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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방대중의 친근공양편
1>동방의 청정광 세계 중 십종의 구름
우선 시방대중의 친근공양이 무엇인줄을 알거나 이해를 전제해야 경전의 말씀을
개략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여 자기의 재산으로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냥 수박겉핳기 처럼 대강 글자는 검으니 생각해 보아도 그 의미도 새카맣네 하고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불교경전의 번역은 전부 중국불교를 통해서 나왔기 때문에 중국불교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중국불교의 특징은 한자어로 진리를 전하고 인도불교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중국불교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화엄경도 전부 한자어이므로 한자어를 어느정도 습득하지 못하면 이거 곤란해 진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의 당시 환경적인 배경은 동이족 출신의 조상 요순임금님부터 연역적으로이루어진
천부경의 주역사상과 함께 병합해서 나온 사상적 체계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이를 포괄합니다.
한자어를 답습하기 위하여는 외워야 합니다, 다른 왕도가 없읍니다.
경전도 암송하고 그러는데 한자어를 왜 안 외우는지 모를 일입니다.
외우는 거 간단합니다. 리피드 입니다, 반복 반복 이지요.
천자문 하나만 이해하고 반복해서 외우면 자연하게 6,000 字 를 이해하고 외우게 되는 효과가 있읍니다.
모든 공부는 이처럼 육자배기 입니다.
육자배기는 반복 순환고리를 지니는욱도의 물리운동과 같읍니다.
육하원칙으로 물질계 육 의 뜻과 형상 의미를 함축하는 분석의 요지인 부수가 다 들어있기 때문에
보기보다 쉽읍니다.
육은 무엇인가, 물입니다, 기본이 물이지요.
항상 數 는 진리를 내포하고 표현한다 이렇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불교의 경전에도 수없이 數 字 를 표현하시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화엄경 십방대중의 친근공양의 각 십방중에 다른 곳은 전부 9 의 부류 생명성품 대중들이
모여 들어 친근공양하지만 북방의 향에서는 8 의 팔방 음의 짝 성품으로 8 부성중들만
모이는 대중의 의미를 갖읍니다.
무슨 의미인가.
물은 변화하지 않읍니다
물 모습은 변하지 않읍니다.
수보리야! 저 갠지스강 의 물의 모습이 어릴때 보는 물의 모습과 지금 장로가 되어 보는 물의 모습이 다른 것이 있느냐?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러하다 물의 모습을 변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북쪽의 북방을 물이라 칭하기 때문에 음의 짝인 팔방의 부류의 대중들이 십봉을 이루어 모여들어 친근공양한다
이 말입니다.
나머지는 변화를 타기때문에 10 종의 대중들이 9 류 생명성품으로 항상 9 부능선을 넘어 변화를 타므로
9 류 중생이 모여 친근공양한다 이렇게 이해해시면 됩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자어는 O 이 없읍니다.,
실례를 들면 조용한 물이 모인 연못에 돌맹이 하나를 풍덩하고 던져 봅시다.
원률을 그리고 퍼지면서 파동을 이루며 외부로 확장하지요.
만약 상대에서 돌을 던지면 그 원의 파동이 확산하며 나에게도 접근하고 오게 됩니다.
이를 물결파동이라 하지요,
이를 빛운동이라 하고 O 운동이다 이렇게 이해해사면 됩니다.
자연의 이러한 빛의 현상에서 O의 이치를 이해하려는 가닥점이 한자는 없다 이 말입니다.
무심코 던진 돌 팔매에서 마음이 파문이 일지요. ㅎㅎ
그와 같읍니다, 우리들 마음은 십방의 모든 소식들이 함께 밀려오고 밀려가는 마음과
몸을 지니고 있다 이 말입니다.
어쨌든 한자는
짝대기 몇개 글쩍 글쩍해서 글을 만들은 단점은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민족성은 은근한 여운의 정서가 많읍니다.
하지만 중국사람들은 협치가 잘 안되고 여운이 없지요.
전쟁하다가 일대일 장수끼리 싸우고 지면 이긴쪽으로 모든 병사들이 옮겨갑니다.
