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 거쳐간 풀숲을 걸으며 - 8월 13일 해질녘 불암산에서
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낮 시간이 많이 짧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가끔 한낮에 소나기성 폭우가 쏟아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내내 손녀 수현이를 돌보다가 해질녘에 할멈한테 인계하고는 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바지가랭이가 흥건히 젖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불암산 풀숲을 천천히 걸으며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서성거리니 뉘 보면 이상타 하겠지만, 평소에 그래왔던 내겐 오히려
자연스럽고 흥미롭기까지 하니 어쪄랴.
풀들은 습기를 머금고 저녁 나절이라 곤충들은 활동을 자제하고 안전하게
잠잘 곳을 찾아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데, 내가 접근하면서 놀라 이리저리
튀고 나르니 풀숲이 갑자기 소란해졌다.
문득 나는 혼자가 아니며 많은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추흰나비, 파리매, 노린재 등 몇 녀석들은 쉽게 도망치지 않고 그 모습을
보여 주었고, 달맞이꽃 풀잎 밑에서 교묘하게 숨어서 짝짖기를 하던 녀석들도
내게 들키고 말았다. 옹굿나물은 새로 꽃을 피우고 그 자잘한 하얀 얼굴들을
모우고 반겨 주었다.
비로 인해 식욕을 채우질 못했는지, 말벌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녔지만 곤충들이
숨어버린 시간이라 소득이 없었다.
적막 속에 귀뜰이 소리 가득하고, 광대싸리 열매가 영글어 가니 계절을 알 수
있었다. 풀숲은 늘 생동감이 넘치고, 언제 찾아가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돌아오는 길에 지난 5월에 만났었던 토끼도 만났다. 어둑한 나무 숲속 젖은
낙엽 위에 홀로 있는 모습이 비를 맞고 먹지를 못해서인지 털이 엉클어지고
초췌해 보였다. 처음 장소를 멀리 벗어나지 않고 근처를 배회하며 사는 것 같
았다. 짝이 없이 지금까지 살아 버텨왔으니 참 대견스러웠다.
풀숲은 緣을 따르는 마음(隨緣行), 어떤 厄難을 당해도 果報라 생각하는 마음
(報怨行)을 일깨워 준다. 참으로 높은 경지 같지만 한 편으론 지순한 경지인데
얼마나 방황을 해야 체득할 수 있을까?
아니지, 어쩌면 풀숲을 헤매며 그냥 그 속에 살면 될성도 싶다.
2014. 8. 13. / 글, 사진 최 운향
잠자리를 잡은 배추흰나비, 근데....우화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작았다.
잠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내가 방해가 되었나 보다. 허나 녀석은 끝내
앉았던 자리를 고집하고 주변을 날다가 처음 자리로 돌아왔다.
개망초 중에도 주걱개망초 인것 같은데........''
편안한 잠자리엿으면 좋겠다.
여뀌와 노린재는 묘한 인연이 있나보다.
늘 이맘 때면 그 모습으로 다가오니까.......
금년에도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파리매. 묘한 동작을 보였다. 비가 온 후라 그랬을까?
그런데....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녀석들.......
오묘한 섭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옹굿나물. 자잘한 그 꽃이 해맑다,
금년들어 처음 본다. 그래서 참 반갑다.
광대싸리 열매.
그 곷이 핀 것이 엇끄제 같은데 .......
가을이 와 잇는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잠자리에 든 벌.
그들도 함께 있는 게 행복한지 .........
쑥부쟁이.
금년엔 그 꽃이 참 부실함을 느낀다.
오이풀도 꽃을 피웠다.
돌아오는 길에 지난 5월에 만났었던 토끼를 만낫다.
한 낮 그 매정한 직달비를 맞고 있었던 것 같았다.
모습이 ... 초췌하다.
지금까지 참 잘 살아 준 것이 고맙다. 근데.......
축축한 낙엽 위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을까?
불암산에서 바라본 북한산 쪽 모습. 밤은 이렇게 시작 되고 있었다.
하느님, 갑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