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補] 『惕若齋學吟集』 卷之下
送慶尙廉使全掌令五倫
- 경상염사 전오륜 장령을 보내며 -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 지음.
蔚應霜臺選
端爲盛世賢
彈琴幾十載
按轡尙芳年
德賀便民俗
詩慙被管絃
兩兒具習字
萬一少垂憐
아름답게 상대의 선임에 응하고
단아하게 성세의 현인이 되었네
거문고를 탄 지가 몇십 년인가?
아직 꽃다운 나이에 고삐를 당기네
민속을 편하게 한 덕(德)을 경청하는데
관현에 울려진 시를 부끄러워하네
두 아들이 모두 글을 익히니
조금도 안타까워하지 않네
[출처] 삼현실기(三賢實記) 정선전씨 채미헌공파 종회
◎ 霜臺 상대
(→司憲府(사헌부))
◎ 김구용 [ 金九容 ]
본관 안동. 자 경지(敬之). 호 척약재(惕若齋). 초명 제민(齊閔). 공민왕 때 16세로 진사에 합격, 그 뒤 문과에 급제하여 덕녕부주부(主簿)를 거쳐 민부의랑(民部議郞) 겸 성균관직강(直講)이 되었다.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이 중건되자 정몽주(鄭夢周) ·박상충(朴尙衷) ·이숭인(李崇仁) 등과 성리학을 일으키고 척불숭유의 선봉이 되었다.
친명파로서 1375년(우왕 1) 삼사좌윤으로 있을 때, 이숭인 ·정도전(鄭道傳) ·권근(權近) 등과 함께 북원(北元)에서 온 사신의 영접을 반대하다가 죽주(竹州)에 유배되었다. 1381년 풀려나와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이듬해 대사성 ·전교시판사가 되었다. 명나라와의 외교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던 1384년에 행례사(行禮使)로서 명나라에 가던 중 요동에서 붙잡혀 난징[南京]으로 압송, 영녕(永寧)현에서 병사하였다. 사장(詞章)을 잘하였으며, 《동문선》에 8편의 시가 전한다. 문집에 《척약재문집》, 저서에 《선수집(選粹集)》 《주관육익(周官六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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