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1일 대림 2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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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1.mp3
<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
열심한 신자들이 고백성사를 볼 때 많이 하는 고백이
다른 기도는 잘하는 편인데 저녁 기도는 피곤해서 자주 빼먹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권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피곤해서 빼먹을 바에는 누워서라도 기도하라고 합니다.
막말로 기도 안 하는 것보다 누워서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사실 기도라는 것이 정해진 기도문을 꼭 무릎 꿇고 해야만 되는 게 아니라
하느님 앞에 머물거나 하느님 안에 머물면 되는 것이고,
더욱이 피곤할 때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는 오늘 주님 말씀처럼 주님께로 나아가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이 기도이고 피곤을 푸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머묾이라는 뜻이지요.
진정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여 나아가고
주님 안에 머물며 사랑에 흠뻑 젖는 겁니다.
고백성사 얘기를 또 하면
너무 힘들어서 점쟁이한테 갔다는 얘기를 적잖이 듣는데 그때 마음이
참 아프고, 특히 저와 모르는 사이가 아닌 분들이 점쟁이한테 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픈 것을 넘어서 제가 참 죄송스럽기까지 합니다.
힘들면 하느님께 가야 하는데 점쟁이한테 간 것이 마음 아프고,
하느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하느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아서
점쟁이한테 가는 거라면 제게라도 오면 될 텐데 저라는 존재가
오고 싶지 않거나 곁을 주지 않거나 바쁜 척하거나
아무튼 그렇게 해서 오시지들 않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저는 꼭 말씀드립니다.
점쟁이한테 가지 말고 저에게 오시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직접 오시기 어려우면 전화라도 하시라고.
물론 정작 가야 할 곳은 제가 아니라 하느님이고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을 상기시키며 하느님께 달려가라고 말씀드리지요.
사실 우리가 진정 올바른 신앙인이라면 지치고 힘들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힘들 때 엄마도 생각나고 사랑하는 사람도 생각나지만
"오너라"는 주님의 초대가 제일 먼저 생각나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가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제 생각에 주님께 가서 뭘 꼭 해야 하는 것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뭘 한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이고,
기도하는 것도 뭘 청원하든지 찬미찬양하고 감사드리기도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주님 안에 머물며 주님 사랑에 흠뻑 젖는 것이요,
그럼으로써 지친 우리가 거기서 힘을 얻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힘들 때 주님께 가서 해야 할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와서 "배워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가서 힘을 얻을뿐 아니라
짐을 가볍게 지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주님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녕 주님의 멍에로 짐을 지면 가볍습니까?
멍에란 것이 본시 불편한 건데 주님의 멍에는 어떤 멍에이길래 편합니까?
주님의 멍에는 온유와 겸손한 마음이기에 편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왜 나에게 이런 짐이?'라고 거역하는 마음이
우리의 짐을 더 무겁게 하고 힘들게 하는 그 반대의 이치로
우리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면 우리의 십자가가 덜 무거울 겁니다.
물론 오늘은 그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사랑이라는 멍에로 지면
덜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가볍고 더 나아가 뿌듯하겠지요. 그렇지 않을까요?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김 찬선 레오나르도 신부