의리가 없지요.
그래도 좀 못때도 일본 아이들이 하나의 병사만 남아도 할복을 하면 하지 절대 항복을 안하는
기질이 있지 않읍니까?
원의 모습으로 보이는 가라카나 히다까나 글자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속성은 문자의 소성에 의하여 진화 되는 업장을 지닌다 이 말입니다.
한자는
한글처럼 O 이 없읍니다. 이렇게 일단 기억은 하면서 한자를 대합시다,
우니나라의 위대한 소리글자는 빛의 파동으로 훌리는 흠치 흠치 흠 은
대단한 것이지요. 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글은 말을 모으는 능력이 있고 한자어는 말을 모으는 능력은 없으며 단지
변화의 능숙한 진행모습을 담는 장점이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병합해서 공부하면
우리대한민국의 불교는 더욱더 발전하고 찬란한 업적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이 말입니다.
물상법을 관하는 통찰법으로서는 한자어가 단연히 최고입니다.
그러므로 한자어를 전혀 모르고 경전을 이해한다는 것은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 이 말입니다.
고로 소인이 한자어의 뜻풀이 해자, 해의 직역등을 통하여 이해하기 쉽게 하고 또한 눈으로 익어가며
한자어를 보면서 자연하게 숙지하는 방법으로 부처님 말씀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눈에 익으라는 것이지요, 보면 익히게 되어있읍니다.
자주 내 얼굴앞에 얼찐거리면 익숙해지고 정이 드는것과 매 한가지 입니다.
한자를 자주 접하시며 익숙해지시기를 발원합니다.- 합장-
본인이 할일없이 그냥 괜히 힘들게 한자어를 같이 적는것이 아닙니다.
한번 한자어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옮겨보세요 힘이 많이 들겠지요?
그래도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그날까지를 위하여 끝없이 전개하는 것인 저의 회향이고
사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며 진리안을 여는 하나의 방편으로 가장 쉬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한자어를 알아야 합니다."
원래 한다리 건너 소문난 말은 대부분 조금 픽션이(가설) 섞여 본의가 잘 들어나지 않고 혼란을 느끼게 되는것입니다.
인도불교 중국으로 한다리 건너 우리가 받아들었으니 중국한자 잘 모르고서야 어디 본질이 자연하게 그렇게
쉽게 건너오지 않는다는 말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엿듣는 말을 하지 않고 엿보지 않으며 한다리 건너 카더라 하는 방송에는 귀 담지 말라 하는
명언이 있는 것입니다.
안방규수의 말을 남자는 듣지 말라 하였는바
안방규수는 사랑방에 흘러나오는 말 몇마디 듣고 문을 살짝 열어 상대는 안보는 문틈으로 겨우 몇 자락 조명을 보고서는
다 아는 것 처럼 말을 흘린다 하여 엿볼 窺(규) 를 써서 규수라 이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도에서 중국 한다리 건너 한국으로 건너온 불교의 전래 기원은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읍니다,
그러므로 한자에 밝았던 옛 선인들중에 고승이 많았던 것입니다, 불교 진리의 본질 접근이 용의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한자어를잘 모르고 카더라 방송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편이 많다 보니 고승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종범스님 같은 큰 스님이나 탄허, 금타 및 무비스님등 여러 큰 스님들의 특징을 보게되면 전부 한자어에 능통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어는 신비한 철학적 사고과 사색 자연철학의 현상과 주역의 사상이 전부 온전하게 깃들어져 있는
象법. 물상법, 현상법, 철학적 본질의 분석법 등이 다 들어가 있읍니다.
빛의 원류 녹두 문자라서 그러합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한자공부 를 제회지키고 아예 혹자 스님들은 아예 인도로 직접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곤 하는데 인도어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인도 타밀어는 80 가지가 넘습니다, 인도 이쪽지방 저쪽지방으로 조금만 가면 언어가 다르지요.
그러므로 영국도 인도를 점령하고도 식민통치를 해 나가다가 몸살 걸린것입니다.
