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강론>(2024. 1. 25. 목)
(사도 22,3-16; 마르 16,15-18)
제1독서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2,3-16
그 무렵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2 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사도 22,3-5).”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서에서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필리 3,5-6).”
여기서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라는 말은, 교만이나 위선이 아니라,
실제 사실을 그대로 말한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부모인 즈카르야와 엘리사벳도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루카 1,6), 바오로 사도도 즈카르야와
엘리사벳과 같은 충실한 신앙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열성적인 유대교 신자로서 자신의 신앙과
신념에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미리 예언하신 것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요한 16,2-3).”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께 봉사하는 일이고
충성하는 일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에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던 때였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시는 일을 모르던 때였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라는 말씀은,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에”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자기가 모르고 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티모 1,13).”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바치신 기도에 연결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죄인 줄 ‘모르고’ 한 일이더라도 죄가 죄 아닌 것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와 용서의 가능성은 커집니다.
반면에, 알면서도 죄를 짓는 것은 처음부터 회개와 용서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죄가 큽니다.
어떻든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기도가 결실을 맺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나서 곧바로 변화되고
사도가 된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은데,
바오로 사도 자신은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갈라 1,15-18).”
1) 하느님께서는 바오로 사도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이 언제 어떻게 실행되는지 모르지만,
하느님은 즉흥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섭리’ 라고 표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신비스러운 ‘하느님의 섭리’를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2)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자마자 곧바로
응답하고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기도와 고행을 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3년 동안의 일은 전혀 기록에 없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바오로 사도는 회개하고 보속하는
생활을 했을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를 묵상하면서,
사도로서 일할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44).
‘바오로 사도의 회심’은,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나타냅니다.
스테파노가 순교한 뒤에 교회가 큰 박해를 받게 되었을 때,
아마도 분명히, 초대교회 신자들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박해자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은,
그 기도가 응답을 얻은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