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148)/ 이스라엘
하이파와 갈릴리 서부 지역의 바하이 교(敎) 성지
(Baha’i Holy Places in Haifa and the Western Galilee; 2008)
하이파와 갈릴리 서부 지역의 바하이 교 성지(Baha’i Holy Place)는 심오한 종교적 의미와 바하이 교의 강력한 성지 순례 전통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 유산은 바하이 교 창시자들과 관련된 최고의 성지 두 곳을 포함하는데 아크레(Acre)의 바하울라(Baha’u’llah) 사원과 하이파의 바브(Bab) 사원, 그리고 주변의 정원과 관련 건물 및 기념물이다. 이 두 사원은 하이파와 갈릴리 서부 7개 지역에 산재한 바하이 교 순례지의 건물・기념물・유적의 일부이다.
바하이 교의 기원은 1844년 이란 쉬라즈(Shiraz) 지역의 선지자이자 예언자인 바브(Bab)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새로운 교리는 급속히 전파되었으나 심하게 박해를 받다가 1850년에 처형되었다. 이 종교의 중심지는 1868년 이스라엘의 서부 갈릴리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예언자이자 종교의 창시자인 바하울라(Baha’u’llah)가 1853년에 이란에서 추방당한 뒤 15년 동안 이라크・터키・이집트를 떠돌다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둘아지즈(Abdu’l A?iz)에 의해 아크레로 유배된 시기이다. 바하울라는 아크레에서 24년 동안 머무르며 바하이 교의 근간인 경전을 편찬하고, 종교의 정신적・행정적 중심지를 설립하였다. 바하울라와 그의 가족은 아크레의 오스만 성채에 2년간 감금되었지만 이 시기에도 바하울라는 신도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가르멜 명판(Tablet of Carmel)> 같은 유명한 글을 집필하였다. 1870년 바하울라의 막내아들이 건물의 채광창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였다. 바하울라는 이 사고를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을 자진하여 희생 제물로 바친 것에 비유하였다. 성채에서 풀려난 뒤에도 바하울라는 옛 아크레의 기독교와 이슬람 마을의 가옥에 9년 동안 연금되었다. 바하울라는 그곳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사망하였으며, 집터에 그의 묘가 세워졌다. 압둘라 파사의 집은 압둘바하(Abdu’l-Baha; 바하울라의 장남이자 바하이 교의 후계자)가 1911년까지 거주한 곳으로 그의 아들 쇼기에펜디(Shoghi Effendi)가 태어난 곳이며 바브의 유해가 하이파의 거대한 무덤으로 이장될 때까지 안치되었던 장소이다. 바브의 유해는 1909년 이란에서 하이파의 거대한 무덤으로 이장되었다. 이 무덤은 처음에는 단순한 형태였으나 1953년 확장되면서 금으로 만든 돔으로 장식되었다. 현재 건물은 1990~2001년에 조성한 1㎞ 길이의 정원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바하울라가 설립한 종교・행정 중심지는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으며, 바하이 교는 서유럽을 거쳐 북아메리카와 세계 전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바하이 교에 소속된 종교 단체는 전 세계적으로 500만 개에 이른다. 바하이 교는 세계 주요 종교의 창시자인 아브라함・모세・예수・부처・마호메트・크리슈나에 대해 신이 인류를 계도하려고 보낸 사자라고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