무신 말이 통해야지요,
이러한 입장으로 영국은 인도 모든 국민들에게 영어로 통일시켜 말을 통용하게 법으로 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도인들은 요즈음 언어문화가 조금만 배우면(학교에 다니면) 영어를 잘 합니다.
도리어 모국어 타밀어는 그냥 국소적으로 지방에 따라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토착민족으로 머물렀기
때문에 산업문명화가 늦어진 것이고 서로 소통이 어렵습니다, . 소통의 문제에 인도는 스스로 봉착한 면이
있다 입니다.
그러므로 인도나라는 가공할 만한 가상적인 의미의 공상언어가 많읍니다.
하도 카더라 방송을 들어서입니다.
중국도 떼놈민족이 나라를 잡았는데 무신 한자같은 고급 문자를 알 수 가 없었읍니다.
그러니까 무식한 것이고 의심줄만 지니고 살았으며 중국도 한자어를 모르는 자 들이 70% 가 넘습니다.
그러므로 한자어를 약분해서 희한한 글자를 만들어 쏭알쏭알 하고 있는것입니다.
고로 중국 사람들의 이면적 마음은 그리 밝지 가 않읍니다, 빛의 원리를 왜곡시킨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문자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나라 조상들이 한자어와 한글을 시리즈로 이 세상에 출현 시켰으니 얼마나 위대한
민족입니까? 이러한 자부심을 지니고 한자어는 우리고유문자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한자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자어를 만든 백수문이라는 주흥사 는 양무제때 무제인 왕이 상당히 무식한 장군 출신이였는데
그래도 시 나 문학 불교의 의미에 관심이 있었던터 주흥지와 자주 대화하곤 하였는데 주흥지는
전한시대 대학자의 후손으로 상당히 깊은 학문의 대가였읍니다.
어느날 양무제와 시담중에 (詩談中: 시를 대화하던 중) 양무제의 잘못된 곳을 주흥지가 순수하게 지적하다가
양무제한테 찍히게된 것입니다.
이에 양무제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게 어디 감히 양무제인 왕을 능멸해? 니가 잘나면 얼매나
잘났는가 하고서는 숙제를 내 줍니다.
단 하루만에 한자어를 4 수조로 1,000자를 사용헤서 250 구절을 만들어오라 했읍니다.
만약 안 만들어오면 깨주바리 나는 것이지요.
천하의 대가였읍니다.
하늘과 땅의 섭리 섭사를 논하고
복희씨는 龍 의 이름으로 관직명을 짓고
신농씨는 불의 이름으로 짓고 (龍師人帝:용사인제: 천자문에 나옴)
소호는 새의이름으로 신하이름을 짓고
황제는 사람의 이름으로 지었도다 (鳥官人皇:조관인황)
그리고 나머지 25 구절은 어조사를 이용하여 감탄고 감흥 등 자연의 이치를 담는 인간의 심성을
대조하여 표현하였고 나머지 8 구절은 양무제의 무식통통한 넘을 꾸짓는 한자숙어로서
삥 둘러 알아듣지도 몬하게 지어 바친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역의 본질은 한자어를 대변하는 학자의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 천자문이며
당시 양무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입장에서 풀이를 병합하여 내 놓은 것입니다.
그 이후 천자문은 다시 조금씩 시대에 따라 변화를 준 것인데 특징은 백제의 왕인박사가
일본에 1000 字 문을 전달한 것은 역사서에서도 기록 되어진 것입니다.
결국 일본 글자도 히다까나 가라까나로 개량되어지만 한자의 부수이고 한자를가미 하지
않으면 일본 언어도 없는 것입니다.
고로 일본은 뜻 글자로서 철학적 의미를 지녀 크게 학문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화엄경전의 진리의 교두보인 문도를 특히 인용해서 수행하는
경전이므로 좀 지겹더라도 한자어를 한번 정도 이렇게 눈으로 복 익히는 습관을 기울이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한자어를 이해하면 우리나라 조상의 민족 기상을 이해함과 같읍니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것은 서로의 공유의 목적이지만 단연코 공부는 이러한 식으로 이렇게 이해하는 관점으로
궁리 하라는 가이드 역활 밖에는 할 수 없읍니다.
