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를 두고 각계의 반발이 거세다. 전통적인 비판세력인 시민사회단체 뿐만 아니라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상당수 판사들까지도 부당함을 성토하고 있다. 이번 한미 FTA는 농업과 제약산업이 주요 피해산업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제약계는 대체로 약가일괄인하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큰 불’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과 달리 “한미FTA가 더 큰 불”이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제약회사 개발부 팀장들 모임으로 구성된 제약관리자협회(PMS)이다.
지난 8일에는 ‘한미 FTA 이후 의약품 개발 및 특허임상 전략’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최근 여러 세미나에서 한미FTA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장관영 회장(바이오파마티스)을 만나 문제점을 진단해 보았다.
이순신 장군처럼 준비된 전투로 승리
장관영 회장은 “23전 23승했던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대비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며 “지금 우리는 한미FTA와 1전에 몰락한다”고 단언했다. 지난 2007년 한미FTA를 추진할 때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국내 제약계는 아직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장 회장은 그 원인을 제너릭에 매달린 국내 제약산업계와 정부의 제너릭 중심 정책에서 찾고 있다. 제너릭 시장이 과열돼 경쟁도 높아지고 리베이트도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그는 “국내 제너릭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신약개발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정부가 제너릭 양성 정책과 신약개발 정책을 병행해 추진했으면 지금 국내 제약산업은 신약 경쟁력이 상당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신약 중심 정책으로 가면 국내 제약은 적응이 어렵다”는 그는 “갑자기 물꼬를 트면 홍수가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준비해야
PMS는 2007년 한미FTA가 추진되는 것을 지켜보고 2009년 10월 제약계 개발팀 팀장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PMS는 인도 제약산업과 특허 관련 내용, 임상시험 등을 내용으로 월1회 세미나 진행을 원칙으로 해 왔다.
장 회장은 “2007년부터 논의를 시작했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의약품정책의 큰 틀이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한미FTA라는) 쓰나미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
그는 “미국제도가 국내에 잘 못 정착되면 한 순간에 무너진다”며 “비급여로 빠지면 매출이 급감해 경영에 큰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미FTA로 가기로 했으면 가야하는 만큼 준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준비 못했고 허가-특허 연계 (시판 중지) 3년 유예기간도 장담할 수 없다”는 장 회장은 “이순신 장군처럼 이낄 때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년 유예기간 동안 준비를 열심히 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신약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확대하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약 산업이 되게 이끌어줘야 한다는 주문이다.
신약개발은 10년 이상 걸리는 데 한미FTA가 ‘더 좋은 약, 더 싼 약’을 갑자기 함께 요구하면 결과적으로 국내 제약은 ‘더 싼 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는 “국내 제약사들이 좋은 약을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고 3년 유예기간을 잘 활용해야 하며 미국제도를 국내에 맞게 보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 회장은 “2013년까지 약가일괄인하 충격이 있고 2014년부터는 (허가-특허 연계로) 품목허가를 받기 힘들게 된다”며 “때문에 한미FTA가 약가일괄인하 보다 더 큰 충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은 약가인하라는 발등에 떨어진 작은 불을 꺼야하지만 한미FTA라는 큰 불을 대비해야한다는 주장이다. 품목허가를 받지 못하면 약가를 받을 수 없고 최저가 덤핑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
“오리지널과 제너릭이 동일가로 경쟁하면 신약이 나오지 않는다”는 그는 “구멍 난 돈 자루를 들고 다니면 빈 자루가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구멍을 막아주는 것이 정부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제약업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
장 회장은 미국제도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 특허목록은 검증되지 않고 작성돼 부당하게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 특허 목록을 분쟁이 발생하기 전에 우리 정부가 미리 점검해 소모적인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제약산업은 생존·고부가가치 산업
장 회장은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지탱하는 제약산업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며 “의식주를 지탱하는 것이 건강이고 제약 산업이 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제약 산업 피해는 국민 피해라는 주장이다.
국민 건강은 수치로 피해규모를 계산할 수 없고 한미FTA로 국민건강이 외부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장 회장은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제약산업의 가치를 강조했다.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은 자동차나 전자산업보다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며 “국내 제약 산업도 이러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갈 수 있게 육성돼야한다”고 말했다.
국내 신약을 개발해 이러한 고부가가치를 만들려면 정부가 환경을 조성해야한다는 주장이다. 한미FTA는 이런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허가-특허 연계로 시판이 중지되면 수익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우려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왜곡된 경제구조와 낙후된 경제인식이라는 비판이다. 다국적사의 소송에 대응할 수 있는 제약사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하소연이다.
불도저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장 회장은 ‘불도저 지원론’도 밝혔다. 제너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한 제약사들을 지원해 보상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 국내 제약계의 오리지널을 연구하고 복제약을 생산해 오리지널 제품과 경쟁하기 위한 노력과 기술은 상당해 이를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다국적사의 거대한 자본과 경쟁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이 적은 전함 수를 가지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전투한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FTA가 국내에 맞게 보완해 적용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지금 이대로는 골리앗과 싸우는 것처럼 게임의 룰이 없다는 비유다.
특히 일본과 달리 브랜드가 없는 국내 제너릭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이다. 일본도 제너릭이 45%에서 20%로 급감했다는 설명이다.
“국내 제약은 50년 전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웠다”는 장 회장은 “한미FTA로 장미가 날아갈 상황”이라며 “식약청과 특허청, 제약산업 관계자들이 모여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장 회장은 “어깨를 두드려 격려하는 것과 종아리에 회초리를 휘두르는 것은 다르다”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일부의 리베이트를 부풀리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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