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개요> 첨찰산은 진도군에서 가장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어, 진도의 진산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진도에서 이름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쌍계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난대림의 보고 상록수림대가 있고, 쌍계사 바로 옆에 소치 허유의 운림산방과 기념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또한 첨찰산에 오르는 길목에 진도아리랑 비가 세워져 있으며, 산 정상에는 진도기상대가 있다. 산 서쪽 아래 의신면 사천리는 다시래기로 유명한 민속마을이며, 이 사천이 흘러서 모이는 사천저수지는 진도에서 가장 큰 수원지이다. 이처럼 첨찰산은 진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미와 인간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다양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어 산 주변에 많은 마을들이 계곡을 중심으로 입지하고 있는 중요한 산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첨찰산 [尖察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첨찰산을 중심으로 산록에 우거진 상록수림은 현재 천연기념물 제 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상록수림은 쌍계사를 흐르는 양쪽의 하천을 따라 나타나고, 약 6.2㎢ 넓이로 동백나무, 후박나무, 참가시나무, 감탕나무, 정가시나무, 생갈나무, 모세나무, 차나무, 뿔가시나무, 매밀잣밤나무 등의 상록성 잎이 넓은 나무들과 졸참나무, 자귀나무, 갈매나무, 윷놀이나무, 굴피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첨찰산에는 또한 전라남도 유형 문화제 제 121호인 쌍계사 대웅전이 있다. 쌍계사는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첨찰산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대웅전은 신라 문성왕 때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1982년 대웅전의 지붕을 보수할 때 발견된 법당 상량문에 조선 숙종 23년 1632년에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첨찰산 기슭에 자리 잡은 남화의 거장 소치 허유의 거처인 운림산방이 있고, 소치기념관이 지어져 있다. 첨찰산으로 오르는 길 옆에 진도아리랑 비석이 세워져 있고, 첨찰산 정상엔 남서부 지역의 기상관측에 매우 중요한 진도 기상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첨찰산은 진도에서 가장 중요한 경관미와 기능을 갖고 있는 산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첨찰산 [尖察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소치허련은 조선 후기 「선면산수도」·「김정희초상」 등을 그린 화가이다. 초년에는 해남의 윤선도 고택에서 윤두서의 작품을 통하여 전통 화풍을 익혔다. 대흥사 초의의 소개로 1839년 상경하여 김정희 문하에서 서화를 수업하였다. 1846년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856년에는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제작 활동에 몰두했다. 1867년에는 『소치실록』을 저술하였다. 김정희 일파 가운데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로 지목된다. 다방면의 화재에 능통하였지만 산수화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 · 노치(老痴) · 석치(石痴). 이명은 허유(許維). 조희룡(趙熙龍) · 전기(田琦) 등과 함께 김정희 일파(金正喜一派)에 속한다.중국 당나라 남종화와 수묵 산수화(水墨山水畫)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라서 ‘허유(許維)’라고 개명(改名)하였고, 마힐은 왕유의 자를 따른 것이다.허균(許筠)의 후예 가운데 진도에 정착한 허대(許垈)의 후손이다. 그림으로 유명해진 이후 헌종의 배려로 1848년 고부(古阜)의 감시(監試)를 거쳐 친임회시(親任會試)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관직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랐다.초년에는 해남의 윤선도(尹善道)고택에서 윤두서(尹斗緖)의 작품을 통하여 전통 화풍을 익혔다. 대흥사 초의(草衣)의 소개로 1839년 상경하여 김정희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서화를 수업하였다.김정희로부터 중국 북송(北宋)의 미불(米芾), 원나라 말의 황공망(黃公望)과 예찬(倪瓚), 청나라의 석도(石濤) 등을 배웠다. 그리고 그의 서풍(書風)도 전수받으면서 남종 문인화의 필법과 정신을 익혔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회화 세계를 구축하여 김정희 일파 가운데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로 지목된다. 김정희를 통하여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1846년에는 권돈인(權敦仁)의 집에 머무르며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왕과 여러 차례의 접촉을 가졌다. 명류(名流)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회화 세계를 풍부하게 하였으며, 남종화의 문기(文氣)와 화경(畫境)을 깊게 하였다.그와 교우 관계를 가진 인사들로는 해남의 우수사 신관호(申觀浩), 정약용(丁若鏞)의 아들 학연(學淵), 민승호(閔升鎬) · 김흥근(金興根) · 정원용(鄭元容) ·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 민영익(閔泳翊) 등이 있다. 1856년에는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을 마련하고 제작 활동에 몰두하였다.1866년에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등을 남겼다. 그리고 1867년에는 「몽연록(夢緣錄)」 등 『소치실록(小痴實錄)』을 저술하였다. 다방면의 화재에 능통하였지만 산수화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그의 산수화는 황공망 · 예찬의 구도와 필법을 바탕으로 하였으면서도 붓끝이 갈라진 거친 독필(禿筆)의 자유분방한 필치와 담채(淡彩)의 색감에서 독특하고 개성이 두드러진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산수화 외에 진한 먹을 대담하고 능란하게 구사한 사군자 · 모란 · 파초 · 괴석 · 노송 · 연화 그림도 특징적인 개성미를 지녔다.스승 김정희도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든지, “소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토착화된 화풍은 아들 형(灐)에게 전수되고, 손자 건(楗), 방계인 허백련(許百鍊) 등으로 계승되어 현대 호남 화단의 주축을 이루었다.유작으로는 「산수도첩(山水圖帖)」 · 「오백장군암도(五百將軍巖圖)」 · 「방예찬죽수계정도(倣倪瓚竹樹溪亭圖)」 · 「방석도산수도(倣石濤山水圖)」 ·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 · 「김정희초상(金正喜肖像)」 등이 있다. 이밖에 모란 · 괴석 · 사군자 등 많은 양의 작품이 전한다.
#진도 운림산방은 넓고 울창한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이 있는 첨찰산과 남도전통회화의 산실로 유명한 명소인 운림산방 등 자연유산과 역사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곳으로 역사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운림산방은 조선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조성하여 말년에 거처하면서 창작과 저술 활동을 하던 곳으로서「소치실록」에 따르면 큰 정원을 다듬고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 선경(仙境)으로 꾸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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