거기까지가 한계점이므로 , 공부 여부 수행혀부 깨침의 여부는 여러분 들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무신 인도가서 초기경전 어쩌고 저쩌고 당시 문자도 없이 전해진 불교경전을 심취하고 돌아왔다
하는것인지 이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모든 배움은 무조건 참고하는 덕목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자기것으로 만들어야지요.
아무리 훌륭한 스승님 밑에서 문하가 되어 공부하여도 다 나름 대로 배우고 익혔으면 스승님문하에서도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가견을 세웠을때 객관적인 명증이 일어나게되면 대 학자가 되듯이
공히 인정하는 것이고 그 이름석자를 내 걸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초기경전은 보다 분명한 것은 부처님께서 아주 무명에 든 중생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설하신 것입니다.
원단과 재질이 명품인 것은 대승불교의 나라에서 단연 우리나라가 최 상위 를 차지 합니다.
염라대왕도 스님 앞에서는 심판도 심문도 못합니다.
"판치생모"(판때기에 털나고 이빨이 난 것을 논 해보라 하는 화두공안) 에 대하여 말하게되면 염라대왕이 알아듣지도 몬 하기 때문입니다. 뭐 통해야 심판을 하든지 재판을 하던지 하지요, 재판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ㅎ,
고로 우리나라 조상이 한자를 만들었는데 중국문자라고 세상이 이상하게 바꾸어 졌으니 그것도 기가 맥히는 일인데 어쩌겠읍니까?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면 한자를 다시 배우기를 주져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자어는 우리 조상이 빛의 시원이 되는 번개 의 광선을 보고 녹두 문자로 지었으며 주역을 여기에서 발생시켰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한글은 번개치고 난 다음 우뢰 의 소리가 일어나지요, 이 자연음을 보고 역시 정전계로 (井田) 세종대왕을 위시하여 스님과 함께 지은 것이 한글 문자 훈민정흠입니다.
흠치 흠치 흠字 입니다.
어원과 기원을 증할 수 있느냐고요? ㅎ
이치가 그럴 수 밖에 없읍니다. 진리는 그럴 수 밖에 없는 백이(넋)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한자 천자문을 소개한 사실이 있는데 이 천자문이 대부분 불교와 통하는 문자로서
본연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유하고자 했던 기억이 있읍니다- 합장-
차치하고
시방대중의 친근공양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를 다시 소개 해 봅니다.
본문 경전을 해의 해 가면서 시방대중의 친근공양에 대하여 다시 소개 하겠읍니다.
復現十種雨一切寶蓮華光明雲하며
부현십종우일체보연화광명운
일체의 9 류의 보배같은 결실로 꽃 처럼 밝게 구름됨이 다시 열가지 종류의 비로 되돌아 나타나며
참고)
復(부) 는 다시 또 돌아옵니다 라는 귀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시 생노병사를 끝내고 그냥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되돌아 와야합니다.
이를 다시 부 字 를 놓았는데 원래는 復 를 돌아올 복 字 로 읽는데 화엄경 부처님 말씀에는
부 字 로 읽읍니다.
다시 돌아오는 것을 무엇이라고 했읍니까? 빛이라고 하였지요. 주역공부할때 빛을 내포한
하늘을 乾天(건천) 이라 하였은데 무시무종이고 휘어진다 하였지요. 휘어지는 것은 결국은
원 입니다. 빛은 빙글 빙글 돈다 이 말입니다.
우주의 공간은 그냥 둥글다 이 말입니다.
왜인가 원래 마음자리가 둥근 모탈로서 이루어진것이고 우주공간의 본체가 둥글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빛은 그 둥근 모탈에 의하여 따라 그 안에서 밀고 당기면서 빛은 운동하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비유하기로 합니다.
