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옆에 보이는 건물은 현재 계성교회로 역시 대구시 문화재 이다. 내가 학교다닐때는 언어여구실로 기계가 63대 있었다.
교장 선생님, 고등학교와 같이 있을대는 교장은 한분이 하셨다.
대구의 시민 76명중 44명이 계성인이 刑을 받았으니 계성인이 대구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기념식에 가고 있는 학생들과 시민. 동산병원과 서문시장이 인접하고 있어 학교시설이주민들께 개방돼어 있다.
어제께 컴퓨터의 youtube를 켜니 놀랍게도 대구의 계성학교( 이때는 중,고가 분리되지 않았다. 1951년 문교부령에 의해 분리됨) 의 3,1운동의 대해 나와 있었다.
내가 이 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 후반에 선생님들이 가끔씩 이야기를 해 주었다.
동산(기독교)병원 옆이고 계성학교와 마주보고 있는 신명여학교(지금은 남녀공학, 계성학교와는 자매학교)와 같이 경북(대구)의 3,1운동을 주도 했다고 이야기를 자주해 주시고 日帝때는 학교의 명칭이 강제로 공산학교로 바뀌기도 했다고 들려주셨다.(대구는 팔 공산이 있다.)
LG헬로비젼TV(대구,경북)에서 방영한 화면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대구시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아담스관, 이 건물의 지하에서 독립선언물이 인쇄(프린트,등사) 되었고 인쇄물은 청송군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이 건물은 영남지방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고 부산시민들도 구경하러 왔다고 한다.
오른쪽 뒤에 있는 건물도 핸더슨 관 으로 대구시 문화재다.
3,1운동(대구는 3,7) 참석한 계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