높이가 6척 5촌이고, 바깥쪽은 너비가 4척, 높이가 6척이다. 서암문(西暗門)은 팔달산 서장대 근처에 있는 암문으로 입구가 꺾여 있어서 찾기 힘들다. 안쪽의 너비는 5척 6촌, 높이는 7척 7촌, 바깥쪽은 4척 1촌, 높이는 7척 2촌이다. 남암문(南暗門)은 남공심돈 근처에 있는 암문으로 남공심돈처럼 미복원이다. 서남암문(西南暗門)은 보통 암문과 달리 용도로 가기 위한 암문이다. 그래서 누각이 있다.
동북각루(東北角樓)는 화홍문 바로 옆에 있으며, 용연이라는 연못 위에 있다. 화성의 시설물 중에서도 아름다워 방화수류정이라고도 한다. 동남각루(東南角樓)는 남수문 바로 옆에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해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서남각루(西南角樓)는 용도 끝에 있으며 화양루라고도 한다. 서북각루(西北角樓)는 화서문 옆에 있으며, 동남각루와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 위치해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봉돈(烽墩)은 봉화를 올리는 시설로 다섯 개의 연기구멍이 있다.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포루(砲樓)와 포루(鋪樓)는 헷갈리기 쉽다. 포루(砲樓)는 공심돈과 비슷하게 치성처럼 돌출시킨 시설이고, 남포루(南砲樓), 동포루(東砲樓), 북동포루(北東砲樓), 북서포루(北西砲樓), 서포루(西砲樓) 등이 있다. 포루(鋪樓)는 치성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동북포루(東北鋪樓), 동일포루(東一鋪樓), 동이포루(東二鋪樓), 북포루(北鋪樓), 서포루(西鋪樓) 등이있다. 치는 성을 돌출시킨 것이며, 철(凸)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치(稚)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 남치(南稚), 용도일·이치, 서일치(西一稚), 서이치(西二稚), 서삼치(西三稚), 동일치(東一稚), 동이치(東二稚), 동삼치(東三稚) 등이 있다. 적대(敵臺)는 치와 비슷한 시설이며, 팔달문과 장안문 양 옆에 각각 두 개씩 있다. 북서적대(北西敵臺), 북동적대(北東敵臺), 남서적대(南西敵臺), 남동적대(南東敵臺)가 있다. 그 중 남서적대와 남동적대는 미복원이다.
여민각(與民閣)은 화성 중심부에 있는 종각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됐다가 2008년 복원됐다. 이름은 시민과 함께 한다는 뜻으로 붙였다. 12월 31일 밤에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타종 행사가 2008년부터 열리고 있다. 성신사는 화성을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효원의 종각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수원시가 1991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