現十種雨(현십종우):
나타날 現(현)이라 지금현재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안고 나타난 것을 現(현: 王변은 세가지
작대기를 수직하나로 꿰어 져 있는 것을 王 변이라 합니다. 그리고 見
은 볼견 字 이지요, 그냥 왕만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 이라 하고
십종(十種) 이란 열가지 종류를 의미하는데 동방에도 십방의 모든 생명성품들이 다 모인 것을 의미하는데
동서남북 사방, 동남 서남 서북 동북 사유, 상하 위아래. 를 합치면 십방이지요.
바로 원의 둘레모형이 되는 그림이 일어남과 같읍니다, 십방은 그러므로 360 도 입니다.
이것이 물질계의 지각과 인식을 타는 세계는 삼각운동을 한다 이 말입니다.
십종의 대중들은 전부 9 류 생명성품입니다,십이 되는 자리는 변화를 타는 임계치이고
육도 욕계셰는 그러므로 9 부 능선이라 9 종류가 십방에서 모여들므로 10 종이라 할 뿐이지요
9 류중생 이 사방에서 (동방을 중점으로 사방을 말함: 항상 사방찬 아닙니까) 대중들이
모여 친근공양하는 (9 곱하기4= 36 으로 360 원을 이루면서 확산 파동운동을 하는 것을
생명성품의 운동상태를 지닌 대중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므로 동방, 등 십방은 각기 36 을 지닙니다.
동서남북사유상하허공( 10 곱하기 36= 360도 元) 입니다.
그렇지요? 반복해서 읽어보시고 궁리해서 자기껏으로 이해시켜서 판단 여부를 결정하는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동방의 청정광 세계는 36 도를 차지 합니다.ㅡ36 도는 9부능선의 사방이 둘러 모여 (9 곱하기 4방)
36도를 이루는 반경이 된다 이 말입니다, 이를 부처님인연법으로 12 진법의 12 인연의 삼세간의 王 (왕)
이 귀한하여(12 인연 곱하기 삼세) 지금 나타낸다라는 십종을 말합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동방광같은 한 부분을 논하는 세계이지만 십방이 모이면 360 원이므로
"일미진중함십방"이라 터럭같은 먼지 같은 생명성품에도 360 도 십방이 전부 다 들어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상조사의 법화경 게송)
다시 또 라는 글자의 의미가 있으나 그것 역시 돌아온다는 의미도 함께 함축되어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현심종우" 라 하지요, 비로 열종류의 비가 되어 다시 되돌아온다 라는 십방의 O 소식입니다.
무엇이 되돌아오는가 하며는 빛의 운동으로 9 류생명성품들의 일체가 엄정한 결실로 빛나는 꽃 처럼 밝은 구름의 광명으로 머문 생명성품들이 머물 고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구름같은 나그네 라 하지 않읍니까? 박목월 시인의 한 구절을 인용해봅니다.
구름은 연기법으로 창공에 혼탁함으로 가리고 있지만 결국은 O 작용으로 청정하게 다시 비로되어 돌아오는
원만법성의 O 운동을 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雨(우:비) 는 무엇인가?
비는 멀경 字 네모인 공간안에 사방에 비로 꽉 차 있는 것을 雨 로 칭합니다.
그렇다면 시방대중들은 모두 雨(우) 인 비가 되는 숙명을 지닌 구름입니다.
이 구름을 雲(운: 구름 운) 이라고 합니다.
해의하면 비 雨 + 이를 云 = 雲 입니다.
"구름은 비니라" 는 것이고 비 는 물입니다.
그러므로 구름공양 대중들의 십종은 전부 물의 숙명성을 타고
운동하는 대중들을 전부 구름이라 이름합니다.
십방의 십종대중구름들은 전부 물의 기원을 지닙니다.
아주차가운 보관소에 상품을 보관하다가 문을 열먼 막 연기 같은 흰 것이
모락 모락 일어나지요.
뜨거운 공기를 만나자 마자 증기화 하는 현상이지요.
그러므로 구름은 그러한 것입니다. 물이 기화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 보면
찬 공기를 만나 허연 모습을 천 처럼 압력에 따라 드리우기도 하고 뭉테기로 있고
조금 더 높은 곳에 응어리져서 뭉실 되며 회전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로 만상에 비로 꽉 차 있다 이 말입니다.
은하수도 구름이다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섭사품은 전부 구름의 물 이야기 입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경전을 이해하게 되면 쉬워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시방의 대중들은 물을 기원으로 하는 생명성품들이 십방으로 O 운동을 위하여
모여들면 친근공양한다 이 말입니다.
왜 친근공양을 부처님께 하는가? 친근공양은 O 작업입니다.
구름이 되면 본래 물로 다시 비가되어 떨어져 구름현상이 없는 것으로 만들고
대신 창공은 다시 청정해지는 그런 운동을 생명성품들이 하염없이 한다 이 말입니다.
이 이치를 보면 제행 무상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욧게의 생명성품은 항상함이 없다, 모두 무상하다라는 진리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一切: 온 만상의 세겜는 빛의 七 火 빛이 700세계로 쪼개져 있는 형국의 세계입니다.
삼천대천세계를 이루지 7 곱하기 3000 은 21,000 이고 4 방이니 곱하기 4 를 하면
84,000 광명의 빛이 발산하고 발산에 영향을 받고 주고 받는 것을 불성의 부처님 이치라
할 수 잇으므로 일체 라 하면 7 로 쪼개진 것을 모두 모우면 일체인데 하나 다 라는 一 을
말함인데 一 은 O 을 의미합니다, 이 세계나 우주공간은 직선운동을 하는것 같지만
결국은 O 입니다, 이로서 부처님 탄신도 일곱걸음 걸으시고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칠일에 걸처 천지를 창조하는 것이고 부처님이 성불하여 칠보의 보물을 자부동 아래
까시고 칠보 연화자 위에 금강좌 하시는 것입니다.
寶蓮華(보연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 생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은 무량광이며 무량수 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 없으며
변하지 않는 본질을 지니고 있읍니다, 이를 보불의寶(보: 보배 보) 로 표현합니다.
물의 모습처럼 변하지 않듯이 우리들의 생명성품은 화 하여 구름으로 주어지듯 변화는 쓰리쿠션을 타지만 영원한 생명을 유지해야 하므로
寶(보) 보배다 이 말입니다, 사람만이 영원하지는 않는 것이지요
모든 생명성품은 전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보물 보배 寶(보) 로서
생명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蓮華(연화) 는 9 류중생의 생명성품이 빛나게 (빛을 머금고) 꽃을 드러내는
현실의 모습으로 출현함을 말합니다.
연꽃은 알다시피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청정한 성품으로 연화되어 피어나는 생명의 모습을 의인화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 의 상징은 연꽃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光明雲(광명운)
: 구름은 십방의 빛 운동의 결실이므로 밝은 빛으로 구름은 이루어졌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은 빛이므로 구름도 빛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되면 동방광 의 청정한 세계인 물을 기원하는 대중들이 구름으로 화 하여
O운동을 하기 위하여 청정함을 항상 유지한다 이 말입니다.
아침에 맺은 이슬모습을 보면 둥그렇지요, 모든 진리의 묘체는 둥글다 이 말이니, 구름도 둥근 입자를
지닙니다.
이렇게 십방대중들의 친근공양을 이해하시고 접근하시면 좀 더 쉬우리라고 생각합니다ㅏ
復現十種須彌寶峰雲하며
부현십종수미보봉운
다시 십종류의 두루 가장 모름지기 특출한 머리같은 보배의 산 봉우리를 이루는 구름의 십종이 출현하기도 하며
復現十種日輪光雲하며
부현십종일륜광운
또 십종류의 태양빛이 구르며 광명을 드러내는 구름이 나타나며
참고) 종류의 種(종: 종류 종, 부류 종) 字 를 보면 먹기위한 벼 禾 를 안고
무겁계 (重) 생명운동을 하는 대상들에게 種(종) 을 붙입니다.
復現十種寶華瓔珞雲하며
복현십종보화영락운
또 다시 십방의 십종이 아에 십장의 둥근 목걸리를 걸은 것 처럼 연결지어진 구름이 나타나며
(십방과 연결하여 O 운동을 한다 라는 의미)
復現十種一切音樂雲하며
부현십종일체음악운
다시 십종의 일체 음악의 구름이 나타나며
참고) 구름은 물이며 물은 빛이며 빛은 광명이고 그 물의 의지대로 자기가 취하고자 하는
불의 기운을 머금고 즐거움을 구하고자 하는 의지대로 구름으로 화 하여 윤회하는 사이에 구름은 수화의 충돌이니
충돌 소식으로 소리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동반하는 것을 음악이라 표현하는것이지요,
구름이 된 것이니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復現十種末香樹雲하며
부현십종말향수운
다시 십종의 생명성품대중들의 끝말에 향기로운 나무처럼 삼각운동 가지를 벌리는 빛운동으로
구름되어 나타나며.
참고) 빛는 삼각운동합니다, 번개를 보면 가지처럼째집니다, 이것은 균형을 잡고 영원한 생명성품을
유지하기 위한 균형유지의 운동입니다, 그러므로 나무 樹(수) 의 형태의 운동을 하며 소리가 나서
부딪히면 냄새가 나므로 향수운 하며 하고 대중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復現十種塗香燒香衆色相雲하며
부현십종도향소향중색상운
십종의 진흙에서 냄새피우고 불사르는 향기를 지닌 중생으 모습을 지닌 구름으로 다시 나타나 O 운동을 하고
참고) 모두 물로 다시 되돌아 와야 하므로 인과응보대로 O 운동을 하는 과정이지 실상은 아니다 이말입니다.
復現十種一切香樹雲하며
부현십종일체향수운
다시 십종의 일체 냄새나는 나무구름으로 나타나면
참고) 구름도 나무가지 처럼 피어나고 자라며 나무특유의 향기를 10 가지 종류대로 내는
구름이 나타난다 이말입니다.
如是等世界海微塵數諸供養雲 이 實邊虛空하야 而不散滅이리라
여시등세계해미진수제공양운 실변허공 이불산멸
이처럼 등등 세계바다의 미진수 의 모든공양구름이 실제로 허공에가득하여 흩어지거나 멸 하지 않음이니라.
現是雲已에 向佛作禮하사 以爲供養하고 卽於東方에
현시운이 향불작례 이위공양 즉어동방
이에 이미 구름으로 나타나서 십방을 상주하시는 부처님께 예를 들이고 이로서공양하고 즉시 동방에
各化作種種華光明藏獅子座하야
각화작종종화광명장사자좌
각각 화여여 종류대로 지어진 빛나는 광명을 감추고 물의 子 를 깨친 후에 사자좌에 임하여
참고) 사자좌 라는 것은 깨침의 자리에 올라 있음을 말합니다. 사자후를 설 해달라고 요청하는
재가불자들의 선지식을 위한 노래는 깨침의 소리를 들려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於其座上에 結跏趺坐하시느니라
어기좌상 결가부좌
그 위치 (사자좌 ) 위에 십자로서 꺼떡하지 않는 금강좌로 앉아 행하시느니라.
십종의 종류별 구름은 아홉종류임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참고) 결가부좌는 금강좌를 말하는데 십자모양으로 다리를 결부하니까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금강조라 하고 십방의모든 기운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결가부좌라 이름합니다.
요즈음 선 공부를 할때 보면 다리는 자유롭게 하고 하라는 의미로 수행을 짐작하는 말씀을
스님들이 많이 합니다만
그렇게 하면 선정에 들 수 가 없읍니다.
다리는 결가부좌를 해야만이 졸려도 일어나고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자세를 흩트러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결가부좌를 꼭 해야 합니다.
이것이 힘들면 경전공부만 계속 하면 됩니다. - 합장-
이로서 동방의 청정광 세계를 소개 하였읍니다.
좀 진부하게 길고 지루해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그렇게 양지하시기를...
이참의 출근길은 아주 마음이 상쾌하거 청정합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출발하고
다음에는 남방의 일체보월세계를 계속해서 소개하겠읍니다 - 합장- 행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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